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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토실설''에 나타난 이규보의 자연사랑

  • 2013-03-06 11:48
고려의 문장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규보(1168-1241)가 쓴 ''괴토실설(壞土室說)''이라는 짤막한 수필이 있다.

글 속 이규보의 아들들은 어머니나 아내, 집안 여인네들의 고충을 덜어준다고 움집을 만들려다 꼬장꼬장하고 고리타분한 아버지에게 혼쭐이 난다.

국어사전에는 토실을 ''흙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두른 뒤 지붕을 얹어 만든 집''이라고 했다.

옛날에는 한 겨울에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규보의 아들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움막을 파거나 땅굴을 파서 무나 감자, 배추 같은 채소를 갈무리해두고 꺼내 먹었다.

 

이렇게 자연의 조건을 인간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재조정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움집을 파서 꽃도 길러보고 채소도 갈무리하고 혹독하게 추운 날 따뜻한 곳에서 일 좀 해보겠다는 이규보 아들들의 생각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 정도의 적응은 차라리 순진하기까지 하다.

이규보는 움집을 지어서 꽃과 나무를 갈무리하고 겨울에도 길쌈을 하는 것은 자연의 운행과 질서를 교란시킨다고, 사람의 품격을 뱀이나 두꺼비 수준으로 떨어뜨린다고 화를 내며 당장 허물어버리라고 을러대었다.

이규보는 왜 고집을 부렸을까? 그는 이런 일이 초래할 결과를 걱정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의 혹독한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이런 움집을 고안해 편리하게 이용하겠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결실이 많아지면 반드시 이를 통해 이득을 챙기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윤을 추구하려는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마음은 억지로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허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다.

그래서 이규보는 아예 움집을 헐어버리게 했던 것이다.

하늘은 시간으로 땅은 공간으로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다.

현대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으로는 시간의 차원을 넘어갈 수도 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문제이고 아직까지 사람은 여전히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공간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간의 그물에 갇혀 삶을 마감하게 된다.

넘쳐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는 연부역강(年富力强)한 한창의 나이에는 자기를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한없이 확장하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어느덧 나이를 먹게 되면 시간과 공간의 맷돌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서서히 자기를 갈아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규보의 괴토실설에서는 자연의 운행에 대한 젊은이와 늙은이의 관점의 차이를, 약간의 해학미와 비장미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더욱 자세한 글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www.itkc.or.kr)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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