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전북-대전 경기 도중 김우성 주심과 전북 타노스 코치가 언쟁을 벌이고 있다. 쿠팡플레이 중계화면 캡처K리그는 올 시즌 3년 연속 관중 수 300만 명을 돌파하며 KBO리그에 버금가는 흥행 열풍을 이어갔다. 하지만 시즌 막판 연이어 불거진 각종 논란은 리그의 성장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중심에는 공교롭게도 전북 현대와 울산 HD, 두 현대가(家) 구단이 있었다.
전북 현대는 2025시즌 K리그1 우승과 코리아컵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며 더블(2관왕)을 달성했다. 지난 시즌 강등 위기까지 몰렸던 전북은 명장 거스 포옛 감독 체제 아래 극적인 부활에 성공했다.
그러나 화려한 성과 뒤에는 깊은 상처가 남았다. 타노스 수석코치의 인종차별 논란이 불거지며 구단과 리그 전체가 거센 후폭풍에 휘말렸다.
사건은 지난 10월 8일, 전북과 대전 하나시티즌의 K리그1 36라운드 경기에서 발생했다. 후반 추가시간, 타노스 코치는 대전 선수의 핸드볼 파울이 선언되지 않자 강하게 항의했고, 결국 퇴장 조치를 받았다.
손가락으로 눈 가리키는 타노스 코치. 팬 영상 캡처문제는 퇴장 이후 타노스 코치가 양손 검지로 눈을 가리키는 동작을 취한 장면이었다. 주심은 해당 제스처를 인종차별적 행위로 판단해 심판보고서에 기재했고, 상벌위원회에 진술서를 제출했다. 상벌위원회 역시 이 행위가 인종차별적 언동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전북 구단은 "판정을 보지 못했느냐는 의미였다"며 항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상벌위는 타노스 코치에게 출장정지 5경기와 제재금 2000만 원의 중징계를 부과했다. 이후 타노스 코치는 사의를 표했고, 포옛 감독 역시 "코치의 사임으로 심리적 부담을 느꼈다"며 팀을 떠났다. 2관왕을 이끈 감독이 단 1년 만에 사퇴하자 축구계는 큰 충격에 빠졌다.
현장에서는 상벌위의 판단 기준을 둘러싼 반발도 컸다. 상벌위는 "행위자의 의도보다 외부에 표출된 행위의 보편적 의미가 중요하다"는 원칙을 강조했지만, 축구계 안팎에서는 해당 제스처가 유럽 현장에서는 판정 항의 시 흔히 사용된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보편적 의미'라는 판단 자체가 논란의 중심이 된 셈이다.
이번 사태는 심판 판정에 대한 누적된 불신과도 맞물려 있다. 실제로 지난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K리그 오심 건수가 지난해 28건에서 올해 79건으로 급증했다는 자료가 공개됐다. K리그1만 놓고 보면 8건에서 34건으로 늘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출신 제시 린가드 역시 FC서울을 떠나며 "심판이 일부러 분노를 조장한다고 느낀 경기가 많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판정 문제에 대한 불만이 현장 전반에 퍼져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심판 판정 논란이 인종차별 논쟁으로까지 번지며, 리그의 신뢰도는 큰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K리그 시상식 참석한 신태용 감독. 연합뉴스논란의 중심에는 울산 HD도 있었다. 울산은 최근 3시즌 연속 K리그1 우승을 차지했던 최강팀이었지만, 올 시즌에는 강등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급격히 추락했다.
시즌 도중 김판곤 감독이 물러났고,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이끌었던 신태용 감독이 소방수로 투입됐다. 그러나 반전은 없었고, 신 감독 역시 성적 부진 속에 지휘봉을 내려놓으며 울산은 한 시즌에 감독을 두 차례 교체하는 홍역을 치렀다.
문제는 성적뿐만이 아니었다. 신태용 감독은 경질 이후 "나는 바지 감독이었다"고 주장하며 선수단 내 하극상과 구단 내부 갈등을 폭로했다. 이에 베테랑 이청용이 공개적으로 반박하며 논란은 확산했다.
이청용은 지난 10월 18일 광주FC전에서 골을 넣은 뒤 골프 스윙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신 감독이 울산 사령탑 시절 구단 버스에 골프백을 실은 사진 논란과 맞물리며 또 다른 해석을 낳았으나, 이청용은 "즉흥적인 세리머니였다"고 사과하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11월 30일 제주SK와의 최종전 이후, 수비수 정승현이 신태용 감독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하면서 상황은 다시 요동쳤다. 신 감독은 "좋아서 과하게 표현했다"며 폭행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이후 정승현의 뺨을 때리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며 파장은 커졌다.
영상 출처 중앙일보영상 속 신 감독은 선수들과 악수하던 도중 정승현의 왼쪽 뺨을 손으로 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는 "폭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과 "당사자가 불쾌감을 느꼈다면 폭행"이라는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에 대한축구협회는 울산 구단에 사실관계 파악을 요청하며 조사에 착수했고, 울산은 관련 내용을 정리해 회신했다. 울산 구단은 "폭행 논란 등 부적절한 행위를 인지한 뒤 선수 면담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당사자에게 구두·서면 경고를 하는 등 조치를 취했다"며 "시즌 중 감독과의 계약 해지도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K리그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했지만, 그에 걸맞은 성숙한 리그 운영을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인종차별 논란, 심판 판정 불신, 감독과 선수 간 갈등까지 겹치며 리그의 신뢰도는 흔들렸다.
관중 수 300만 시대를 연 K리그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권위가 아닌 신뢰 회복이 최우선 과제로 지적된다. 올 시즌을 돌아보는 냉정한 성찰 없이는, 흥행의 열기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