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영주 기자법무부가 정권을 향해 비판적 견해를 밝힌 검찰 고위간부를 사실상 '강등' 조치하면서 법적 분쟁이 이어질 전망이다. 검찰 안팎에선 이번 강등 인사의 법적 근거와 사유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강등 대상자인 검찰 간부는 법무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 규정 참고한 강등 인사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 검찰국은 검찰청법 제6조를 근거로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정 검사장은 비(非) 검사장 보직인 대전고검 검사로 자리를 옮겼다.
앞서 정부가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한 검사장들을 강등 조치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법조계에선 적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령인 '대검찰청 검사급 이상 검사의 보직범위에 관한 규정'에선 검사장의 보직을 11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해당 규정을 고치지 않는 한 검사장을 강등 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나왔다.
법무부는 지난 9월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2년 이상 재직하면 다른 보직으로 임용할 수 있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다만 해당 규정은 아직 법제처 심사가 진행 중이다. 정 검사장의 경우 지난 7월 법무연수위원 연구위원으로 보임돼 개정안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도 했다.
대신 법무부는 검찰청법 6조를 근거로 이번 인사를 단행했다. 해당 법 조항은 검사의 직급을 '검찰총장과 검사'로 구분하기 때문에 검사장의 보직을 고검검사로 바꿔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연합뉴스'직급' 아닌 '보직' 변경…관련 규정은 아직 개정 전
법무부는 2007년 권태호 전 법무연수원 기획부장(검사장)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권 전 검사장은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에서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돼 소송을 냈다.
법원은 검찰청법 6조를 근거로 "검찰총장을 제외한 검사가 하나의 직급으로 단일화됐다"며 "법무연수원 기획부장에서 서울고검 검사로 전보한 이 사건 인사 발령 처분은 하위 직급에 임명하는 조치인 '강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강등 인사가 '직급'이 아닌 '보직'을 변경한 것이라는 점에서 검찰청법 6조을 근거로 삼을 수 없다는 견해가 나온다.
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 실무에서도 직급과 보직을 다르게 사용하고 있어 둘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라며 "직급에 관한 규정은 검찰청법 6조가 있지만, 보직에 관한 법적 근거는 '대검검사급 이상 검사의 보직범위에 관한 규정'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보직을 변경하기 위해선 검찰청법이 아닌 대통령령에 따라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검찰 간부는 "검찰청법 6조로 강등 인사가 가능했다면 그동안 왜 그런 인사를 안 했던 것인가"라며 "대검검사급 이상의 보직에 관한 대통령령은 왜 존재하는 것인지도 해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찰로 비위 특정 않은 강등 인사…소송서 '타당성' 쟁점될 듯
만약 법적 분쟁이 이어진다면 법무부가 강등 인사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인사 대상인 정 검사장은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 검사장은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저뿐만이 아니라 이번 인사를 신호탄으로 계속해서 같은 인사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법을 다루는 법무부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되니 아닌 것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권 전 검사장의 경우 법무부는 그에 대해 감찰을 진행해 비위를 발견한 뒤 강등 인사를 단행했다. 법원도 이를 근거로 "인사 발령 처분이 사회통념상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반면 정 검사장은 구체적인 비위 사실이 드러난 상태는 아니라는 점에서 타당성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권 전 검사장은 당시 비위 혐의와 관련해 감찰이 있었고, 인사위원회에서 강등을 결의해준 사안"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된 검사장들은 인사 발표 직후 사의를 표명했다.
김창진 부산지검장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검사는 절대로 외압에 굴복하고 이용당해선 안 된다"며 "정의로워야 하고 정의롭게 보여야 한다"는 글을 남겼다.
박현철 광주지검장도 "형사사법 체계 붕괴의 격랑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신 검찰 가족들께 무거운 짐만 남기고 떠나게 됐다"며 "앞선 분들이 피땀 흘려 지켜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흔들리지 않고 이어지기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