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의 교수 제공소문을 듣고 찾아간 찐빵집이 있다. 경북 동해안 바닷가 마을, 구룡포 읍내에 있는 '철규 분식'.
오후에 가면 찐빵이 다 팔려 헛걸음할 거라는 말에 정오가 지나기 전에 도착했다. 20km나 되는 먼 길을. 바닷가 마을의 공기는 짭조름하고 비릿하면서도 기분 좋게 시원하다. 60대쯤 보이는, 키가 작고 깡마른 남자 주인이 나를 흘긋 바라만 본다.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인사도 없다. 무뚝뚝하다.
찐빵 1인분에 팥죽을 주문한다. 찐빵은 아기 주먹만 하다. 한입 물어보니 쫄깃쫄깃한 겉살과 속에 든 팥앙금이 부드럽고 달다. 소문대로다. 맛이 참 좋다. 찐빵 위에 살짝 뿌린 백설탕은 무뚝뚝한 주인이, '진짜 마음은 이렇다오' 하고 해명하는 암호 같다.
그때 30대로 보이는 남자 손님이 들어온다. 찐빵을 먹고 가는 게 아니라 사 가려는 손님이다.
"찐빵 5인분 싸 주세요!"
주인이 손님 얼굴을 쳐다본다. 가뜩이나 깡말라서 신경질적인 표정이 더 차갑게 보인다. 그러더니 잔소리를 하듯 한마디 한다.
"혼자서 다 먹으면, 늦게 오는 손님은 헛걸음하잖아요! 2인분만 팝니다."
아니! 찐빵이 잘 팔리면 손님에게 군색하게 굴지 말고 반죽을 더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오후 늦게 오는 손님도 헛걸음하지 않고. 돈도 많이 벌고…. 손님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저 네, 네 하고 대답한다. 깐깐한 찐빵집 주인이 검은 봉다리에 담아 주는 찐빵 2인분을 들고 돌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이른 아침 차를 달려 동해안 바닷가 마을의 허름한 찐빵집을 찾아온다. 깡마르고 신경질적이고 깐깐한 주인에게로. 벌써 10여 년 전 일이다.
'철규 분식' 주인과 비슷한 연배의 남자가 주인인 돼지국밥집이 있다. '강원식당'이다. 이 식당 주인은 마른 얼굴에 호리호리하다.
점심때 소문을 듣고 찾아간다. 다섯 평쯤 되는 비좁은 식당은 빈자리가 없다. 문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린다. 겨우 자리를 찾아 국밥을 먹는다. 국밥 맛이 얼큰하면서도 달고 깔끔하다. 뒷맛도 비리지 않고 시원하다. 한 그릇 국밥을 비우고 나니 기분이 좋다. 속이 따뜻해지며 든든하다.
조중의 교수 제공계산을 하려는데, 돼지국밥 한 그릇 값이 4천 원이다. 이럴 수가! 다른 식당들은 모두 6천 원을 받는데….
"너무 싸잖아요. 값 좀 올리세요!"
주인이 행주로 식탁을 닦다 말고 허리를 펴고 말한다.
"이 돼지국밥, 서민들 먹는 음식인데 이거라도 부담 없이 먹어야지…."
역시 10여 년 전 일이다.
얼마 전 꽃샘추위가 찾아와 진눈깨비가 쏟아지던 날이다. 바닷가 마을의 '철규 분식' 생각이 나서 일찍 차를 몰고 달려갔다. 낡은 간판이며 실내 여기저기 걸린 연예인들의 칭찬 메모지며 쌓아둔 밀가루 부대까지 여전하다. 찐빵을 시키는데 깐깐한 남자 주인이 보이지 않는다. 두 명의 아줌마와 할머니 한 분뿐이다.
"사장님 어디 가셨어요?"
10여 년 전 얘기를 꺼내며 안부를 물었더니, 2년 전 암이 와서 훌쩍 데려갔다고 한다. 쫀득쫀득한 찐빵 맛은 여전하다. 손님이 5인분을 달라면 검은 봉다리에 2인분만 넣어준다. 그때나 지금이나 반죽이 떨어지면 문을 닫는다.
내친김에 재래시장의 '강원식당'을 찾아간다. 이 집 주인도 '철규 분식' 주인과 비슷하게 2년 전 세상을 떴다. 지금은 중년의 며느리가 주인이다.
뜨끈한 국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다. 아! 입에 침이 고인다. 10년 전 그 맛 그대로다. 메뉴판을 보니 돼지국밥 한 그릇이 8천 원이다. 모든 식당이 한 그릇에 만원인데 8천 원이라니! 10년 전처럼 2천 원 싸다.
"남는 게 없잖아요!"
주인 며느리가 시아버지에게 귀가 닳을 만큼 들어 온 돼지국밥의 가치를, 시아버지 목소리를 흉내 내며 말한다.
"돼지국밥은 서민들 먹는 음식이다. 싸게, 먹고 싶을 때, 언제라도 먹도록 해야 한다…."
두 남자는 이름도 모르고 알아주는 이 없어도 마음속에 뿌리내린 자기만의 '기지수'로 인생 방정식을 풀어 간 걸까? 그들 마음에 담긴 '아는 수'가 사람들을 달려오게 만들고, 그 방정식에 따라 사람들은 저마다 찐빵의 시간 속에서, 돼지국밥의 시간 속에서 행복을 느낀 걸까?
찐빵과 돼지국밥의 방정식에 '반죽'과 '값'이라는 '상수(常數)'를 넣을 수 있었던 깐깐한 두 남자는 지금 무얼 하고 지낼까?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