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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이재용 기각…웃는 삼성 vs 외로운 검찰

[김진오 칼럼]

검찰의 이 부회장 관련 증거 '차고 넘친다'고...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2020년 6월 9일은 삼성 앞에 선 검찰이 예전 같지 않은 존재임을 드러낸 날로 기억될 것이다.

9일 새벽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서울중앙지법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에서 기각되자 삼성그룹과 변호인 측은 내심 미소를 머금은 반면 검찰은 아쉬움, 그 자체였다고 한다.

검찰을 잘 아는 관계자는 8일 "검찰은 현재 착잡하고 외롭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여론전에서 삼성에 졌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삼성 측의 조직적인 움직임과 언론, 정치권의 동조가 심상치 않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김지영 전 대법관을 삼성준법감시위원장으로 위촉할 때부터 삼성의 '작업'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었다.

지난 달 6일 이재용 부회장이 2세 경영 포기와 준법경영을 직접 선언하는가 하면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5월18일 중국 시안 반도체사업장 출장을 강행한 것이 검찰 소환과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대표적인 여론전이라는 것이다.

이 부회장은 시안 반도체사업장에서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 투자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밝혔고, 5월21일엔 경기도 평택 EUV 파운드리 대규모 투자를 발표했다.

(그래픽=연합뉴스)

 

◇국민과 청와대, 정치권, 경제계를 겨냥한 공격적인 여론전이었다.

이 부회장은 문 대통령을 삼성 평택 공장으로 직접 초청했는가 하면 대통령 주재의 청와대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해 청와대와 여권의 환심 사기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4월 30일 평택 삼성공장을 찾아 "삼성의 원대한 목표에 박수를 보낸다"고 격려했다.

삼성이 검찰의 이 부회장 2차례 검찰 소환 조사 이후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심의를 요청한 것이나 지난 6일 구속영장의 부당성을 공개하며 검찰과 전면전을 편 것도 대국민 여론 환기용이자 검찰 압박용이란 해석이다.

더욱이 최재경 전 대검중앙수사부장 등 전직 특수통 출신 호화 변호인을 꾸린 것이라든지, 대다수 언론들의 이 부회장 우호적인 보도 등은 검찰을 고립무원의 지경으로 몰아세우기에 충분했다.

가뜩이나 검찰의 지원군은 별로 없다.

조국 사태 이후 윤석열 검찰은 청와대와 여당, 친여 성향의 국민으로부터 개혁의 대상으로만 인식될 뿐 이재용 부회장 구속과 관련한 응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검찰을 꽤 안다는 검찰의 전 고위직 관계자는 "2년 4개월 전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할 때는 청와대를 비롯한 정권과 국민이 박수를 쳤지만 지금은 그 박수소리가 사라진지 오래됐고, 오히려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하면 코로나로 위기에 빠진 경제를 누가 살리냐는 (구속에) 비우호적인 분위기가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제 대통령처럼 인식되는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한다는 것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것도 없이 불가능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검찰의 한 중견 검사는 "이재용 부회장의 영장 기각을 보면서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면서 "삼성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토사구팽이라는 단어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를 목표로 회계 조작과 시세 조정 등에 대한 불법 행위 증거를 차고 넘치게 갖고 있다고 한다.

7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공개된 증거 외에도 더 많은 증거를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열리면 공개할 것이라는 소문도 돈다.

법원도 9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의혹으로 이 부회장을 구속할 필요성이 약하다고 본 것이지, 무죄라는 것은 아니었다.

원정숙 부장판사는 "기본적 사실관계는 소명됐고, 검찰은 그간의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 정도의 증거를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의 중요성에 비춰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및 그 정도는 재판과정에서 충분한 공방과 심리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원 부장판사는 "불구속재판의 원칙에 반해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서는 소명이 부족하다"고 밝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뿐, 혐의에 대한 기본적 사실관계가 엉성하다는 것은 아니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으며 죄를 방어할 권리를 보장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김경진 변호사(20대 국회의원)는 이날 "검찰이든 법원이든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면서 "우리 모두가 삼성 앞에서 너무 작아진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은 피의자가 구속되어야만 죄를 지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경향이 강하나 현행법이 아니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 원칙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된 최지성 옛 삼성 미래전략실 전 실장(왼쪽), 김종중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전 전략팀장이 9일 새벽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언론 또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경우 검찰의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는 보도를 하는데, 그것 또한 잘못됐다.

검찰은 구속에 모든 것을 걸다시피 수사를 하다 기각 이후 수사진의 힘이 좀 빠질지언정 수사를 중단하거나 포기해서도 안 된다.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보강 수사를 벌여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국 사태로 인한 6개월가량 중단한 기간을 제외하고 1년 7개월을 달려온 검찰 수사를 더 하기보다는 불구속 기소를 하고 재판에 대비하는 게 낫지 않을까 판단된다.

이재용 부회장 수사를 보강한답시고 더 끌거나 2차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한다면 국민에겐 검찰의 오만으로 비춰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안감을 이 부회장 구속과 등치하려는 국민적 여론이 감지되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이 이 부회장 영장 기각에 대해 가타부타 성명 하나 없는 것만 봐도 기각을 인정하는 태도로 읽힌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삼성은 이 부회장이 삼성 합병·승계 의혹엔 떳떳하다고 해명하지만 범법 이전에 양심상 꺼릴 것이 없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삼성 측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에게 유리하게 합병 비율을 산정하고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를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는 시세조정 의혹은 금감위 선물조사위원회가 검찰에 고발한 사안이다.

삼성 측 변호인단은 지난 날 자신들이 몸담았던 검찰을 비판하며 원정숙 판사의 기각 사유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범죄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게 아닌, 도주나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뜻의 영장 기각일 뿐이다.

삼성 수뇌부와 변호인단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의 2세 승계와 무노조 경영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의 자세로 돌아가 겸손하기를 기대한다.

"재판을 하는 그곳에도 불의가 있고, 정의를 행하는 그곳에도 악이 있다"는 말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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