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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법칙''(1994), ''태양은 없다'' ''쉬리''(1999), ''반칙왕''(2000), ''태극기 휘날리며'' ''역도산''(2004), ''달콤한 인생''(2005),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그리고 ''베를린''(2013). 충무로에서 이 사람을 빼놓고 액션을 얘기할 수 없다.
그는 지난 24년간 스턴트맨으로, 무술감독으로 그리고 때로는 액션배우로 좀 더 진짜 같고 강렬한 스펙터클을 위해 달려왔다. ''바람의 파이터''(2004)로 춘사영화제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그는 ''짝패''(2006)에서는 무술감독, 주연, 공동제작자로 이름을 올렸다.
모든 배우들이 액션연기에 앞서 방문하는 서울액션스쿨은 그가 2008년에 인생을 걸고 세운 공간이다. 작년에는 월드스타 이병헌과 함께 평소 꿈에 그리던 할리우드에도 진출했다. 결과물인 ''지.아이.조2''와 '' ''레드2''가 올해 개봉하는 가운데 첩보액션 ''베를린''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정두홍 무술감독(47세)을 만나면서 쏟아지는 칭찬과 넓어진 행보에 즐거운 표정을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만난 정감독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1990년, 우연히 방문한 임권택 영화 촬영현장에서 스턴트맨을 향한 따가운 시선, 비참한 대우에 분노해 "이 판을 바꿔보겠다"고 영화판에 뛰어든 그였다.
그는 "아직도 판을 못 뒤집었다"며 "정두홍의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보다 높은 목표에 헌신하라고 했던가. 정두홍이 바로 그랬다.
- 오랜 할리우드 진출의 꿈을 이뤘다."이병헌씨가 저를 옵션으로 걸었다. 나이 들어 대역도 하고 힘들었다.(웃음) 처음에는 텃세가 심했다. 시쳇말로 저 새끼 뭐냐, 그런 시선이었다. 그러다가 이병헌 리허설 대신 한번 해주는 거 보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액션은 감정이라고 하잖나. 감정이 뭔지 확실히 보여줬다."
- 더 좋은 환경에서 새로운 걸 시도했나?"새로운 걸 시도했다기보다 정두홍의 몸틀기를 보여줬다. 그들이 원하는 액션동작을 하면서 제 색깔을 넣었다. 현지 감독과 프로듀서, 스턴트맨들이 깜짝 놀라했다. 왜냐하면 똑같이 짜놓은 합인데 순간 진짜처럼 보인 거다. 거칠고 사실적인게 한국액션의 강점이다."
- ''지아이조2''를 발판으로 ''레드2''를 했고, 이병헌과 별개로 한미액션영화 ''더 라스트 나이츠''도 작업했다."''지.아이.조2'' 하면서 제가 잘보였다. 레드2로 순조롭게 이어졌다. 레드2에서도 이병헌의 무술 만져주고 대역해줬다. 더 라스트 나이츠는 클라이브 오웬과 모건 프리먼이 주연한 영화인데 체코서 찍었다(한국의 안성기, 박시연도 출연한다). 세컨드유닛디렉터라고 액션파트 감독을 맡았다."
- 할리우드 작업 끝나고 한 게 ''베를린''이다. 한국판 ''본시리즈''라는 평가를 받았다."류승완 감독이 제가 미국에 있으니까 빨리 안 오냐고 채근했다. 하지만 저는 솔직히 준비가 많이 돼있었다. 한국에서와 달리 미국에서는 이병헌 파트만 해주면 되니까 여유가 많았다. 또 갈 곳도 없고 외롭고 힘들어서 ''베를린''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내 지난 시간도 반성했다."
- 무엇을 반성했나?"내가 그동안 일해 온 스타일. 스턴트하면서 배려 못한 것들, 그리고 아집들. 전부 다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세상이 변했다. 흐름을 타줘야 하는데 우물 안 개구리처럼 갇혀있지 않았나. 한국영화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아저씨''(박정률 무술감독) 같은 액션도 나왔고, 이제는 배우들도 총잡는 걸 어색해하지 않는다. 그런 달라진 환경에 맞춰 미리 준비해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 액션수준은 우리도 할리우드 못지않다고 한다."물론이다. 단지 환경의 차이다. 이번에 할리우드 가보니 빈부의 차가 느껴졌다. 진짜 미국에서 각종 장비 갖고 와서 찍으면 다 기절시킬 수 있다.(웃음) 스턴트맨들 마인드도 다르더라. 저는 현장에서 후배들에게 엄청나게 엄하게 대한다. 저 역시도 긴장된 상태다. 그랬더니 저를 ''두''라고 불렀는데, ''두, 펀(fun)하게 하라''더라, 얘들은 위험한 거 하면서도 즐겁게 하는구나 싶더라.
