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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은 내가 전문가다"…이해찬이 남긴 민주주의의 기록 [책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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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내란은 내가 전문가다"…이해찬이 남긴 민주주의의 기록 [책볼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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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정권부터 국민주권정부까지 '공적인 인간'의 삶
    민주화 이후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이재명 뒷바라지
    일생 '당원 주권 정당'·'광장의 대통령' 만든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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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란은 제가 전문가입니다. 박정희 때도 내란 음모로 잡혀갔고, 전두환 때도 내란 음모로 잡혀갔습니다."

    고(故)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생의 말년에 이렇게 말했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이 한 문장에는 군사정권의 폭력과 민주화의 투쟁, 그리고 민주정부 이후의 제도 정치까지를 몸으로 통과해온 한 정치인의 기억이 압축돼 있다.

    그는 2024년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시시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것을 분명히 "내란"이라 규정했다. 민주주의를 교과서가 아니라 체포와 투옥, 광장과 제도로 배운 세대만이 가질 수 있는 역사 인식이었다.

    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이해찬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25일 베트남 출장 중 별세했다. 향년 73세. 군사정권 시절 내란 음모로 투옥됐던 청년은 민주화 이후 총리와 여당 대표를 거쳤고, 말년에는 다시 광장에 서서 민주주의의 후퇴를 경고했다. 그의 죽음은 한 정치인의 퇴장이자, 민주화 세대가 남긴 한 시대의 기록이 닫히는 순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해찬은 스스로를 영웅으로 포장하는 정치인이 아니었다. 그는 여러 저작에서 자신의 삶을 반복해서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꿈이 모여 역사가 된 과정을 증언하는 일"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러한 태도는 2022년 출간된 회고록 '이해찬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에 가장 집약적으로 담겨 있다.

    이 책에서 이해찬은 자신의 인생을 두 개의 꿈으로 정리한다. 첫 번째는 대한민국의 민주화, 두 번째는 민주적 국민정당의 건설이다. 그는 첫 번째 꿈이 1987년 6월 민주 항쟁을 통해 일정 부분 성취됐다고 평가하면서도, 두 번째 꿈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적었다. 이 회고록은 정치적 성취를 나열하는 대신, 과정과 감정, 그리고 선택의 무게를 차분히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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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6월 민주 항쟁의 순간을 "이겼다는 생각보다 드디어 끝났구나, 해방됐구나 싶었어요. 내 인생에서 제일 기뻤던 때였다"고 회상한다.

    이 문장은 개인적 회고를 넘어 민주화 세대가 공유한 집단적 감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공포, 사선 위에 서 있던 삶에서 벗어났다는 안도. 이해찬에게 민주주의는 추상적인 이념이 아니라, 구금과 해방, 두려움과 해방감이 교차한 체험이었다.

    그의 정치관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공적인 인간'이다. 이는 회고록 말미에 실린 유시민 작가의 발문 제목이기도 하다. 이해찬은 이를 '퍼블릭 마인드(public mind)'라는 말로 설명했다. 그는 공인의 조건을 화려한 언변이나 인기보다 판단력과 책임감에서 찾았다.

    "판단력과 책임감, 이 두 가지를 잘 끌고 가는 게 퍼블릭 마인드입니다. 공인은 남한테도 엄하고 나한테도 엄해야 합니다."

    이 기준은 그가 국회의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를 거치며 일관되게 유지해온 자기 규율이었다. 실제로 그는 7선 의원을 지내는 동안 선거법이나 정치자금 문제로 기소된 적이 없었다. 이는 도덕적 우연이라기보다, 스스로에게 설정한 공적 기준의 결과였다.


    보다 이른 시기의 저작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2007)은 정치인 이전의 인간 이해찬을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충남 청양에서 성장한 배경, 유신 체제에 분노하며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 그리고 '정치는 가치 중심으로 가되 방법은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정치의 성공과 실패를 이렇게 구분한다.

    "성과가 없더라도 그 과정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다면 실패가 아니다. 그러나 후회가 남는다면 그것이 실패다."

    이 문장은 권력의 높낮이나 선거의 승패보다, 시대에 주어진 과제에 얼마나 성실했는가를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해온 이해찬식 정치관을 압축한다. 그는 스스로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평가도 부정하지 않았다. 다만 이미지가 아니라 '해야 할 일'을 기준으로 움직였다고 설명했다. "나는 나에게 없는 것들을 있는 척하고 싶지 않다"는 고백은 정치적 계산보다 공공의 필요를 앞세워온 그의 성향을 드러낸다.

    대담집 '문제는 리더다'(2010)에서는 이해찬의 현실 인식이 보다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성장 중심의 국가 운영에 대해 "삶의 질을 중심에 두지 않으면 민주주의도 공허해진다"고 진단하며, 리더십의 핵심을 도덕성과 책임성에서 찾았다. 이는 참여정부 이후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정치·사회적 균열을 진단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정치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이후에도 그는 '공적 발언자'로서의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좌담집 '광장에서 길을 묻다'(2011)는 민주정부 10년의 성과와 한계를 성찰하고, 민주주의의 후퇴 가능성을 경고한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완성된 제도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심화해야 할 과정으로 규정했다.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순간, 진보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심화시키는 것이 진짜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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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찬의 말년은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그는 2024년 12월 계엄에 맞선 '빛의 혁명'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 "저렇게 무도한 놈은 정치하면서 처음 봤다",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이 발언은 순간적 분노라기보다, 군사정권과 민주화, 민주정부를 모두 겪은 정치인이 가진 역사적 판단의 언어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는 '내란'이라는 말을 가벼이 쓰지 않았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을 호출하는 단어이자 현재를 재단하는 기준이었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언제든 후퇴할 수 있는 제도였고, 그래서 다시 싸워야 하는 과정이었다.

    이해찬의 책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삶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민주화운동가이자 행정가, 전략가이기 이전에 그는 철저하게 '공적인 인간'이었고, 자신의 삶을 통해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온 증언자였다.

    "(민주화)운동을 하면서 실패는 해도 좌절하지는 않습니다. 못한 것은 또 하면 됩니다. 실패가 아니에요."

    이 문장은 정치인 이해찬이 남긴 마지막 교훈에 가깝다. 그의 육성은 멈췄지만, 책 속의 문장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K-민주주의'의 현재를 비추고 있다. 그가 시민과 함께 걸어온 광장 역시 여전히 우리에게 열려있다.

    - 이해찬 회고록: 꿈이 모여 역사가 되다 (2022, 돌베개)
    - 광장에서 길을 묻다 (2011, 동녘)
    - 문제는 리더다 (2010, 메디치미디어)
    - 청양 이 면장 댁 셋째 아들 (2007, 푸른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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