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중국 수출용으로 제작한 AI 반도체 H20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내놨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딥시크'로 대표되는 중국 AI 산업을 견제하기 위해 내놓은 첫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로 엔비디아 AI 반도체 의존도가 큰 중국 입장에서는 타격이 예상된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의 H20 반도체를 중국으로 수출할 때 새로운 수출 허가 요건을 적용한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역시 지난 9일 미국 정부로부터 H20 반도체의 중국 수출 시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통보를 받았고, 또 14일에는 이 규제가 무기한 적용될 것이라는 통지도 받았다고 이날 밝혔다.
엔비디아 뿐만 아니라 AMD 등 비슷한 성능의 다른 AI 반도체 역시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됐으며, 미국 정부는 중국이 이들 반도체를 슈퍼컴퓨터에 사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을 규제 이유로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을 상대로한 미국의 첨단 AI 반도체 수출 제한 조치는 전임 바이든 행정부에서부터 시작됐고, 이에 엔비디아는 중국 수출용으로 일부 성능을 낮춘 H20를 제작해 중국에 판매해왔다.
하지만 지난 1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H20 등 상대적으로 저사양 AI 반도체를 활용해 저비용 고성능 AI 모델을 선보이자 H20에 대한 수출 제한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번에 실제 조치가 이뤄졌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의존도가 큰 중국 입장에서 이번 조치는 뼈아프다. 딥시크 등 중국의 AI 업계가 미국을 턱밑까지 추격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사양이라도 엔비디아 등 미국 AI 반도체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일이다.
대표적으로 딥시크가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반도체인 A100, H100 등을 사용하지 않고 고성능의 AI 모델을 출시했다고 밝혀 파장을 불러일으켰지만 결국은 이보다 낮은 사양의 H20과 H800은 활용했다.
여기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이 퀀트 헤지펀드 '하이플라이어'를 경영하며 미국의 AI 반도체 규제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2019년부터 1만여개의 A100개를 사모았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딥시크의 AI 모델 개발에 엔비디아의 첨단 AI 반도체가 활용됐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최대 정보통신(IT) 기업 화웨이가 엔비디아 H100에 필적할 만한 성능을 가진 AI 반도체 '어센드 910C'를 개발했다고 밝히는 등 중국 AI 반도체 제조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어센드 910C' 이전 버전인 '어센드 910B'에서는 대만의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가 제조한 반도체가 발견됐는데, 해당 반도체는 미국의 제재 대상인 화웨이에는 판매할 수 없는 제품이다.
미국 정부 조사결과 해당 반도체는 중국의 반도체 설계회사인 소프고가 화웨이를 위해 대신 주문한 것으로 300만개 가까운 AI용 반도체가 소프고를 거쳐 화웨이로 흘러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중국의 AI 반도체 산업이 여전히 기술독립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따라 H20을 비롯해 사양을 낮춘 AI 반도체 공급까지 완전히 막힐 경우 당장 대체할 제품이 마땅치 않은 중국 중국 AI 업계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같은 규제가 시행될 것이라는 전망이 오래전부터 제기된 만큼 중국 AI 업계가 이미 상당량의 미국산 AI 반도체 재고를 확보해 두고 있어 피해가 당장 현실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알리바바와 텐센트, 바이트댄스 등 중국 기술 대기업이 올해 1~3월 H20 칩을 160억 달러(22조 8천억원) 이상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 분기보다 40% 넘게 증가한 규모다.
중국 AI 산업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AI 반도체 규제 확대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준비를 해왔고, 이미 엔비디아 제품을 상당량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면서 "단기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어 "업계에서는 화웨이가 개발한 AI 반도체로는 엔비디아를 대체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에 수출 제한이 장기화 되면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당장 엔비디아나 미국 AI 반도체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보는데 규제가 계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