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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는 그래야 해"…'굴종 문화'로 변질된 간호사 소명의식



사건/사고

    "간호사는 그래야 해"…'굴종 문화'로 변질된 간호사 소명의식

    대가 없는 '간호사다움'의 굴레에 손발 묶인 인권

     

    환자의 생명과 직결돼 엄격함을 요구하는 조직문화가 현장 곳곳에서 간호사의 인권과 노동권을 침해하는 논리로 악용되고 있다. '간호사다움'이 비단 환자를 대하는 업무 뿐 아니라 병원·재단 측과의 관계에까지 요구되면서 부당한 '굴종의 문화'를 자리 잡게 한 것이다.

    ◇ 엄격한 조직문화, 부당한 노동 요구와 대우로 변질

    성심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 A(44) 씨는 수년간 재단 체육대회 동원은 물론 수당도 없는 일상적인 초과 근무를 견뎌야 했다. 지칠 대로 지친 A 씨였지만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았다. '환자를 위한 것'이란 바탕 위에 세워진 엄격한 조직문화 탓이다.

    A 씨는 "병원에서 하는 화상회의 등이 병원의 발전, 곧 환자를 위한 것이란 차원에서 지시가 내려오다 보니 간호사들은 이 모든 것들을 자연스러운 업무의 연장이라고 생각하게 됐다"며 "쓰러질 지경이 되기 전까진 '오늘은 아파서 못 하겠다'는 말도 못하겠더라"고 밝혔다.

    비단 성심병원 같은 사립병원뿐만 아니다. 완고한 조직문화 속에 부당한 규정 밖 노동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어딜 가든 마찬가지'라는 것이 복수의 현직 간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간호사 이모(27) 씨는 지난해 10월 다니던 국립병원에 사직서를 냈다. 이 씨는 "주변에선 그 좋은 국립병원 왜 그만뒀냐고 하는데, 어차피 다 똑같다"며 부족한 인력과 상시적인 초과 근무, 심지어는 장기자랑 동원까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 국립병원에서도 매한가지라고 호소했다.

    심지어는 병원 발전기금을 강요받기도 했다. 이 씨는 "이미 별도의 기부를 하고 있어 하고 싶지 않았지만 '네가 다니는 병원에 만 원이 아깝냐'는 수간호사의 한 마디에 결국 기부 아닌 기부를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런 식의 일들을 겪으며 더 이상 한국에서 간호사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고 덧붙였다.

    ◇ '간호사니까' 소명의식 강요 아닌 자긍심 가질 환경이 필요

    고유의 조직적 기합 문화를 일컫기도 하는 이같은 '태움(영혼까지 불태울 정도로 혼을 낸다)문화'는 간호사로서의 '소명의식'이 악용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기 때문에 한 치의 실수도 용납이 안 된다(대한간호사협회 관계자)"는 엄격한 조직 문화가 간호사의 인권‧노동권의 이슈에까지 오남용 된다는 것이다.

    6년차 간호사 B(27) 씨는 요즘도 급한 일인양 콜벨을 눌러 간호사를 찾고는 '리모콘을 가져오라'는 환자들의 요구를 듣고 있다. B 씨는 "병원에선 '간호사답게'란 말을 자주 한다"며 "간호사로서 소명의식을 갖고 일하는 건 맞지만 그게 전혀 상관이 없는 상황에서도 등장하곤 한다"고 토로했다.

    소명의식에서 비화된 그릇된 굴종의 문화가 간호사들의 행동양식 전반에 요구되는 현실이다. B 씨는 "아무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환자 버린 간호사' 소리를 들을까 외부에 알리는 등 직접적인 행동을 하는 건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박민숙 부위원장은 "환자를 치료하고 간호하기 때문에 규율이 엄격하고 긴장 상태이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것이 인권유린이나 '갑질' 문화로 변질돼 문제"라며 "하루 두 세 시간 씩 공짜 노동이 이뤄지는 게 비일비재한 현실은 결국 간호사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부위원장은 "완고한 조직문화를 강요하기만 할 게 아니라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그래야 간호사의 소명의식이 현실에서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표출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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