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수출의 양대 축인 수입산 자동차와 반도체를 또다시 겨누면서 산업계 전체에 살벌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총 수출 절반 이상이 미국에서 발생하는 국내 완성차 업계는 현지 생산 확대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대미 수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반도체 업계도 사태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
'글로벌 관세 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정부 리더십 부재로 관련 대응에 한계를 드러내며 경제계는 민간사절단 급파와 개별 기업 대응 등 '각개전투'에 나섰다.
자동차, 美 현지투자 드라이브…반도체, 후속조치 예의주시
19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사저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관세를 어느 정도로 부과할 것이냐는 질문에 "4월 2일에 이야기 할텐데 25% 정도가 될 것"이라고 답했다.
앞서 예고한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에 대한 질문에는 "25%, 그리고 그 이상이 될 것이다. 관세는 1년에 걸쳐 훨씬 더 인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바 있는데, 자동차·반도체·의약품 분야에도 비슷한 관세율을 적용하며 '관세 전쟁 전선'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결정은 미국에서 판매되는 자동차 2대 중 1대가 수입차 라는 점이 감안 된 것으로 분석된다. ·
미 상무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해 자동차(승용차·경량트럭) 수입은 전체 판매량의 절반 가량인 약 800만대, 액수로는 2435억 달러(약 351조원)에 이른다. 국가별 대미 수출 규모를 보면 멕시코가 가장 많았고(296만대) △한국(154만대) △일본(138만대) △캐나다(107만대)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한국차 수출이 일본을 추월해 눈에 띄게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합뉴스트럼프 대통령이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모든 국가에 적용할지,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것 인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국내 완성차 업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모양새다.
한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구체적인 내용이 발표된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후속 조치를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
수입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가 트럼프 대통령 당선 때부터 예고된 만큼 국내 완성차 업계는 우선 생산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가동에 들어간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의 생산 능력을 연 30만대에서 50만대로 높인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앨라배마 공장(35만6100대), 기아 조지아 공장(34만대) 물량을 더해
미국 내 생산 능력을 총 119만6100대까지 끌어올린다는 방침이다.
기아 김승준 재경본부장은 에서 미국 정부의 관세 정책과 관련해 "단기적으로는 관세만큼 추가 부담이 생기겠지만 장기적으로 가격 인상이나 생산지 조정 등을 통한 대비를 하고 있다"(지난달 2024년 실적 발표 콘퍼런스 콜)고 밝힌 바 있다.
반도체 업계도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반도체는 1997년 WTO(세계무역기구)의 ITA(정보기술협정)에 따라 회원국 간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어 미국에 수출하는 한국산 반도체엔 관세가 없지만, 미국이 25% 이상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영향은 불가피하다.
다만 총 수출 중 절반 이상을 미국에 하는 완성차와 달리 지난해 기준 대미 반도체 기준은 7.5%로 부담감이 완성차 업계보다는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완성차 2대 중 1대는 미국산이지만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산의 대체재가 제한적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는 "수입산 반도체에 없던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대미 반도체 수출이 많은) 대만 TSMC가 가장 큰 영향을 받게 되고, 수입산 반도체를 사용하는 미국 기업(빅테크)들만 손해"라며 "국내 반도체 기업도 피해가 없지는 않겠지만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관세 전쟁에 기업 대응 방안 한계"…경제사절단 등 자구책
경제계는 비상 계엄과 탄핵 등 정부 리더십 부재 속 기업들이 혈혈단신으로 글로벌 관세전쟁터로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로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관세 문제는 기업이 대응할 수 있는 부분이 한정되어 있다"며 "정부에서 많이 도와주고 계시지만 총리부터 주미 대사관까지 과세 부과 국가에서 제외해 달라며
총력 대응하고 있는 일본과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일본의 대미 직접 투자액을 1조원으로 확대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알래스카 석유, 천연가스 개발 프로젝트 참여 의향을 전달한 상태다. 12일엔 주미 대사관을 통해 일본 제품에 대한 관세 면세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경제계는 자구책 마련에 나섰다. 국내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구성된 대미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은 19일(현지시간)부터 이틀 간 미국 워싱턴 DC를 공식 방문해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들을 만나 여러 통상 정책을 논의하고, 양국 간 전략적 협력 의제와 대미 투자 협력을 위한 액션 플랜을 소개한다.
다만 트럼프발 관세 전쟁 움직임에 우리 기업들이 대미 투자 확대 등으로 즉각 화답하기엔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게 경제계의 설명이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관세가 없고, 기회를 주고 싶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외국 기업이 미국에 더 투자를 하라는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를 믿고 미국에 투자한 기업들이 트럼프 정권 출범 이후 곤란한 처지가 된 현 상황,
지금 투자를 결정하더라도 실제로 미국에 생산 시설을 구축할 시점이 되면 트럼프 정권 말이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들이 계획되었던 투자의 집행 속도를 높이는 것 외에 추가 대미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