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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트라우마의 진실,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

책/학술

    국가폭력 트라우마의 진실,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

    [신간]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해 진압봉을 휘두르는 무장 계엄군(왼쪽)과 2024년 12월 3일 서울 국회의사당 경내에 진입해 저항하는 시민을 제압하고 있는 무장 계엄군. 5.18기념재단·윤창원 기자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해 진압봉을 휘두르는 무장 계엄군(왼쪽)과 2024년 12월 3일 서울 국회의사당 경내에 진입해 저항하는 시민을 제압하고 있는 무장 계엄군. 5.18기념재단·윤창원 기자
    4·3, 5·18, 4·16, 12·3로 이어지는 날짜들 뒤에는 누군가의 삶이 산산조각 난 기억이 남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찬영이 이 집단적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한 책 '당신의 상처는 사적이지 않다'를 펴냈다. 부제처럼, 국가 폭력과 사회적 참사의 상처가 결코 개인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작업이다.

    저자는 5·18 성폭력 피해자 자조모임 '열매'의 자문의로 활동하며, 세월호 참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등 사회적 트라우마 사건의 피해자들을 오랫동안 만나 온 현장 전문가다. 2025년 11월, 붉은 꽃무늬 스카프를 두르고 법원에 선 5·18 성폭력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 장면에서 출발해, 왜 이들의 악몽이 수십 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는지, 또 그 상처가 어떻게 사회 전체와 맞닿아 있는지를 묻는다.

    책은 먼저 '남은 자'에게 남는 감정의 얼굴을 세밀하게 나눈다. 사랑하는 이를 폭력적으로 잃은 뒤 애도 자체가 멈춰버리는 '외상적 애도', "내가 다르게 했더라면…"이라는 생각에 갇히는 '산 자의 죄책감', 자기 존재를 통째로 부정하게 만드는 '독성 수치심', 부당한 명령과 구조 속에서 비윤리적 행동을 하게 된 이들이 겪는 '도덕적 손상'이 그것이다. 저자는 이 감정들이 피해자의 '개인적 약점'이 아니라 사건 구조와 권력 관계가 빚어낸 결과임을, 구체적인 인터뷰와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특히 저자는 수치심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불균형하게 배분되는 구조를 '수치심의 불공정'이라 규정한다. 성장기 내내 방임·학대·빈곤에 노출된 뒤 성매매로 내몰린 여성, 국가 폭력의 피해자들이 감당하는 압도적 수치심에 비해, 가해자·방조자·구조를 만든 이들은 거의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자기혐오를 멈추고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자기연민'으로 나아갈 때 치유의 물꼬가 트인다고 강조한다.

    잠비 제공 잠비 제공 
    책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5·18 생존자들이 겪은 트라우마의 재연도 짚는다. 1980년 도청 앞 군홧발과 학살 장면이 TV 속 장갑차와 헬기에 겹쳐지며, "5·18이 다시 일어난 것 같다"고 호소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국가 폭력이 피해자에게 얼마나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저자는 이를 개인의 PTSD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집단적 외상으로 본다.

    저자는 사회적 트라우마가 '물결 효과'를 통해 공동체 전체로 번져 나간다고 분석한다. 직접 피해자가 아니어도 세월호 참사 때 많은 시민이 느낀 우울·분노·무력감이 대표적인 예다. 동시에 치유 역시 역방향의 물결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피해자가 증언하고, 그 증언을 공동체가 듣고 기록하는 과정에서 사적인 이야기가 '공적으로 검증된 기억'으로 전환되고, 이는 다시 사회적 회복력으로 축적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증언 치유, 피해자 공동체 활동, 시민사회의 연대와 더불어 국가 차원의 구조 마련을 제안한다. 극단주의와 혐오를 완화하기 위한 '탈 극단주의 센터', 감정을 민주주의의 자원으로 다루는 '시민 감정 교육' 같은 아이디어도 책 말미에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저자의 표현대로, "트라우마는 민주주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찬영 지음 | 잠비 |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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