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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에 찌든 사극…언제까지 권력과 性 동경하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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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에 찌든 사극…언제까지 권력과 性 동경하랄 텐가"

    [요즘 사극 왜 이래 ①] 고전평론가 고미숙 "통찰적 유머 없는 빈곤한 정서"

    여러분은 최근 영화나 TV 등에서 소개되는 사극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 사극 괜찮던데"라는 말보다는 "요즘 사극 왜 이래"라는 푸념이 더 자주 들려옵니다. "사극의 맛과 멋이 없다" "현대물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주를 이루는데요. CBS노컷뉴스가 고전평론가, 사회학자, 역사학자와의 연속 인터뷰를 통해 사극의 현재를 짚어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고전평론가 고미숙 "욕망에 찌든 사극…언제까지 권력과 性 동경하랄 텐가"
    ② 사회학자 노명우 "스피드 쫓는 눈먼 사극…주위 둘러볼 '템포' 필요한 때"
    ③ 역사학자 오종록 "영웅 키우는 사극…신분차별 여전한 한국 사회의 맨얼굴"

    사극 '육룡이 나르샤'의 주인공들(사진=SBS 제공)

     

    "제가 방송사 PD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면 누누이 강조하는 게 있어요. '사극의 테마가 늘 지독한 권력투쟁 아니면 주색잡기다. 권력과 성(性)이 안 나오면 이야기가 안 되냐. 이것이 우리네 대중문화의 수준이다'라고요. 역사를 다루는 사극의 방식이 권력욕과 성욕에 찌든 탓이죠."

    지난 20년 동안 지식인 공동체를 꾸려 오며 대중 인문학의 물꼬를 튼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는 "미학적으로 볼 때 영화, TV 등에서 소개되는 사극은 권력과 성을 좇도록 강권하는 근대적 욕망에 매몰돼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서울 필동에 있는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에서 마주한 그는 한 예로 현재 방영 중인 TV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를 두고 "해석이 갈수록 빈곤해지고 있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멜로와 무협 요소를 섞어 조선 건국사를 따라가는 육룡이 나르샤는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보는 재미를 주고 있어요. 그런데 최근 방송에서 이방원(유아인 분)이 어린 나이에 살인을 하고 계속 거짓말을 하는 장면을 봤어요. 그가 대업을 이을 인물로는 내공이 떨어진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죠. 결국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동양적 사유 안에서 이방원은 성군이 되기 틀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방송 다음날 아침에 포털 사이트를 살펴 보니, 관련 기사 제목이 '거짓말 할수록 끌린다'는 식으로 찬사 일색인 거예요. 사극을 바라보는 눈이 바람직한 인식의 차원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걸 느낀 단적인 풍경이었죠."

    고 씨가 볼 때 육룡이 나르샤 역시 기존 사극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청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흥행 전략은 짰지만, 인식의 전환을 통해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려는 노력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민초를 대변하는 영웅의 이야기는 사실 진부한 것이죠. 권력을 지닌 자들의 정치적 관점을 대변하는 궁중 사극만큼이나, 사회 변혁의 당위로서 민초를 걱정하는 영웅이 등장하는 사극도 이젠 긴장감이 떨어지니까요. 육룡이 나르샤를 보면 1980년대 운동권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면이 있어요. 극중 주인공들이 외치는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말이 장식용으로 다가오는 이유예요. 과거를 벗어날 수 있는, 현실에 깊이 뿌리내린 새로운 정치·사회적 감각을 통한 상상력의 전복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극의 현실은 이러한 상상력의 전복과는 몹시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고 씨의 견해다.

    "최근 종영한 TV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는 사실 네 살 아이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다가왔어요. '해를 품은 달'(2012)에서처럼 왕이 첫사랑을 못 잊어 정사를 소홀히 하면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집니다. 결국 막장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욕망이 시대만 옮겨져 사극에서 재현되고 있는 셈이죠. 사극을 왜 만드는지, 그 공력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고민이 없어요."

