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영암 A 초등학교 학생 파한야(13)가 한국어 학급에서 담당 교사와 보드게임을 하며 한국어 어휘를 익히고 있다. 한아름 기자▶ 글 싣는 순서 |
①4명에 1명 이주배경학생인 학교…'공존' 준비하는 전남교육 (계속) |
지난 18일 오전 수업이 한창인 전남 영암군의 A 초등학교. 스리랑카에서 태어난 파한야(13)양은 '6학년 교실'이 아닌 '한국어 학급'에 들어와 앉아 있었다. '한국어 학급'은 한국에 입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한국어 의사소통이 어려운 이주 배경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다.
이날 파한야는 주사위를 던져 말을 움직이는 보드게임을 했다. 파한야는 게임을 하면서 낯선 한국어 단어들을 마주하게 됐다. 파한야는 선생님의 입 모양을 보면서 천천히 따라 말했다.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어도 단어를 잘 몰라서 힘들어요. 머릿속으로는 술술술 말하고 있는데 입으로는 잘 안돼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요."
파한야는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한국어 학급에 와 수업을 듣는다. 같은 반 친구들이 국어 혹은 사회 수업을 들을 때, 파한야는 한국어 학급에 와서 수업을 듣는 식이다.
한국으로 온 지 어느덧 3년 차가 된 파한야는 한국어가 금방 익숙해졌다고 했다. 이젠 "스리랑카어보다 한국어가 더 편하다"고 말할 정도다.
"이주 배경 학생들과 한국 출신 학생들은 못 어울린다? 그건 어른들의 걱정"
18일 오후, 영암 A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의 체육 시간 활동 모습. 3개 팀으로 나눠 '공 옮기기' 협동 과제를 수행 중이다. 한아름 기자한국어 학급에서 수업을 마친 파한야는 친구들과 함께 2층 강당으로 향했다. 다음 과목은 체육이다. 파한야는 체육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파한야는 학급 친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며 체육활동을 했다. 체육 선생님이 제시한 협동 과제도 잘 해내는 모습이었다.
"주말에 다 같이 만나서 마라탕 먹을 때가 제일 재밌어요!"
파한야와 단짝 친구 셋은 매주 주말에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친구 박재윤(13)양이 "주말에 다 같이 만나서 마라탕을 먹을 때 가장 재밌어요"라고 말하니, 옆에서 듣고 있던 친구들도 팔짝팔짝 뛰곤 '맞아요!' '너무 재밌어요!'라고 맞장구를 쳤다. 또 다른 친구 딜누라(13)양은 넷이서 함께 가지고 노는 원숭이 인형을 자신 있게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박재윤 양은 한국 출신, 딜누라 양은 우즈베키스탄 출신이다.
학생들은 어린이집·유치원에서부터 쭉 다양한 국적의 또래들과 함께 지내왔다. 전남 영암군 A 초등학교의 경우, 전체 학생 553명 중 25.7%인 142명이 이주 배경 학생이다. 142명의 출신국도 다양하다. 베트남·중국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필리핀·캄보디아 등 총 15개국 출신의 학생이 A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18일 오후, 영암 A 초등학교 학생 파한야(13)와 단짝 친구들이 함께 가지고 노는 원숭이 인형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아름 기자저출생 여파로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고 있는 동시에 전체 학생 수도 줄어들고 있다. 전남 지역은 그 정도가 심하다. 전남의 총 학생 수는 2020년 20만 6000명에서 2024년 19만 명으로 7.9% 감소했다. 같은 시점 전국의 학생 수 감소폭은 4% 정도다. 신입생을 받지 못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학교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이주민의 자녀들이 학교의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2020년 1만 명이던 전남 이주배경학생의 수는 2024년이 되자 1만 2000명으로 늘었다. 비율로 따지면 5년 사이 14%가 증가했다. 인구 소멸 지역의 '이주 배경 학생'들이 지역 미래의 상당 부분을 지탱하게 되는 셈이다.
이주 배경 학생을 위한 지원, '예산 낭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투자'
이주 배경 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학급을 따로 운영하는 것을 두고, '외국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상당한 세금을 쓰는 것은 특혜'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교사들은 이주 배경 학생들이 잘 적응하는 것이 한국 출신 학생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준다고 강조했다.
영암 A 초등학교에서 한국어 학급을 담당하는 교사 김보람 씨는 "이주 배경 학생들이 학교 환경에 적응해 잘 어울리게 되면, 한국 출신 학생들에게는 다양한 문화권을 접할 기회가 된다"며 "나라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에, 어떤 문화권 사람들과도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는 강점을 길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라남도교육청은 '이중 언어 교육'을 통해 이주배경학생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한국 출신 학생들이 다른 나라의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진 속 그림책은 이주배경학생이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사용해 만들었다. 한아름 기자이주배경학생의 강점을 개발하기 위해 시작한 '이중 언어 교육'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자기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미정 전남도교육청 장학관은 "이중 언어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존중하고, 학생 개개인의 세계관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세계와 소통하는 세계 시민 역량을 함양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암 A 초등학교는 '안녕'을 10개 국어로 번역해 건물 2층의 한쪽 벽에 걸어두었다. 한아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