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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서사'는 늘 다르게 상상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미디어

    '여성서사'는 늘 다르게 상상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2019 연속특강_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
    4강. 떠나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성 서사의 매혹과 곤혹
    문학연구자 오혜진('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저자)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주최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의 마지막 네 번째 강의의 강연자 오혜진 문학연구자가 '떠나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성 서사의 매혹과 곤혹'이라는 주제로 지난 18일 서울 을지로1가 서울특별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지난 2017~2018년 힙합, 게임, 연예산업, 걸그룹, 광고, 웹툰 등 미디어 산업 속 깊은 여성 혐오에 대해 이야기했던 한국여성민우회가 이번엔 조금 더 깊이 있게 '이미지'를 짚어보기로 했다.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는 사진, 디자인, 미술, 문학 각 영역의 여성 창작자와 비평가가 총 4회에 걸쳐 사회 곳곳에 있는 '이미지'에 대한 시선을 짚어볼 예정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남성의 '렌즈'로 대상화되고 소비되는 여성의 '몸'
    ② '페미니즘 디자인'보다 중요한 여성 디자이너의 '생존'
    ③ 남성의 시선 넘어 '나' '여성' 시각으로 미술 보기
    ④ '여성 서사'는 늘 다르게 상상되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끝>

    책 ‘현남 오빠에게’ (사진=알라딘 제공)

     

    '여성 서사'란 무엇일까? 여성이 등장하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여성작가가 쓰면 곧 '페미니즘 문학'이 될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을 마주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답을 내리고 '여성 서사'라는 개념에 대해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여성 서사'라는 것을 규정하고 분류할 수 있을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가 주최한 2019 연속특강 '여성 창작자×페미니즘×이미지'의 마지막 네 번째 강의는 '떠나보지 않고서야 어떻게: 여성 서사의 매혹과 곤혹'이라는 주제로 지난 18일 서울 을지로1가 서울특별시NPO지원센터 1층 품다에서 열렸다.

    ◇ '페미니즘 소설', 고정적으로 연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저자인 오혜진 문학연구자는 이번 강의를 통해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여성 서사'가 상상돼온 방식의 역사를 점검하고, '벡델 테스트'(Bechdel test 또는 벡델-월리스 테스트(Bechdel-Wallace test)는 영화에서 양성평등을 가늠하는 지수다.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고안한 것으로서 해당 영화에 여성이 얼마나 자주, 주도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지를 평가한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여성 서사'에 대해 살펴봤다.

    강남역 살인사건, 문단 대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고은 시인 등의 성폭력 사실 폭로 등으로 인해 '여성 혐오'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발언과 행동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젠더 감수성(성인지 감수성·성별 차이에 따른 불평등 상황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하는 감수성)'을 바탕으로 영화, TV 등 미디어와 문화를 바라보자며 감상의 기준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른바 '페미니즘 소설'이라며 여성 작가들의 소설이 다수 출판되고 소개되고 있다. 심지어 '82년생 김지영'의 저자 조남주 작가의 '현남 오빠에게'의 표지 왼쪽 상단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오혜진 문학연구자는 "어디에도 '마르크스주의 소설'이라고는 붙어 있지 않은데, 페미니즘 소설은 내가 읽고 판단하기 전에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쓰여 나온 것이다. 문학사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만큼 페미니즘 소설이 팔리는 장르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한국문학이 페미니즘 소설을 상상할 때 이런 이미지구나, 고정적이고 전형적인 이미지로 연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과 '공동정범' 포스터.

     

    ◇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무엇을 말하는가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 본다.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를 통해 살펴보자. 영화진흥위원회가 지난 2월 18일 발표한 '2018 한국영화 산업 결산'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상업영화 중 애니메이션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 2: 새로운 낙원' 1편을 제외한 총 39편 중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영화는 10편(25.6%)이다.

    벡델 테스트는 1985년 만화가 앨리슨 벡델의 '경계해야 할 레즈비언(Dykes to watch out for)'을 통해 알려진 것으로 다음의 3개의 기준을 충족하는지 살펴본다.

    1. 이름을 가진 여성 인물이 최소 2명 등장하는가?
    2. 서로 대화를 나누는가?
    3. 남성에 대한 것 이외의 대화를 나누는가?

    이 같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 10편의 영화는 '국가부도의 날', '도어락', '마녀', '상류사회', '스윙키즈', '완벽한 타인', '인랑', '치즈 인더 트랩', '허스토리', '협상' 등이다.

