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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8월 당시 33살이었던 남편 A씨와 29살이었던 부인 B씨는 백년가약을 맺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이듬해 두 사람 사이에는 첫 아들이 태어났고 A씨는 미국의 한 대학 교수로 취직하는 등 한동한 달콤한 신혼생활은 계속됐다.
그러나 순탄했던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시간이 지날수록 금이 가기 시작했고 급기야 폭력을 동반한 부부싸움까지 잦아졌다.
2005년 8월에 남편 A씨는 부부싸움 중 부인 B씨를 밀어 앞니 2개를 부러뜨렸다. 남편의 폭행은 계속돼 2006년 여름과 2008년 3월에는 이웃주민의 신고로 경찰관이 집까지 출동하기도 했다.
결국 미 법원은 남편에 대해 접근금지명령을 내렸고 부인이 자녀들의 양육권자가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미 법원은 2009년 11월 A씨와 B씨가 이혼하고 양육권은 부인에게 있다는 내용의 확정판결을 내렸다. 또 A씨에게 매달 배우자 부양비와 자녀 양육비로 미화 4,450 달러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남편 A씨는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직전에 불법으로 두 자녀를 데리고 귀국해 한국 법원에 같은 취지의 이혼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국내 법원에서 다시한번 판결을 받아보겠다는 생각이 든 것.
하지만 한국 법원은 미국에서 이뤄진 적법한 사법판단을 다시 판단해달라는 A씨의 청구를 소권 남용이라며 각하했다.
서울가정법원 2부(임채웅 부장판사)는 남편 A씨(42)가 부인 B씨(38)를 상대로 낸 이혼 및 친권자 지정 청구소송을 각하하고 오히려 B씨의 반소를 받아들여 8살과 6살배기 자녀 두명을 부인에게 인도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A씨가 미국 법원에서 가정폭력범으로 분류돼 자녀들을 면접할 권한만 부여받은 상태에서 불법으로 국내로 들어왔다"며 "A씨의 행위는 용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미국에서 진행된 사법절차를 무시하고 무단 귀국한 뒤 우리 사법체계의 힘을 빌어 다른 결과를 달성하고자 소를 제기했다"며 "이는 사법기능의 혼란을 조성하는 행위로 허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어 "미국 법원이 한국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는 실례에 비춰보더라도 A씨의 청구는 각하돼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서울가정법원 김윤정 공보판사는 "이번 판결은 자신의 범죄행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대해 법원이 협조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