부산지법 동부지원. 송호재 기자'부산 중대재해처벌법 2호 사건'으로 불리는 기장군 공사 현장 추락사고 재판 1심에서 원청업체 관계자들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노동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법 제정 취지가 무색해진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정왕현 판사는 23일 오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건설업체 대표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120시간의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원청업체 소속 크레인 운전기사에게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과 40시간 사회봉사를 선고했다.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하청업체 대표와 현장소장에게는 각각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다만 도주 우려가 없다고 보고 곧바로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A씨 등은 2022년 11월 2일 기장군의 한 공장 신축현장에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는 등 안전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아 하청업체 소속 작업자 B(40대·남)씨의 추락 사망사고에 원인을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불법 개조한 화물 크레인 위에서 작업대를 설치하던 B씨는 작업대와 함께 2m 아래로 추락했고 276kg에 달하는 작업대에 깔려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졌다.
정 판사는 "피고인들에 대한 혐의는 피고인들의 진술과 검사가 제출한 감식 자료 등에 의해 모두 인정된다. 피해자 유족은 피고인들에 대한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업체 대표 A씨와 피고인 일부는 동종 범죄로 벌금형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원청업체는 피해자 유족과 합의했다는 점, 피고인들이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거나 불법 개조 장비를 원상 복구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중대재해 책임자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 처벌을 촉구했다. 김혜민 기자 '부산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2호 사건'으로 불리는 이번 사건도 원청업체 대표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되자 노동단체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즉각 규탄 목소리를 냈다. 특히 이번 사건은 합의·공탁 기회 부여, 재판부 변경 등을 이유로 선고가 계속 미뤄지면서 또다시 솜방망이 처벌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 바 있다.
실제로 부산지역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으로 기소된 경영책임자에게 잇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되고 있다. 부산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1호 사건에서도 건설업체 대표 C씨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한 C씨는 과잉 금지와 명확성 원칙 위반 등을 주장하며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고 지난달 재판부가 이를 수용했다.
중대재해없는 세상만들기 부산운동본부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또다시 법 취지가 무색해지는 판결이 나왔다"며 "부산지역 1호 사건에서도 원청에 낮은 형량이 선고됐고 해당 기업에서는 폭염에 의한 중대재해가 또다시 발생했다.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재판부가 제대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 사건은 기업의 안전관리 체계가 무너져서 발생한다. 기업이 안전 규정을 일부라도 이행했으면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게 기업의 가장 큰 이익이 되도록 사법부가 엄정한 처벌을 할 필요 있다는 걸 상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