    ◇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왜곡 심해…현대의 빈곤한 정서로 조작되는 과거"

    고전평론가 고미숙(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고 씨는 "일반적으로 동양 고전에서 미색의 등장은 주인공의 인생이 망가지는 것을 암시하는 특별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렇듯 미인계 등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는 방식이 현재 사극에서는 마치 일상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극에서 인간의 삶과 본성에 대한 왜곡이 몹시 심하게 이뤄지고 있는 셈이죠. 그만큼 과거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는 말이에요. 많은 사극에서 로맨티스트인 왕이 정치도 잘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주는데, 이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단순히 스펙을 나열하는 것밖에는 안 돼요. 사극 안에서는 고려인과 조선인의 삶과 정서도 다르게 그려지지 않아요. 분명히 시대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살았을 이들에 대한 이해가 없는 거죠. '피 터지게 싸워서 미인을 얻는다'는 사극의 전형화된 구도가 현재 대중문화의 빈곤함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고 씨는 장희빈이나 연산군 같은 문제적 인물이 사극에 단골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한국 사회의 문화가 비극을 미화해 온 서양의 세계관에 짙게 물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주인공이 희생당하거나 역경을 딛고 영웅으로 거듭나는 비극적인 세계관은 서양의 것이죠. 동양에서는 영웅이나 미인을 숭배하지 않아요. 영웅의 등장은 그 자체가 난세를 의미합니다. 장자, 노자, 공자 같은 사상가들이 평범한 인생의 생로병사를 '도'라 부르며 '중도를 유지하라'고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죠. 반면 서양의 비극적 세계관을 따르는 사극은 '충동을 향해 달려가라'고 말하고 있어요. 잘생긴 배우들을 내세워 '그렇게 사는 게 멋지다'며 보통 사람들에게 예술가처럼 불태우는 삶을 덮어씌우는 거죠. 그런 삶을 우리 모두가 동경해야 할까요?"

    "자본주의가 나쁜 이유는 이러한 빈곤한 욕망을 멋진 이미지로 포장해 불특정 다수에게 팔고 있다는 점"이라고 그는 지적했다. 할리우드식 영웅담론과 비극적인 멜로가 결합하면 딱 우리네 사극이 된다는 것이다. 고 씨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의 사극은 '욕망의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불타는 사랑을 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의 사극을 보면서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건 문화적인 해악이죠. 현대인의 감각이나 정서와는 다른 창조적인 해석이 바탕에 깔려야만 사극이 가치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동양, 특히 한국의 고전은 비극을 미화시키지 않아요. 대신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삶이 무상하게 지나간다는 점, 어떤 식으로든 새로운 활기를 얻게 된다는 걸 강조하죠. 판소리 춘향가 가운데 옥에 갇힌 춘향이가 매를 맞는 십장가를 보면 여주인공이 운명에 당당하게 맞서는 게 그 단적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동양고전 속 주인공들은 운명을 끌어안고 가기 때문에 비극 안에서 자신을 쥐어짜는 왜소함이 없습니다."

    ◇ "사극이 빚어낸 비극의 일상화…유머·역설 강조해 온 한국식 정서에 눈 돌려야"

    영화 '사도' 스틸컷(사진=쇼박스 제공)

     

    고 씨는 현실 사회에서 빈곤한 욕망만을 좇도록 내몰리고 있는 현대인들이 숨쉴 수 있는,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대중문화로서 사극의 발전된 모습을 제안했다.

    "사극은 시공간의 배치를 바꾸는 데서 출발합니다. 미학적인 정서와 인식에 있어서 새로운 지도를 그릴 수 있는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환경인 거죠. 이를 위한 상상력을 발휘하려면 관련 텍스트들을 많이 접해야 할 텐데, 한국 사회에서 대중문화를 담당하는 분들이 기본적으로 서양식 미학에 익숙해져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현대의 정서로 과거를 조작하고 있는 셈이죠."

    그는 이준익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도'를 좋은 사극의 예로 꼽았다. "사도세자가 노론과 소론 사이 정쟁의 희생양으로 제거됐다는 진부한 해석에서 벗어나, 대단히 변덕스러우면서 기운이 강한 아버지 영조와 자리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내린 아들 사도세자라는, 두 인물의 서로 다른 정서가 맞부딪쳤을 때 벌어진 운명의 흐름을 잘 따라갔다"는 평이다.

    "그동안 대다수 사극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닌 특별한 정서에 주목하지 않아 왔어요. 모든 것을 정치이념이나 거창한 명분과 연결지어 인물들을 역사의 희생자로 만들려 했던 탓이죠. 사람과 사람의 관계 안에서 감정의 골이 중요하다는 건 현실을 사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사도를 보면서는 이준익 감독이 작정하고 공부한 뒤 만든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팩션에 대한 유혹을 떨쳐내면서 정면승부를 한 점이 오히려 그동안 볼 수 없던 새로운 해석을 낳은 거죠."

    고 씨는 "동양에서는 '도'를 두고 '우주적 농담'으로 표현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식으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전복이 일어날 때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문화로서의 사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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