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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앞둔 지난 28일, 직장인 윤지원(34.가명)씨가 점심 시간에 회사 근처의 대형 마트를 찾았다.
2만원짜리 참치 세트를 유심히 살피던 윤 씨는 이것저것 유심히 고르다 결국 6만원짜리 굴비 세트 3개를 집어들었다.
"두 개는 아이들 담임 선생님,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원장 선생님 거에요.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 추석 선물로 드릴 거라 아무래도 신경쓰여요. 지난해는 상품권을 선물해 드렸는데 성의없어 보여서 올해는 음식으로 하려구요."
지난해부터 4살, 5살 아들 둘을 동네 근처의 어린이집에 맡겨온 윤 씨는 "스승의 날 뿐 아니라 추석, 설 같은 명절때도 어린이집 선생님 선물을 꼭 챙긴다"며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엄마들도 대부분 다 하는 분위기라 나만 안 하면 좀 찜찜하다"고 귀띔했다.
◇포털사이트 핫 키워드 '어린이집 추석 선물'추석을 앞두고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들이 어린이집에 보낼 추석 '선물'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얇아진 지갑 탓에 값비싼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부담스럽지만 아이를 맡기는 입장에서 선물을 보내지 않으면 내 아이가 다른 집 아이와 차별 대우를 받을까 하는 걱정에 모른척 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엄마들의 깊은 '고민'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만 봐도 알 수 있다. 한 포털사이트에 어린이집을 검색하면 자동완성기능으로 '어린이집 추석선물'이란 단어가 검색된다.
'어린이집 추석선물'의 연관 검색어로는 '어린이집 선생님 추석선물'이란 구체적인 검색어부터 '어린이집 추석선물 해야하나요?'라는 근원적인 질문도 검색어로 올라와 있다.
부모들의 입장은 반반으로 나뉜다. 먼저 선물 반대파. 스승의 날에 감사의 표시를 했는데 명절까지 챙기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이다.
주부 김모(29)씨는 "스승의 날 때 선생님께 직접 구운 과자와 감사 편지를 전해드렸다"며 "명절까지 챙기는 건 좀 오버하는 행동인 것 같아 (선물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3살 된 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정모(33)씨도 "주위 엄마들이 추석 선물 보낸다는 얘기를 안 해서 전혀 생각도 하고 있지 않았다"며 "명절이라 돈 들어갈 곳이 많아 부담스러운데 선생님 선물까지 챙기는 건 힘들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반면 어린이집 추석 선물 찬성파의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엄마들이 하는데 우리애만 안하면 미움받지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다.
지난 6월 24개월 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기 시작했다는 정모(30)씨는 "어린이집 추석 선물은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른 엄마들이 다 한다고 해서 저도 해야 할 것 같다"며 "무난하게 생필품이나 화장품을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어린이집에서 선물을 받지 않는다는 공문을 보냈지만 막상 선물을 들고 찾아가면 다 받더라"며 "아무래도 사람이니까 선물을 드리면 우리 아이를 더 잘 봐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사는 곳과 생활 수준에 따라 추석 선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어린이집 교사 김모(35)씨는 "엄마들 생활 수준에 따라 선물도 천차만별"이라며 "적게는 3만 원부터 많게는 10만원 수준의 선물을 한다"고 전했다.
김 씨는 "함께 먹을 수 있는 과자나 케이크, 과일 외에도 젊은 엄마들의 경우, 상품권이나 커피전문점 상품권 등을 선물로 주기도 한다"며 "몇몇 엄마들은 추석 같은 명절 외에 밸런타인 데이처럼 특정 기념일도 교사에게 선물을 한다"고 말했다.
◇교사들 "형식적 '선물'보다 진심어린 '감사 인사'가 더 마음 울려"그렇다면 추석 선물을 받는 '주인공'인 교사들은 어떨까?
어린이집 교사들은 "선물을 받으면 감사하긴 하지만 선물의 여부가 아이에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지난해까지 어린이집에서 일한 김모(35)씨는 "선물을 안 하면 내 아이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많은 어머니들이 선물을 하시는데 선물을 받는다고 해서 내 할 일을 안 하진 않는다"며 "선물과 아이들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교사 박모(24)씨도 "선물을 받지 않아도 예쁘고 착한 아이한테는 저절로 눈이 간다"며 "오히려 평소에는 무관심하다가 명절이라고 선물을 주는 엄마들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BestNocut_R]추석 선물을 받지 않겠다는 공문을 학부모들에게 전달한 경기도 수원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같은 반 아이 엄마가 어떤 선물을 했는지에 대해 다른 엄마들이 굉장히 많이 신경 쓰고 내 자식이 홀대받을까 걱정하는 게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다고 생각해 사전에 안내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형식적인 선물보다는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가 더 크게 다가온다고 입을 모았다.
한국어린이집 총연합회 장진한 위원장은 "물질적인 인사보다는 평소 수십명의 아이들을 제자식처럼 돌보는 어린이집 교사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게 더 감사하다"며 "교사들의 수고에 대한 진심 어린 감사 인사가 교사들을 더 힘나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