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쿠팡에 모 대기업 상무가 갔다더라."
"쿠팡에 모 의원실 보좌관도 갔다더라."
"쿠팡에 모 언론사 부장이 갔는데 연봉은 무려 얼마라더라."
올해는 기업인들 사이에서 유독 쿠팡 인사와 관련된 '받글'(받은 글의 줄임말로, 메신저·SNS 등을 통해 유포되는 출처가 불분명한 정보)이 많이 돌았다. 유력 기업의 전무·상무들부터 국회 보좌관 출신들, 현직 언론인들까지 쿠팡은 스펀지로 빨아들이듯 인력들을 대거 채용했다. 쿠팡에서 제시한 고액연봉이 '카더라'로 돌면서 업계가 술렁이기도 했다.
이들이 맡은 주된 업무는 '대관'(對官), 즉 관을 상대하는 업무였다. '대관'이라는 용어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재계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널리 통용되는 단어다. 기업이 입법, 사법, 행정 관계자들을 상대하고 정보를 수집하며 이익을 관철하는 행위를 '대관'이라고 줄여 말한다. '로비(Lobby)'라는 단어가 영국 의사당의 하원 대기실을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돼 의미를 확장했듯, 우리나라에서는 대관도 점차 '로비'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고 있다.
로비와 연결된 꺼림칙한 느낌을 줄이고 싶은 걸까. 기업 조직도에서 대놓고 '대관팀'이라고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CR(Corporate Relation)팀, 대외협력팀 등 명칭도 다양하다. 쿠팡 박대준 전 대표는 최근까지 강남에 비밀 대관팀을 운영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조직의 공식 명칭은 '사회공헌팀'이었다.
쿠팡 뿐 아니라 주요 대기업들은 대관팀을 강화하는 추세다. 김앤장 등 법률사무소나 컨설팅업체에 대관 업무를 맡기기도 하다가 요즘은 기업들이 직접 뛰는 추세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런 기류는 이어졌지만, 12·3 계엄 이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기업들은 더더욱 대관 강화에 열중하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올해 11월까지 인사혁신처 공직윤리시스템에 공시된 퇴직공직자 취업 심사 결과를 보면 쿠팡을 비롯해 삼성, 한화, LIG넥스원, 김앤장 법률사무소, 현대차, 법무법인 율촌, CJ, 한국항공우주산업 등에서 정부나 국회 출신 인사들을 대거 채용했다.
대부분 기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와중에도 대관만큼은 예외인 듯 하다. 전직 보좌관, 관료, 언론인 출신들을 끌어모아 고액 연봉을 주면서까지 대관팀을 강화하는 이유는 무얼까? 쿠팡 사태를 보면 얼핏 추측해볼 수 있다. 바로 은밀한 접촉과 물밑 거래가 사업상 필요하다는 판단인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윤창원 기자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국회 국정감사를 불과 한 달 앞두고 쿠팡 박대준 대표와 민병기 대외협력 부사장을 여의도 5성급 호텔 양식당에서 만났다. 박대준은 대기업 대관직으로 시작해 쿠팡 대표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대관 꼭대기에 있는 기업인과 정보수집에 능한 국정원 출신 거물 정치인의 만남이었다. 룸에서는 무려 70만원이 결제됐지만 누가 결제를 했는지 쿠팡 측도 김 원내대표 측도 뚜렷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비싼 밥을 먹은 것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재계 거물들의 만남은 목적성이 뚜렷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의원실에서 근무했다가 해고된 뒤, 쿠팡 대관 임원으로 일하고 있는 전직 보좌관에 대한 자료를 건넨 것으로 알려졌다. '베테랑 대관' 출신 박 전 대표는 순간 위험을 감지한 것으로 보인다. 김 원내대표가 선을 넘었고, 자신과 회사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직감이었을 것이다. 그가 회사 임원과 나눈 통화 녹취록에는 다급함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김병기 의원이 뭘 보여줬는데, 내가 알아서는 회사에 좋을 게 없는 것 같아서 외면했어"
"나는 이 불편한 진실을 나도 모르고 회사도 모르길 바랐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하나도 끼고 싶지 않아. 왜냐하면 내 관심이 회사한테 재앙을 불러올 수 있잖아"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현안질의에서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의원 질의에 답변을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국정감사를 앞두고 '갑(甲)중에 갑'의 위치에 있는 여당 원내대표가 을(乙)인 쿠팡 대표에게 '외면해야 할 정도', '재앙을 불러올 정도'의 부적절한 자료를 스스럼없이 건넸던 것이다.
전 국민 대다수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린 직후, 쿠팡의 박대준 대표는 보안팀이 아닌 강남에서 비밀리 운영되던 대관팀에게 고성을 지르며 질책했다고 한다. 어떤 문제가 생기든 정관계 로비로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인식이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차면 넘치는 법이다. 각종 로비로 논란을 틀어막으려 한들, 본질은 가려지지 않고 국민의 분노만 살 뿐이다. 전 국민은 이재명 정부가 쿠팡 사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건전한 경제 활동과 정상적인 기업 경영을 좀 먹이는 대관 문제에 대해 정치권은 물론 기업 경영진들도 이참에 함께 각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