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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커플 자녀엔 5배, 인류의 진보 이끈 유전자의 비밀

MIT 커플 자녀엔 5배, 인류의 진보 이끈 유전자의 비밀

매년 4월 2일은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
<패턴 시커> 인류 진보 이끈 자폐 조명
1940년대, 미국에서 '자폐(Autism)' 정의
일부 증상 있는 '자폐 스펙트럼'으로 확장
'신경 다양성', 인간 모두 포함한 스펙트럼
경쟁에 적합한 능력들만 인정하는 사회
다양한 능력과 특성 발달시키는 것 막아
사람마다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아야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신혜림 PD, 조석영 PD

◇ 채선아> 좀 더 밀도 있게 알아볼 이슈 짚어보는 뉴스 탐구생활 시간입니다. 신혜림 PD, 조석영 PD 나와 계세요.

◆ 신혜림, 조석영> 안녕하세요.

◇ 채선아> 오늘은 신혜림 PD가 준비해 왔죠.

◆ 신혜림> 우리는 자폐인과 얼마나 같고 다를까요? 오늘은 '자폐 스펙트럼'에 대해서 얘기해 보겠습니다. 지난 4월 2일이 세계 자폐인의 날이었습니다. 세계 자폐증 인식의 날이라고도 말하고요. 에펠탑이나 오페라하우스 같은 전 세계 랜드마크에서 자폐증을 상징하는 블루라이트가 빛나는 날입니다.


◇ 채선아> 이런 날이 있었군요.

◆ 신혜림> 장애라는 게 이러이러한 증상이 OO 장애다, 라고 정의내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연구가 계속됩니다. 그러면서 발전하고 견해도 달라지고 범위도 달라지고 그래요. 최근 나온 자폐 관련 책 중 <패턴 시커 - 자폐는 어떻게 인류의 진보를 이끌었나>라는 책을 인상깊게 읽었는데요. 이 책에 기대어 자폐에 대한 최근 논의에 대해 모처럼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 채선아> 좋네요. 자폐에 대한 논의가 어디까지 왔는지는 관심 두지 않는 이상 잘 찾아보기 어렵잖아요. 예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자폐에 대한 인식은 일단 영화 <말아톤>의 조승우 배우가 분한 '초원이', 20년 전 영화죠. 최근에는 드라마 <이상판 변호사 우영우>를 보면서 자폐에 대해서 좀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긴 합니다.


◆ 신혜림> 그래서 자폐인의 특징에 대해서는 좀 더 알려진 것 같아요. 눈을 맞춘다거나 표정을 짓는다거나 제스처를 할 때 좀 적절해 보이지 않는 게 있고, 타인한테 별 관심이 없다는 점, 즉 타인과의 소통이나 공감이 좀 어렵다는 점이 있고요. 대신 뭐 하나에 꽂히면 엄청나게 몰두해요. 또 온갖 물건을 분류하길 좋아하고요. 자동차가 있으면 그냥 자동차다, 이러는 게 아니라 '15년식 흰색 아반떼 MD'다,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분류를 해야 하고, 온갖 질문을 끝없이 던진다든지 하는 특징도 있습니다.

씨리얼 채널에서 인터뷰한 한나 씨 같은 경우는 나비에 완전히 꽂혀 있어요. 나비를 보면 어떤 종류의 나비인지 다 알고 있고 자기가 알고 있는 그 종류를 다 말해야 돼요. 부전나비, 호랑나비, 청띠제비나비, 이렇게요.




◇ 채선아> 드라마 속 우영우 변호사도 그렇거든요. 고래에 꽂혀 있어서 고래 얘기만 하면 막 눈빛이 반짝반짝해지고, 그 얘기를 너무 하고 싶어서 참을 수 없어 하는 그런 모습이 드라마에서 그려져요.

◆ 신혜림> 한나 씨도 약간 그래요. 이런 '자폐'라는 것이 처음 정체화되기 시작한 시점은 1940년대입니다. 100년도 안 된 거죠. 미국의 정신과 의사 리오 캐너가 사회적 무관심, 반복 행동 그리고 어떤 동일성에 대한 집착을 보이는 어린이들을 특정해서 자폐(Autism)라고 처음 정의를 내렸어요. 뭔가 이상한 아이다, 바보 같다, 이렇게 생각했던 증상이 알고 보니 하나의 장애일 수 있었다는 거죠.

