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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에서 멈춘 금강산행 열차…언제 다시 달릴까?



문화재/정책

    철원에서 멈춘 금강산행 열차…언제 다시 달릴까?

    대학생 인턴기자 DMZ 524km 횡단기

    정전협정 이후 금단의 땅이 된 DMZ 접경지
    자유·평화 의미 새기는 'DMZ 자유평화대장정'
    쉬리공원, 민들레마을 거쳐 금강산철도까지 12km 행군
    쉬리공원 둘러싼 수변 산책로 수려한 경관 자랑해
    피난갔던 주민들이 정착한 도창리 민들레마을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김화마을의 이야기를 듣다
    옛 철원 주민, 금강산철도 타고 수학여행 갔었다

    [MZ대학생 DMZ 524km를 걷다⑤]

    17일 강원 철원. 너머로 설산이 보인다. 이도훈 씨 제공17일 강원 철원. 너머로 설산이 보인다. 이도훈 씨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와~저기가 북한이라구요?"
    ②천오백년 역사 품은 건봉사…분단 70년 상흔 곳곳에
    ③금강산까지 32km…그러나 철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④'대국민 사기극' 평화의댐…평화·안보관광지로 변신 성공
    ⑤철원에서 멈춘 금강산행 열차…언제 다시 달릴까?
    (계속)

    철원, 우리나라에서 춥기로 유명한 지역이다. 11월에 벌써 영하로 뚝 떨어져 어제는 이동 중 첫눈을 보기도 했다. 오늘도 영하 6도로 추운 날이었다. 대원들은 핫팩과 워머, 장갑을 챙기며 단단히 채비했다.

    오늘 일정은 철원의 화강쉬리공원에서 민들레 마을까지, 용양보 습지에서 금강산철도까지 걷는다. 총거리는 약 12km다.

    평화와 통일 염원하는 '쉬리공원'을 걷다

    17일 강원 철원 화강쉬리공원에서 DMZ대원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류효림 인턴기자17일 강원 철원 화강쉬리공원에서 DMZ대원들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류효림 인턴기자
    오늘 일정은 화강쉬리공원에서 시작됐다. 부쩍 추워진 날씨에 언 몸을 풀기 위해 대원들은 쉬리공원 앞에서 5분간 스트레칭을 했다.

    화강쉬리공원의 이름에서 '쉬리'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청정함을 뜻한다. 마을을 끼고 흐르는 남대천에 1급수에만 발견된다는 '쉬리'가 서식하여 이름 붙여졌다. 또 하나는 영화 「쉬리」에서 차용한 상징으로서, 남과 북의 대치 속에 평화와 통일을 염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17일 강원도 철원 화강쉬리공원. 나무와 건물이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 류효림 인턴기자 17일 강원도 철원 화강쉬리공원. 나무와 건물이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 류효림 인턴기자 
    나무와 구름이 비칠 정도로 맑은 물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대원들은 "화강이 꼭 계곡물처럼 맑다"고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었다. 물속이 훤히 보여 매력적인 민물 낚시터로 유명하기도 하다.

    수심이 낮고 맑고 물이 깨끗해 철원을 대표하는 지역 축제도 열린다. 여름에는 이곳 화강에서 물놀이 축제와 다슬기 축제가 펼쳐져 가족끼리 관광을 오기 제격이다.

    화강을 둘러싼 수변 산책로와 민들레마을까지 약 9km를 걸었다.

    수변 산책로는 가을이 다녀가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어 경치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오른쪽에 강이 펼쳐진 수변 산책로는 대부분 평지여서 걷기에도 편했다. 이 탓에 주민으로 보이는 행인들도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북과 가까운 민들레마을에는 방폭문이 있었다

    17일 강원 철원 민들레마을. 박영규 인턴기자17일 강원 철원 민들레마을. 박영규 인턴기자
    이날 점심 식사는 철원 김화읍 도창리의 민들레마을에서 먹었다. 도창리는 광복 이후 북한에 편입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수복된 지역이다. 전쟁으로 피난 갔던 주민들이 옛 도창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해 새로 형성된 마을로 현재 5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민들레마을 지명의 유래를 흔히 민들레꽃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한국전쟁과 연관이 있다.

    도창리에는 소규모 평야 '민들레 벌'이 있다. 민들레벌에는 한탄강을 따라 흘러내려 온 현무암 자갈이 많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구멍이 많다는 의미로 '멍돌' 또는 '구멍돌'이라고 불렀다. 또 멍돌이 많은 들판은 '멍돌들', '먼들' 등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먼들을 지도에 'Mendle'로 표기했고, 이를 다시 우리말로 옮기면서 지금의 '민들레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17일 강원 철원의 민들레마을 마을회관에 민방공대피소가 있다. 박영규 인턴기자17일 강원 철원의 민들레마을 마을회관에 민방공대피소가 있다. 박영규 인턴기자
    북한 인근 마을이기에 마을회관 문은 포격을 차단하는 방폭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회관 내부에도 비상용품함, 비상대비시설비품함 등 민방공 경보 발령 시 사용할 물품이 놓여 있었다. 조용하고 아늑한 마을이지만 동시에 항상 위험에 노출된 곳인 듯 했다.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마을, 김화

    17일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김화마을의 역사를 전하는 이야기관에 도착했다. 박영규 인턴기자17일 한국전쟁으로 사라진 김화마을의 역사를 전하는 이야기관에 도착했다. 박영규 인턴기자
    이어 대원들은 김화마을에 당도했다. 김화마을은 지금은 휴전선 이남에서 사라졌지만, 김화이야기관에서 그 역사를 들을 수 있었다.

