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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페미니즘의 도전'…공평과 공정 사이[책볼래]

    연합뉴스연합뉴스
    여성의 권리와 성평등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 운동인 페미니즘은 해방 전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교육권과 참정권 확대, 노동 조건 개선과 같은 권리 개선에 중점을 뒀다면, 산업화가 최우선이었던 60-70년대는 여성의 교육과 경제 참여가 확대되면서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 향상을 위한 요구가 거세진 시기였다.

    민주화운동이 활발했던 80년대를 지나 민주항쟁으로 제6공화국 시대를 연 90년대는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와 문화가 꽃피기 시작했다. 여성의 정치 참여 확대, 성·가정 폭력에 대한 인식 제고와 성별 차별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본격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했다.

    21세기 들어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은 더 다양하고 포괄적인 이슈를 다루기 시작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자리한 남성주의의 벽을 허물고 사회 전반에 걸친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려는 노력에 집중됐다. 온라인 공간에서의 성폭력 문제나 성 소수자 권리, 포괄적인 양성평등 환경을 조성하려는 노력들이다.

    최근에는 남녀간 젠더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급진적인 갈등이 표면화 하기도 한다. 남성을 이해하지 않고 잠재적 성범죄자로 보거나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여성에 대한 보장은 확대하고 남성들의 사회적 기회는 빼앗아간다며 공평하지 않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반대로 뿌리 깊게 박힌 남성사회 중심의 벽을 허물 때 여성 역시 존중 받고 남녀가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끊임 없이 자신의 관점이 아닌 상대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라고 강조한다.

    여성학자 정희진은 '페미니즘의 도전'(2005)에서 가정폭력, 성과 섹스의 문제, 성판매 여성 문제, 군사주의 문화, 동성애 등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된 여러 이슈와 사건들을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다.


    교양인 제공 교양인 제공 
    저자는 페미니즘은 저항이론, 저항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자본주의가 생겨난 지 3백 년도 안 되었고 한국에 뿌리내린 지 1백 년도 안 되었지만 자본주의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며 수천 년의 역사를 가진 가부장제의 위력으로부터 그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느냐고 꼬집는다.

    그는 "페미니즘은 협상, 생존, 공존을 위한 운동이다. 여성운동은 남자 시스템에 저항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드는 힘을 조금 상대화시키자는 것이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임을 호소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보편성이다.

    그러면서 "여성운동은 사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역사·정치를 재구성하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주체성이다.

    그러면서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여성주의가 무엇인지, 그 개념에서부터 그것이 필요한 이유와 여성주의를 통해 달라질 나와 세상의 모습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준다는 점에서 '남혐'과 '여혐'의 극단으로 치우친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 세상을 '여성의 언어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출간된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페미니즘의 교과서'로 평가 받고 있는 책이다.  

    오늘날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젠더 갈등을 복잡하지 않고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동물행동학자이자 진화생태학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최근 '양심'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대남 이대녀 갈등'에 대해 질문을 받고 "이들이 철저하게 '공평'이라는 관점에서만 다투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녀 서로가 생물학적 차이나 인격적 존중을 배제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공평'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최재천 석좌교수최재천 석좌교수
    최 교수는 "무조건 평등을 강조하는 것은 어리석다. 남녀 간의 생물학적 차이를 서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균형을 맞춰가야 '공정'이 될 수 있는데, 그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갈라치기에 쏠려 있어 불편하다고 했다.

    정희진 역시 "거의 모든 인간의 고통은 말 때문"이라며 "여성주의는 차이나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차이를 이해하는 방식이며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구성한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다만 이 갈등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동물행동과 진화생태 학자의 관점에서 젠더 갈등은 부질 없어 보인다"며 "남녀는 태생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합쳐질 수 밖에 없다"고 봤다. 그러면서 오히려 젠더 갈등보다 세대갈등이 풀기 더 어렵다면서 모두가 똑같아야 한다는 어리석은 평등의 관점이 아닌 우리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하는 '따뜻한 공정'의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페미니즘의 도전'은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주목 받은 책이다. 출간과 함께 '2005 올해의 책', 2012년 출판인들이 직접 뽑은 '함께 읽고 싶은 100권의 책'으로 꼽혔고 2024년 온라인 서점 알라딘이 작가·번역가·출판인·연구자 등 106인의 설문조사로 꼽은 '21세기 최고의 책' 2위에도 올랐다. 2020년 재출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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