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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중 경남 통영과 거제에서 민간인 수백 명이 학살됐던 '국민보도연맹 사건'은 공권력에 의한 집단학살인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1947년 8월부터 1950년 9월까지 통영·거제 일대에서 군경에 의해 민간인 수백 명이 숨진 사건에 대한 조사결과를 20일 발표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민간인 상당수는 국민보도연맹원에 가입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군·경의 모함으로 고문과 취조를 당한 뒤 살해된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는 이같은 사실을 해당 사건의 군법회의 판결 심사자료와 수사기록, 조사 의뢰인 등의 진술을 통해 밝혀냈다.
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947년 8월 거제 연초면 다공리 주민 3명은 보리 공출 항의 시위에 참가했다가 사살됐으며, 하청면과 장승포읍 주민들도 1949년 '빨치산'에 협조한 혐의로 국군 제16연대 등에 의해 총살을 당했다.
또 1950년 9월 10일에는 인민군에게 협력했다는 이유로 광도면 안정리 마을 주민 상당수가 마을 치안대에 의해 마을 입구 다리 밑에서 살해되기도 했다.
이 기간 동안 국민보도연맹원들은 한 번에 최소 100명 이상 무차별 학살된 것으로 밝혀졌다.
1950년 7월 중순 통영 지역에서 최소 110여 명의 국민보도연맹원들이 광도면 안정리 무지기고개에서 총살당했으며, 거제 지역에서도 같은 해 7월 연행된 국민보도연맹원 260여 명 가운데 일부가 지심도 앞바다에서 군경에 의해 익사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정치적 반대 세력이라는 이유로 일부 우익인사들마저 군·경의 희생양이 된 것으로 조사됐다.
위원회가 육군본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CIC(방첩부대) 거제도 분견대장은 우익인사 2명을 모함하기 위해 범죄 사실을 조작한 뒤 1950년 8월19일 통영군 지심도 인근 해상에서 학살했다.
또 거제경찰서 사찰주임은 CIC와 HID(육군첩보부대) 소속대원 등과 공모해 당시 대립 상태에 있던 대표적 우익단체인 '거제 국민회' 재정부장을 '경찰이 매수당했다'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이유 등으로 1950년 7월 살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에서는 한국전쟁 당시 통영공립수산중학교 교장과 반민특위 위원을 포함해 통영 반공단장과 자유당 중앙위원, 대한청년단 간부 등 상당수의 우익인사들도 희생당한 것으로 추가로 밝혀졌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통영·거제에서 군·경에 의해 민간인이 집단학살됐다'는 주장이 공식 확인됐다"면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73명이지만 실제 희생자는 이를 훨씬 웃도는 800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국민보도연맹'은 이승만 정권이 6.25 전쟁 당시 좌익인사를 전향시키려는 목적으로 1949년 설립했으며, 이에 속하지 않은 민간인까지 집단학살됐다는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진실화해위가 지난 2007년부터 진상 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