- 할리우드서 날아오는 제의는 앞으로도 계속한다?"60 넘어서도 대역하라고 하면 할 것이다. 전 의지가 가면 몸도 간다고 생각한다. 또한 제가 지금도 대역을 조금씩 한다. 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배가 안나온다.(웃음) ''베를린''에서도 제 손이 몇번 나왔다. 어떤 장면인지는 말못한다.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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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TV속 액션스타에 반해 영화배우를 꿈꿨고, 고등학교 시절 태권도를 배우면서 지금의 일과 연을 맺게 됐다. 현 서울종합격투기연맹 사무총장인 이각수 관장은 과거 정두홍의 재능을 발견하고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쳐준 은인.
정감독이 서울액션스쿨의 교육생을 무료로 가르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키워낸 후배들은 현재 충무로에서 제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도둑들''의 유상섭-정윤헌, ''내가 살인범이다''의 권기덕 무술감독이 그 예다.
- 17기 교육생 모집을 앞뒀는데 그동안 수백 명을 무료로 교육시켰다."가난하다고 해서 내쫓았다면 지금의 저는 없다. 이각수 관장께 어떻게 보답할지 생각하다 무료로 돌렸다. 근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은 수강료가 아니라 차비가 없어서 못 온다. 칙칙한 사연 많다."
- 문을 연지 15년 정도 됐는데 스턴트맨 지망생은 많이 늘었나."오는 친구들은 늘었는데 남아있는 친구는 같다. 10분 운동하고 도망간다. 어떻게 보면 스턴트맨은 없어져야 하는 직업이다. 제 입장에서는 팀원들을 사지에 몰아내는 거다. 높은 빌딩서 떨어지게 하고, 달리는 차에 뛰어들게 하고. 남의 귀한 집 자식들을, 얼마나 미안한지 모른다. 정말 미친다. 두려움에 심장이, 다리가 덜덜 떨린다. 속으로 떨지만 두려움을 감추면서 그렇게 살고 있다. 그게 스턴트맨의 길이다."
- 본인 또한 그렇게 목숨 걸고 해왔다. 쇄골에 열 두 개의 볼트가 박혀있다."한강에 뛰어내리다가 충격에 폐가 터진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도 담배를 피운다.(웃음) 지금껏 해온 이유는 내가 싸워야 한다는 걸 많이 느껴서다. 난 내 직업을 백정이라고 생각한다. 백정도 사람으로서 정말 사람 대접받고 싶다. 지금도 스턴트맨은 영화스태프에 포함 안 된다.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에 제외돼있다."
- 생계도 보장이 안 된다.
"십대인대라도 끊어지면 1년간 쉬어야 한다. 노동환경도 최악이다. 시멘트가루 때문에 얼굴에 트러블이 생겨도 아무도 불만 삼지 못한다. 그렇게 먼지구덩이 속에서 일하다가 행여 잘못되면 바로 납골당 가야한다."
- 실제로 선후배들을 촬영현장에서 잃었다
"제 팀원만 3명을 잃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촬영 도중 죽은 친구는 독자였다. 앞서 선배를 잃고는 1년간 패닉상태에 빠져서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 시간들 때문에 쉬고 싶어도 안 쉰다. 하늘에서 얼마나 억울하겠냐. 그들 몫까지 열심히 살려고 한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다면?"후배들이 마음껏 일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다. 제가 제작자가 돼서 액션스타도 만들고 싶다. 현재 같이 의기투합해 팀도 만들었고, 시나리오도 개발하고 있다. 간혹 ''정두홍 넌 잘난 놈도 아니면서 왜 힘든 길을 가냐'' ''모난 놈이 정 맞는다''는 생각도 한다. 하지만 제가 단순무식하다. 그냥 정 맞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