    그렇다면 용산참사를 소재로 한 김일란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공동정범'(2016)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할 수 있을까?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 1명과 4명의 연대자. 주인공은 남자 5명이다. 철거민의 부인 한 명이 나오지만,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렇다면 여성 감독이 만들었지만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공동정범'은 '여성 서사'라고 할 수 없을까.

    실제로 '공동정범'을 두고 왜 '페미니즘 영화'인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이에 대해 김일란 감독은 '공동정범'과 '두 개의 문'에서 나타난 용산참사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페미니스트가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은 시각이었다고 답한다.

    오혜진 연구자는 "벡델 테스트가 일리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벡델 테스트는 여성 서사를 생각하는데 참조할 수는 있지만, '여성 서사'의 의미를 간단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라고 경계해야 함을 짚었다.

    '여성 서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여성 서사'가 '무엇'인지 정해져 있다는 판단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렇다면 '무엇'을 충족하는 '기준' 내지 '조건'은 무엇일까.

    오혜진 연구자는 "마치 매뉴얼화된 체크리스트가 있어서 몇 가지 항목을 통과하면 여성 서사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내가 생각할 때 여성 서사는 그런 게 아니다"라며 "벡델 테스트가 설명할 수 있는 건 페미니즘의 작은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은영의 소설 '쇼코의 미소'. 오혜진 문학연구자는 '쇼코의 미소'에 대해 포스트-페미니즘 이후 '알파걸' 세대이자 '세월호 세대'인 동시대 여성인물들이 등장해 '자기주도적 성장'이 '기만'인 시대에 '가장자리'에 마주선 여자들의 연대야말로 '재난'이 곧 '절멸'이 되는 것을 막을 힘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아주 동세대적이고 여성적인 문학으로 읽힌다고 말했다. (사진=알라딘 제공)

     

    ◇ '여성 서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벡델 테스트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BL(Boys' Love, 남성 동성애물)과 할리퀸 로맨스도 마찬가지다. BL로 불리는 남성 동성 성애서사는 여성이 쓰고 향유한다. 남성이 여성들의 볼거리가 되고 여성이 교환의 주체, 남성이 교환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전복적인 장르다.

    할리퀸 로맨스 역시 여성에게는 해방적 장르일 수 있다.할리퀸 문고의 쾌락은 할리퀸의 독서법칙을 즐기는 게 재밌어서다. 대량생산된 동종동형 연애서사들이 만들어 내는 장르문법을 '게임'처럼 즐기는 법 터득하면서, 서사 법칙을 짜 맞춰 가는 '장르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할리퀸 로맨스가 가진 '전복성'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할리퀸 로맨스를 즐기는 젊은 여성들만큼이나 '여성동아' 같은 주부 잡지와 주부 잡지를 읽는 여성의 독서는 '싸구려 독서'로 폄하됐다.

    '여성잡지 등 가벼운 책을 즐겨 읽는 이 같은 여성 독서 경향에 대해 문학평론가 유종호 이대 교수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는 것은 독서라고 할 수 없다"'(1986년 10월 2일 동아일보)라는 대목처럼 주부 잡지는 여성이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물증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싸구려 독서로 폄하된 '여성동아'를 통해 작가 박완서가 탄생했다. 박완서 작가는 1970년 '여성동아'에 소설 '나목'이 당선되며 등단했다. 사회적으로 폄하되던 주부 잡지가 박완서의 등단 지면이다. '우담바라'의 남지심 작가, '혼불'의 최명희 작가, '사십세'의 이남희 작가 등도 '여성동아'를 통해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오혜진 연구자는 "'여성 서사'를 벡델 테스트라든지 여성들만 등장하는 소설이라든지, 혹은 여성이 쓴 서사라든지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매뉴얼화할 수 없다는 게 오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오 연구자는 "그런데 왜 사람들은 여성 서사를 끊임없이 규정하고 싶어 하는가. '여성 서사'라는 게 그만큼 문화적으로 조명 받고 있다는 단적인 사례가 되겠지만, 여성 서사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은 여성주의적이지 않다. 여성 서사를 가장 단순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것, 그렇게 여성 서사는 곧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하는 게 가장 단적인 가부장제적인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 연구자는 "그래서 여성 서사에 대해 복잡하게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서사는 시대별, 문화별로 늘 다르게 상상됐다"라며 "여성 서사라는 건 어느 날 갑자기 뚝 떨어진 게 아니고 변화하는 것이다. 여성 서사는 시대에 따라 다르게 상상되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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