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미사. 연합뉴스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됐다.
선종 닷새 만에 열린 이날 미사는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목관을 성 베드로 성전에서 야외 제단으로 운구하며 시작됐다. 이어 입당송(入堂頌)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와 기도, 성경 강독, 성찬 전례, 관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하는 고별 의식 순으로 약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미사 주례를 맡은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단장은 강론에서 "교황은 최근 몇 년 간 잔혹한 전쟁과 비인간적 공포, 수많은 죽음과 파괴에 대해 쉼 없이 평화를 간청하고 이성적이고 진실된 협상으로 해결책을 찾도록 촉구했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생전에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역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난민 12명을 바티칸으로 데려왔던 일화도 소환했다. 그는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고, 소외되고 작은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며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연 민중의 교황이었다"고 추모했다.
연합뉴스특히 레 추기경의 강론에서는 "벽이 아닌 다리를 세우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전 발언도 인용됐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후보였던 지난 2016년, 교황이 그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멕시코 국경 장벽 건설'을 비판하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리를 만들지 않고 벽만 세우려 하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례미사 직후 교황의 관을 실은 운구차는 로마 시내를 가로질러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을 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 대부분이 묻힌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지 대신 즐겨 찾던 로마 테르미니 기차역 인근의 이곳을 장지로 택했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에 묻힌 것은 1903년 로마 라테라노 대성전에 안치된 레오 13세 이후 122년 만이다.
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재위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재위 시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됐다.
과거에는 사이프러스와 아연·참나무 등 세 겹으로 된 삼중관 입관을 거쳤으나, 평소 검소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1월 장례예식을 개정하면서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목관 하나만 쓰게 됐다.
연합뉴스운구 행렬은 미사에 참여하지 못한 시민들이 고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사람걸음 속도로 천천히 이동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 가는 길에는 수많은 인파가 운집해 박수를 치면서 교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 자리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등 국가원수 약 50명과 군주 약 10명 등 130여 개국 대표단도 참석해 애도를 표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민관합동 조문사절단을 파견했다. 오현주 주교황청 한국대사와 안재홍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도 사절단원으로 동행했다.
교황청에 따르면, 이날 장례미사에는 25만 명이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미사에 앞서,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이어진 일반 조문에도 약 25만 명이 성 베드로 성전을 찾았다.
살아생전 '소외된 자'를 각별히 챙겼던 교황의 장례식에는 난민과 죄수, 성소수자 등도 함께했다. 이탈리아의 난민 구호단체인 '지중해 구조단'(Mediterranea Saving Humans), '리비아 난민'(Refugees in Libya) 대표단 등이다.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서 난민과 수감자, 노숙인, 트랜스젠더 등 교황청이 특별 초청한 40여 명이 교황의 시신을 맞이하는 순서도 마련됐다.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이날부터 5월 4일까지 '노벤디알리'라 불리는 애도기간 9일간 매일 추모기도회가 열린다. 교황의 무덤은 오는 27일 이후 일반에 공개된다.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는 5월 5~10일 사이 시작된다.
1936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1일 오전 7시 35분 뇌졸중 및 심부전으로 선종했다. 1282년 만의 비유럽, 최초의 신대륙 출신으로 2013년 교황에 선출된 그는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교황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