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명태균·건진법사' 사건 1심 재판장을 맡아 28일 징역 1년 8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우인성 부장판사. 류영주 기자김건희 여사의 재판장인 우인성 부장판사는 재판 초장부터 '포석'을 깔았다. 양형을 크게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 같은 것이었다. 그는 "불분명할 땐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라틴어를 꺼내 들었다.
우 판사는 법원내에서 형사법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는 가끔 '함정'이 있다. 자의식이 지나쳐 그 전문성이 국민의 생각과 너무 동떨어져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라틴어나 한자성어를 즐기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빙의하자면 그는 '절해고도(絕海孤島)에서 온 판사'와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전문성을 앞세워 국민의 법감정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 그런 행위 말이다.
먼저 김건희씨의 주가조작 판단을 보자. 우 판사는 "김씨가 시세조종을 인식하고 그의 계좌가 주가조작 세력단에게 깊숙이 이용됐지만 공범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주가조작단이 김 씨의 계좌로 마음대로 사용했고, 그 과정에서 통정매매 등의 범죄가 일어났지만 계좌주인은 단순히 '위탁'한 것에 불과하다는 논리다. 도이치 주가조작의 핵심인 권오수가 김씨를 이정필이라는 주포 사기꾼에 소개하고 그와의 관계가 단절되자, 또다시 다른 주포들이 있는 블랙펄에 계좌를 맡겨 2년을 유지했는데도 '공범'의 여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구체적 범행을 약속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논리인데 엄격한 증거주의를 고집하는 우 판사에게 동의하기 어렵다.
김건희 여사가 2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있다. 연합뉴스책상머리에 앉아 형식적 판단을 한다는 인상은 명태균 사건에 대한 정치자금법 판단도 마찬가지다. 명태균씨의 여론조사가 윤석열 대통령 후보를 위한 것이 아니고 본인의 자발적 영업 행위라는 결론이다. 그 대가로 지불됐다는 의심을 받는 김영선 공천은 전적으로 당에서 이뤄진 사안이라고 단정했다. 심지어 윤석열·김건희 부부와 '계약서'를 쓰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명씨의 망상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그렇다면 계약없는 호의는 죄다 무죄라는 것인가.
윤석열 후보는 "김영선 좀 해줘라 그랬는데 말이 많네. 당에서"라고 말했다. 그러자 명태균은 "진짜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명태균의 녹취가 그렇다. 현재 정당의 공천 상당수가 압력과 청탁에 이뤄진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일이다. 그런 정치자금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터진다.
그런데도 전가의 보도인 '증거 부족'이라는 논리로 '계약서 없는 정치권의 암묵적 거래'라는 현실을 부정하고 간과했다. 세상에 정치인이, 그것도 동네 면장도 아닌 대통령 후보가 '계약서'를 쓰고 여론조사를 의뢰해야 한다는 궤변은 난생 처음이다. 여론을 조작하려는 여론조사에서 대놓고 '계약서'를 써야하고, 또 그런 명시적 증거가 없으니 피고인의 이익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를 정통 형사법으로 취급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통일교의 청탁사건은 '쪼개기 청탁'으로 분리하는 '묘수(?)'를 동원했다. 3차례의 금품 수수에 대해, 여러 행위를 하나의 범죄로 보는 포괄일지를 부인하고 '쪼개기'로 판단한 것이다. 첫 번째 선물 공세는 구체적인 청탁이 없었으므로 알선수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뇌물이나 선물 공세를 벌인다면 첫 번째는 청탁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면부지의 인물에게, 그것도 대통령 영부인에게 처음부터 청탁을 하는 사람이 '윤핵관급'이 아니라면 누가 있을까.
'아이스브레이킹과 관계형성'을 위한 선물공세가 분명히 존재한다. 호의나 축하선물로 가장한 선물같은 것이다. '관계 형성'에서 '청탁' 으로 이어지는 뇌물청탁의 구조를 우 판사는 '시점별 행위'로 너무 잘게 쪼개어 판단했다. 이같은 '살라미 판결'은 고위공직자 부인과 가족들의 범죄 사각지대를 대문처럼 활짝 열어놓게 될 것이다.
우 판사는 '검이블루 화이불치' '인두비오 프로 레오'같은 현란한 수사적 표현으로 시민들의 법감정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의 표현을 무죄로 포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무작정 비판할 수 없다. 우 판사가 동원한 화려한 문구들은 김 씨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8억이 넘는 실질적 이득을 본 주가조작은 무죄가 되고, 정치적 청탁의 과정을 단절적으로 해석한 것은 일반 국민의 상식적 법 감정을 배반한다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