    김화군은 1945년만 해도 인구 9만 명에 1개 읍 11개 면 96개 리를 관할 구역으로 두고, 지역 내 백화점이 들어 설 정도로 번성했었다.

    그러나 광복 이후 북한으로 편입되면서 38도선 부근에 위치해있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김화군은 한국전쟁의 격전지로 전락한다.  

    무자비한 폭격으로 목조 건축물 대부분이 전소된 김화군은 이미 과거의 영광을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그렇게 김화군은 1952년 국내 행정구역에서도 사라진다. 2년 후 일시적으로 부활하기도 했지만 1963년 철원군으로 편입되며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지게 됐다.

    남방한계선 앞, 아직 북한군 상징 '별' 남아있었다

    17일 오후 DMZ 내 용양보 습지. 류효림 인턴기자 17일 오후 DMZ 내 용양보 습지. 류효림 인턴기자 
    민간인통제구역을 지나 DMZ생태평화공원에 들어섰다. DMZ생태평화공원은 제1코스 십자탑 탐방로와 제2코스 용양보 코스로 구성돼 있는데, 이날 대원들은 용양보 코스로 이동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군인들의 삼엄한 감시 속에 도착한 곳엔 철책이 동서로 길게 뻗어있었다. 철책 사이로 태극기와 유엔군사령부의 깃발이 보였다. DMZ 남방한계선(군사분계선 기준 2km 아래 지점)이었다.

    17일 용양보 습지 가는 길의 한 전봇대에 북한군의 상징인 별이 남아있다. 류효림 인턴기자17일 용양보 습지 가는 길의 한 전봇대에 북한군의 상징인 별이 남아있다. 류효림 인턴기자
    사방이 군사 시설로 둘러싸여 있어 사진 촬영이 엄격히 제한됐지만, 곳곳에는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격전을 벌였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특히 북한의 상징인 별과 우리나라 국방부 마크가 동시에 새겨져 있는 전봇대가 눈길을 끌었다. 원정대와 동행했던 해설사에 따르면, 원래 이 곳은 북한이 점령했던 곳이었지만, 전쟁 이후 수복해 국방부 마크를 새기면서 남북의 흔적이 모두 남게 된 것이라고 했다.

    화강 상류 DMZ 남방한계선에 위치한 용양보습지에는 호수, 늪, 하천 등 다양한 지형이 혼재돼있다. 식생·생물 서식환경이 우수해 멸종위기 야생생물인 수달의 서식이 확인될 정도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17일 용양보 한가운데 출렁다리가 앙상하게 흔적만 남아있다. 이도훈 씨 제공 17일 용양보 한가운데 출렁다리가 앙상하게 흔적만 남아있다. 이도훈 씨 제공 
    특히 왕버들 군락이 습지 전체에 분포돼있어 겨울의 쓸쓸한 아름다움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또한 보 한가운데에는 한때 DMZ 경계근무를 서던 병사들이 오가던 출렁다리가 앙상하게 흔적만을 유지하고 있어, 묘한 긴장감과 동시에 세월의 풍파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용양보습지는 북쪽 지역과의 생태적 연결통로 역할을 수행하는 등 서식처의 온전성, 자연성 등에서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17일 오후 철원의 금강산철도. 방승혁 씨 제공17일 오후 철원의 금강산철도. 방승혁 씨 제공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금강산 전기철도 교각을 사용해 조성된 습지인 만큼 옛 철교의 흔적으로 느낄 수 있는 근대문화유적으로서의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금강산 전기철도는 일제 강점기였던 1931년 완공돼, 철원역에서 김화역을 거쳐 금강산까지 약 116km에 달하는 노선이었다.

    지난해 여름 금강산철도. 홍천의 씨 제공지난해 여름 금강산철도. 홍천의 씨 제공
    본래 일제가 유화철을 반출할 목적으로 건설했지만, 이후 금강산으로까지 철도가 연장되며 금강산 관광객 수송이 주 목적이 됐다.

    옛 철원 주민들은 금강산 철도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기도 했다고 한다. 당시 철원에서 금강산까지 금강산 전기철도를 타면 4시간가량이 소요됐으며, 요금은 7원으로 당시 쌀 한 가마 값에 해당할 정도로 비쌌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정 엿새째인 18일에는 노동당사에서 도피안사를 거쳐 학저수지까지 걷는다. 총거리는 약 10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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