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과 '독재'의 끔찍한 본성…대한민국은 괜찮나[책볼래]
바버라 F. 월터 UC샌디에이고대학교 교수가 쓴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열린책들)와 역사 저술가 로런스 리스의 '히틀러와 스탈린'(페이퍼로드)은 각각 내전의 원인과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들의 권력 역학에 대해 탐구한 책이다. 한 권은 현대 사회에서 내전이 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분석하고, 다른 한 권은 독재 권력이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를 파헤친다.
얼핏 보면 다른 주제를 다루는 듯하지만, 이 두 책은 갈등과 분열, 권력을 앞세운 폭력이 국가를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건의 반복성과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을 동시에 끄집어낸다.
혼란의 시대: 내전과 독재, 폭력의 악순환
월터는 내전이 단순히 빈곤국이나 약소국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사회가 양극화될 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녀는 정치·경제적 불평등과 정체성 갈등, 권력의 집중화가 폭력을 유발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이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사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히틀러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을 이용해 독재 권력을 잡았고, 스탈린은 내전과 혁명의 와중에 권력을 강화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 분열과 불안을 조장하며 체제를 공고히 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비롯한 특정 집단을 희생양 삼아 독일 국민을 하나로 묶었고, 스탈린은 지속적인 숙청과 공포 정치를 통해 자신의 권력을 강화했다. 결국, 내전과 혁명으로 혼란스러웠던 독일과 러시아는 폭력적 지도자에게 권력을 넘겨주었고, 이는 더 큰 전쟁과 학살로 이어졌다.
월터와 리스는 각각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와 '히틀러와 스탈린' 두 책을 통해 혼란의 시대가 어떻게 권력의 출현을 촉발시키는지를 심층적으로 파헤치는가 하면, 내전과 독재라는 각기 다른 현상이 서로 긴밀하고 끔찍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불안정한 사회가 독재를 낳는다: 정체성 정치와 증오의 도구화
월터는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법치가 무너지고,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질수록 내전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런 불안정한 상황은 종종 독재자를 위한 토양이 된다. 독일과 소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1차 세계대전 패배 후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은 극심한 경제 불황과 정치적 불안을 겪었다. 극우와 극좌가 충돌했고, 국민들은 혼란 속에서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히틀러는 이런 분위기를 이용해 집권한 뒤 독일을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과 내전 이후, 소련은 권력 투쟁과 불안정이 지속됐다. 스탈린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점점 더 독재적 권력을 강화하며 숙청을 통해 반대 세력을 제거했다.
월터가 분석한 바와 같이, 내전과 극단적 정치 갈등은 결국 독재자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분열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질서를 회복할' 강력한 지도자를 찾고, 이는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만, 두 독재자의 통치는 내전보다 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폭력을 동반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에서 월터는 내전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를 꼽는다. 즉, 특정 민족·종교·이념 집단이 배제되고 억압될 때 갈등이 폭발한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이를 철저히 이용했다.
리스의 '히틀러와 스탈린'에 따르면, 히틀러는 유대인을 독일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며 대중의 증오를 결집했다. 반유대주의는 나치 정권을 결속시키는 핵심 도구였으며, 이는 결국 홀로코스트라는 끔찍한 범죄로 이어졌다. 스탈린은 반혁명분자와 '인민의 적'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그는 실제보다 훨씬 더 많은 내부의 적을 상정하고 숙청을 단행하며 공포 정치를 강화했다.
이처럼 독재자들은 국민을 하나로 묶기 위해 '적'을 만들어내고, 이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폭력적인 정권이 된다. 월터가 경고하듯, 이러한 정체성 정치가 심화될수록 사회는 분열되고, 결국 폭력적인 내전이나 독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사의 반복성: 과거의 역사, 현재의 경고
두 책은 모두 '역사가 반복된다는 교훈'을 전한다. 내전이 발생하는 조건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고 경고한다.
월터는 특히 미국 사회를 예로 들며, 오늘날에도 내전의 위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정치적 양극화, 정체성 정치, 민주주의 후퇴 등이 위험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리스가 설명한 히틀러와 스탈린의 등장 배경과도 맞닿아 있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 정권이 부상하고 있다.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갈등이 심화될수록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진다. 히틀러와 스탈린이 그러했듯이, 국민의 불안을 이용하는 정치인은 언제든 등장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와 '히틀러와 스탈린'은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지만, 폭력과 권력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월터는 내전이 단순히 구조적 문제만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촉발된다고 설명한다. 리스는 히틀러와 스탈린이 단순히 악마적인 인물이 아니라, '특정한 환경과 선택의 결과'로 등장했다고 분석한다. 두 책은 모두 인간이 어떻게 갈등과 폭력을 선택하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아노크라시'의 발호
2024년 12월 3일 밤, 44년 만에 총칼로 무장한 군을 동원한 기습적 비상계엄과 내란 사태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가진 시민들의 저항으로 조기에 무력화되었지만 한국 사회는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지속되면서 정치·사회적 혼란 역시 심화되고 있다. 월터가 지적한 것처럼 특정 집단이 정치적 권력에서 배제될 때 내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미국의 최근 현상은 '내전'을 언급할 정도로 심각하다. 극단으로 양극화된 한국 사회 역서 밑바닥에서 이미 고개를 쳐든 상태다.
특히 사회가 고도로 자본화된 환경에서 경제적 불평등은 이를 부추기는 추동력이 된다. 청년 실업, 주거 문제, 소득 격차 등이 사회적 불만을 증폭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오래됐다. 월터가 꼽는 내전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가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한다면 누적된 사회적 불만이 폭력적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이미 '12.3 내란 사태' 과정에서 확인했다.
리스가 지적한 것처럼, 사회적 불안과 불만은 독재자의 등장을 위한 토대가 될 수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초고속 경제성장과 남북 분단으로 인한 특수성이 한국 사회가 다양하고 다층적인 불안 요소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위기, 청년 실업, 고령화, 이민자 문제 등 사회적 불만과 세대 간 갈등, 성별 갈등, 지역 간 갈등과 같은 정체서 기반의 갈등이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도 정체성 갈등을 이용해 체제와 권력을 강화했다.
월터는 사회가 분열될수록, 민주주의가 흔들릴수록 폭력적인 지도자가 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한다. 이른바 '아노크라시(Anocracy)'의 등장이다. 독재(autocracy)와 민주주의(democracy)의 합성어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위기와 정치·사회적 복잡성을 담은 표현이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는 내전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오늘날의 갈등을 예측하고 방지하는 데 깊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독재자의 등장이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거리를 쓸면서도 숙제 풀이에 머리를 맞대어야 하는 시기다.
■내전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바버라 F. 월터 지음 | 유강은 옮김 | 열린책들 | 336쪽
■히틀러와 스탈린
로런스 리스 지음 | 허승철 옮김 | 페이퍼로드 | 888쪽
2025.02.14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