◆ 조석영> 원래는 '자폐'라고만 많이 쓰이다가 언제부턴가는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더라고요.


◆ 신혜림> 맞아요. 좀 더 확장된 개념인데 1988년, 영국의 정신과 의사 로나 윙이 '자폐는 스펙트럼이다', 이렇게 주장한 데서 시작했어요. 그전까지는 모든 증상을 전부 갖춰야 자폐라고 인정을 받았는데, 일부 증상을 갖고 있어도 사실 사회생활이 무척 힘들었던 거죠. 다른 장애랑 겹치는 경우가 다수이기도 했고요. 지금은 이 로나 윙의 견해가 널리 인정받게 됐고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더 많이 불리고 있어요. 국내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은 지금 3만 7천 명 정도 된다고 해요. 2018년에는 2만 6천 명 좀 넘었거든요.

◇ 채선아> 갑자기 자폐증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났다기 보다는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좀 폭넓게 인정을 받으면서 수가 늘어난 걸 수 있겠네요.


◆ 신혜림> 그리고 오늘 얘기할 개념은 자폐 스펙트럼에서 한 번 더 나아간 개념입니다. 장애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가면 사실 자폐가 됐든, 자폐 스펙트럼이 됐든 사실 '비정상'으로 취급되곤 하잖아요. 자폐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그것도 '고기능 자폐인'에 한정된 것 같아요.

◆ 조석영> 초원이처럼 달리기를 잘하거나, 우영우처럼 뭔가를 굉장히 잘 기억하거나.

◆ 신혜림> 그건 사회에서 인정받는 재능을 가진 자폐인인 거고, 사실 그 외의 자폐인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인데요. <패턴 시커>에 따르면 자폐인은 바로 '패턴 시커', 패턴을 찾는 사람이에요. 말 그대로 규칙, 법칙을 끝없이 추구하고 탐구하는 사람. 자꾸 범주화, 체계화하려는 욕구가 엄청 강하다는 거죠. 이 책에 나온 표현에 의하면 '마음속에 스프레드시트'가 있다.


◆ 조석영> 마음속에 엑셀 프로그램을 하나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네요.

◆ 신혜림> 맞아요. 책에 예시가 많이 나오는데 그중에 조나의 사례를 보면 조나는 10대 때부터 어부들이랑 배를 탔어요. 바닷물을 보면서 파도의 패턴을 읽는 거예요. 그래서 그 정보로 고깃대가 어느 쪽에, 어느 깊이에, 얼만큼이나 있는지를 알고 그 고기가 어떤 종류인지도 알아요.

자폐인들이 사람들을 어려워하잖아요. 그 이유 역시 사람의 행동에 패턴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패턴을 찾아내는 걸 '체계화 메커니즘'이라고 하는데, 책에 의하면 그건 인간의 진화 중에 나타난 유전자 변화의 결과고 인간이 그것 때문에 진화했고 과학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거예요.

최근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면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 종사자와 자폐인이 공통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요. 60만 명을 분석한 뇌 유형 연구가 나오는데 체계화 지수 SQ랑 공감 지수 EQ로 나눠서 사람들을 분류하거든요.


◆ 조석영> 자폐 유전자의 MBTI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신혜림> 자꾸만 뭔가 분류하고 싶어 하고 세세한 항목에 관심을 두는 유형, 머릿속에서든 컴퓨터에서든 꼭 분류해 놔야 하고 예측 가능한 게 아니면 불안해지는 게 SQ가 높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 채선아> EQ는 뭔가요?

◆ 신혜림> 공감 지수입니다.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어떻게 생각하거나 느끼는지를 얼마나 쉽게 상상할 수 있는가. 타인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누가 민망해하거나 뭔가 화난 경우에 바로 캐치하고, 타인의 근황이나 관심사에 예민하게 관심 가지면서 평소 좋아하는 물건을 선물을 해준다거나 하는 유형. 이 SQ와 EQ가 좀 고르게 균형 잡혀 있는 사람은 밸런스, B형이라고 하고 SQ가 높으면 S형, EQ가 높으면 E형. 완전 극단 E형과 극단 S형까지 총 5개로 분류합니다.


