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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을 하루같이…노숙자 주치의로 봉사"

[노컷이 만난 사람]'이원길 인본주의상' 받은 박용건 성가복지병원 내과과장

 

"이제 들어오시지요." 인터뷰 예정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앞서 도착한 탓에 지리하게 이어진 기다림의 시간은 박용건 내과 과장의 말과 함께 끝이 났다. 인터뷰는 진료 마감 시간인 오후 5시에 딱 맞춰 시작됐다.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았는지 박 과장은 기자와의 만남 자체에 대해 당혹스럽고 난처해했으며 마지못해 응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성가복지병원 내과 박용건 과장(65). '제1회 이원길 가톨릭 인본주의 상' 수상자다. 이 상은 가톨릭대학교가 평생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친 가톨릭 정신을 실천한 고 이원길 씨의 삶을 기리기 위해 올해 제정한 것이다. 박 과장은 지난 2000년 서울 강남에서 운영하던 개인병원을 접고 성가복지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우리 사회 어려운 이들을 위한 진료에 헌신해온 '노숙자들이 주치의'다.

-성가복지병원은 어떤 병원인가.

"'성가소비녀회'라고 하는 수녀회 수녀님들이 노숙자, 무의탁자 등 어려운 이웃들의 병고를 덜기 위해 운영하는 무료병원이다. 예전 유료로 운영되던 것을 수녀님들이 23년 전 무료병원으로 전환했다. 수녀님들이 당시 김수환추기경님을 찾아가 '완전무료병원을 하려 합니다. 이사장님이 되어 주십시오'라고 했단다. 추기경님이 말씀 들으시고 한참을 고민한 뒤 '좋은 일이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보인다'고 답변하셨단다. 수녀님들은 정말 대단했다. '만일 부족해서 중간에 문 닫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시작해보겠다. 주님을 믿고 나가겠다'고 하셨단다. 이번 상은 이걸 23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끌어오신 수녀님들이 받아야 마땅하다."

-무료병원인만큼 어려움이 많았을텐데.

"한 번은 화장지가 떨어졌다. 하느님 일을 하시는 분들은 걱정은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잖나. '아! 이걸 어떡하지?'라고 했더니 수녀님들이 '주님께 청해보지!'라고 답하셨단다. 정말로 다음날 느닷없이 트럭이 화장지를 가득 싣고 들어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병원이 문을 닫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다."

-후원자들 중에는 일반 시민들도 많을 것같은데.

"그렇다. 재벌이 후원하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서 1원도 받지 않는다."

-여기서는 건강보험카드가 필요 없겠다.

"건강보험 들었으면 우리 병원에 오면 안 된다. 보험조차 없는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주려는 게 애초 설립 목적이다. 초기에는 환자의 상당수가 노숙자와 무의탁였다. 이후 시간이 많이 흘러 이들보다 조금 나은 위치에 있지만 어디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돕고 있다."

-병원 운영상 어려움으로 아찔한 상황도 있었을 것같다.

"주님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라면 여러 번 겪어보는 일이다. 주님은, 내 생각을 버리고 매달려서 진력을 다한다고 하면 어려움은 겪을 수도 있겠지만 완전히 엎어지게는 안 하신다."

-환자들은 어떤 증상이 많은가.

"내가 보는 내과 환자의 70% 정도는 알코올성 간질환이다. 오랜 기간 노숙자로 기댈 데 없이 어렵게 살아온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행히 일자리를 얻었더라도 건축현장 등에서 단기간 노동으로 연명하는 탓에 알코올에 의한 간질환이 늘 문제가 된다."

-이외의 증상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연세가 좀 드신 분들은 만성폐색성폐질환하고 그 다음이 위장질환이다."

-치료를 받았더라도 밖으로 나가면 다시 하루 하루가 힘든 사람들인텐데.

"그래서 치료가 한 번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여러 번 반복해서 입원한다. 또 알코올성 질환 특성상 자기 스스로 의지로 극복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치료에서 아쉬움이 남는 경우도 있었을 것같은데.

"우리 병원 형편상 좀더 잘해줄 수 있는 것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타병원으로 환자를 보낸다. 우리는 CT, MRI를 갖고 있지 않다."

-타병원 의뢰는 무료인가.

"우리가 돈을 내고 하는 것이다. 어떤 병원은 우리의 뜻을 이해하고 비용을 좀 깎아주기도 한다. 아주 감사하다."