◇ 채선아> 자폐인들은 S형에 가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신혜림> 자폐인이면 모두 S라고 말할 수는 없는데, 확실히 S나 극단 S형을 가진 사람들이 이례적으로 많대요. 관련이 있단 얘기죠.

◆ 조석영> 과학자들 중에 자폐인이 많대요.


◆ 신혜림> 여러 분야에서 그래요. 예술 쪽에서는 앤디 워홀, 물리학에서는 아인슈타인. MIT 동문끼리 결혼한 자녀는 자폐 비율이 5배나 높대요. 뭔가 관련이 있는 거죠. 다만 이 공감 지수랑 체계화 지수는 둘 다 높을 수는 없고, 둘 다 낮을 수도 없어요. 다 뛰어난 사람도 다 부족한 사람도 없는 거예요. 제로섬처럼 하나가 뛰어나면 하나가 줄어드는 역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거고, 결국 어떤 유형이 어떤 유형보다 낫다 못하다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 채선아> 그러니까 자폐인의 경우는 고도로 체계화된 능력이 많이 발달한 대신 공감 능력이 좀 부족한 것뿐이라고 보면 될까요?

◆ 신혜림> 그렇죠. 이게 바로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겁니다. 98년에 호주에서 자폐 당사자이자 사회학자인 주디 싱어라는 사람이 창안한 개념인데요.

자폐 스펙트럼이 자폐라는 장애의 스펙트럼을 확장한 거라면 신경 다양성은 인간 모두를 한 스펙트럼에 놓고 보는 거예요. 즉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도 이 스펙트럼 안에 있는 거죠. 자폐나 ADHD, 난독증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을 능력이 부족한 사람, 기능이 이상한 사람 이렇게 볼 게 아니라 독특한 장점을 가진 사람으로 보자는 말입니다.


◆ 조석영> 사실 우리 사회에서 인정되는 능력이 너무 좁아요. 공부를 잘하든 스포츠를 잘하든 경쟁에서 앞서는 사람이 인정받게 되거든요. 다양한 능력을 발달시킬 환경도 부족하고요.

◆ 신혜림> 네. 결국 이 개념은 '자폐는 병이 아닐 수 있다' 이런 얘기잖아요. '우리 다 그냥 같은 사람이야' '정상 비정상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정상인이야' 이 말인 건데요. 물론 '병은 병으로 인지하자, 치료가 필요하다' 이렇게 보는 시각도 여전히 다수예요. 성인 ADHD도 당사자들이 병으로 인정받아서 좋았다고 하시기도 하거든요. '나 왜 이렇게 까먹지? 칠칠맞지 못하지?' 자책만 하다가 원인도 알고 치료법도 아니까 되게 시원했다는 거예요. 근데 동시에 어떤 분들은 '이게 내 정체성이에요, 지금 이대로의 나도 괜찮은 것 같아요' 라고 생각하시기도 하고요.

◆ 조석영> 굳이 병으로 인정받지 않아도 그렇다는 거죠.

◆ 신혜림> 하지만 이런 자폐의 특성을 포함한 스펙트럼이 마치 MBTI처럼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어떤 인식 체계로 여겨질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폐라는 것을 인간의 특성이자 능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혹시 올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 많이 했습니다.

◇ 채선아> 교육 현장에서는 성적으로 줄 세우는 문화가 여전하고 사회에서는 통일성을 강조하는 그런 문화가 있는데 과연 튀는 사람이 설 곳이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각자만의 옷걸이가 있으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을 수 있는 좀 그런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이런 바람이 드네요.


◆ 신혜림> 인상적인 문구를 인용해 왔어요.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대요. "모든 사람은 천재다. 하지만 나무에 오르는 능력을 기준으로 물고기를 평가한다면 그 물고기는 평생 스스로를 멍청하다고 여기면서 살아갈 것이다." 이게 그야말로 요점을 정확히 짚은 말이라고 이 책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거죠.

◇ 채선아> "모든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 말을 기억하면서 자폐에 대한 최근 논의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신혜림 PD, 조석영 PD, 수고하셨습니다.

◆ 신혜림, 조석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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