-병원이 기부와 자원봉사로 운영된다.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내가 알기로 연 자원봉사 인원이 5000명 정도다. 뒤에서 드러나지 않게 좋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이다."

-자원봉사자들은 어떤 일을 하나.

"어떤 분은 화요일 오전 와서 주방봉사를 한다. 어떤 분은 월요일 오전 중환자실에서 환자들 관장봉사를 한다. 화장실, 복도, 유리창 청소 등 각 분야 다 나눠 자기 몫을 기쁜 마음으로 하고 간다. 토요일에는 다른 병원 선생님들도 오신다. 여기는 그런 걸로 메워지는 곳이다. 이렇게 보고 있면 '아 이런 게 기적이지'하는 생각이 든다."
-
수상 배경은 뭐라 생각하나.
"
처음 원장 수녀님한테 말씀 들었을 때 '아이구! 저는 아닙니다. 다른 분을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상 이름에 '이원길 인본주의'라고 돼 있던데, 솔직히 이원길 인본주의가 뭔지도 몰랐다."

-개인병원을 접고 이쪽 올 때 주변 반대는 없었나.

"있었다."

-가족들은 어땠나.

"가족은 지지를 보냈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것 때문이다."

-개인병원을 접은 당시에 대해 말해달라.

"강남 논현동에서 개인병원하고 있었다. 새로운 스타일로 운영하고 싶어 확장공사에 들어갔다. 인테리어 등 공사에 두 달이 걸리다더라. 그래서 '잘 됐다. 두 달의 시간 평일 봉사할 일을 알아봐야 겠다' 마음 먹었다. 집사람에게 얘기 했더니 성가복지병원이 내과 의사가 없어 어렵다는 얘기가 나온 주보를 보여줬다."

-그런데 왜 아주 건너왔나.

"진료봉사가 약 한달쯤 됐을때 '당신 병원으로 돌아가지 말고 여기서 환자 계속 봐주시면 어떻겠느냐?'라고 수녀님들이 많이들 말씀하셨다. 환자들이 굉장히 많이 몰려오고 편안해한다면서다. 그러나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한 수녀님이 '오늘 복음 읽어 보셨어요'라고 물으시더라. 나중에 복음 읽어봤더니 예수님이 어부이던 제자들을 부르시는 대목이었다. 성서에는 '그들이 그물을 버리고 따랐다' 이렇게 돼있다. 어부들에게 그물은 살아가는 의미이고 방법이고 삶의 전부다. 그 수녀님이 내가 그물로 생각하는 개인병원을 버리고 주님의 길을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신 거다."

-고민이 컸겠다.

"집사람한테 '하느님 뜻이 어떤 것인지 기도로 알아보자'고 말했다. 신앙심이 나보다 더 깊은 집사람이 철야기도를 떠났다. 집사람이 사흘 뒤 집에 돌아와 말하더라. '의사는 어차피 봉사의 삶이다. 그런데 벌 거 다 벌고 가질거 다 가지고 마련할거 다 마련해놓고 자식들 다 키워놓고 아쉬울거 하나도 없고 넉넉함을 갖고 있을 때 보면 나이가 많이 들었을때다. 그럴때 하얘진 머리로 '아 이제 봉사나 하러 가볼까' 이거는 아니지않느냐'라고 말이다."

-사모님이 결론을 내려준 셈인가.

"그렇다.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면 바로 당신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말씀이 들린거나 똑같은 거다. 그렇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다'고 집사람한테 말했다."

-솔직히 경제적인 걱정이 컸을텐데.

"그렇다. 망설임의 첫 번째가 솔직히 그거였다."

-봉사가 뭐라 생각하나.

"27년 전쯤 봉직의로 있을 때다. 격주로 장애인시설에 봉사를 나갔다. 그런데 어느날 문 열고 들어갔는데, 보통 때 같으면 '올라오세요, 들어오세요'하면서 반갑게 맞았을덴테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거다. 보니까 모두 특식으로 자장면을 먹고 있더라. 오랜만에 별미 먹느라 아는 척 안한거다. 밖에서 식사 끝나기 기다리는데 화가 치밀어오르는 거다. '내가 그동안 죽 보살폈는데 아는 척도 안하네!' 그런데 식사가 끝나고 진료를 위해 방으로 들어가는데 순간, '아! 내가 참 멀었다' 생각이 들더라. 내가 봉사합네 하면서 봉사를 핑계로 남에게 대접받기를 원했던 마음이 있었던 거다.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여기서 환자를 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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