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엄마, 저 정규직 됐어요"… 어느 장애인 청년의 '꿈'

  • 0
  • 폰트사이즈
    - +
    인쇄
  • 요약


대구

    "엄마, 저 정규직 됐어요"… 어느 장애인 청년의 '꿈'

    핵심요약

    "저 중3때 처음으로 혼자 버스 타 봤어요"
    발달장애 가진 지수의 '굿윌스토어·신보' 인턴 체험
    "급여가 얼마니?" 질문에 "돈이 다가 아니에요 믿음 갖게 해야죠"
    대구대 장애인 교육 이념, 특수교육 노하우로 이룬 성과

    굿윗스토어 대구반야월점 내부 모습. 김지수군(가명)이 첫 직장에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이재기 기자 굿윗스토어 대구반야월점 내부 모습. 김지수군(가명)이 첫 직장에서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이재기 기자
    "중학교 재학시절 꿈이 뭐였어요?"

    "중학생 때부터 있었던 (제)꿈은.. 중학생 때 학교생활이 별로 안 즐거웠어요. 제 안 좋은 버릇이나 습관을 없애보려고 애썼는데 성공한 기억이 있어요. 중2까지는 대중교통 이용을 못했는데, 중3부터 처음으로 버스를 타봤어요 이젠 외부에서 잘 다니고 있어요"
     
    발달 장애를 가졌지만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성장한 김지수씨(22살)와 기자의 문답 일부분이다.
     

    중3때 처음으로 혼자 버스 타 봤어요



    인터뷰를 진행한 뒤 곰곰이 생각해봤다. 지수군이 왜 이런 답을 했을까? 그는 꿈 얘기를 들려주는데 내가(기자) 알아듣지 못한 건 아닐까? 사실 그는 중학시절 누구나 이용하는 이동수단 '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불편을 겪고 살았으니 얼마나 버스 타고 다니면서 누리는 이동의 자유란 걸 누리고 싶었을까란 깨달음이 왔다.

    '저 커서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어요, 인기 예능인이 되고 싶어요' 같은 류의 답을 기대했던 건 일반인 인터뷰에 익숙했던 기자의 선입견이 작용한 탓일 거다.
     
    장애는 본인 입장에서 '어디가 불편하다'는 말이지만, 제3자 입장에서는 장애를 가졌다는 걸로 인해 달라 보이기 때문에 '보통과의 다름 또는 차이'일 뿐이다. 획일적 가치에 익숙한 한국사회는 유난히 다름에 관대하지 않다. 피아 구분이 확실하다. 그래서 어느쪽이든 한 쪽에 소속돼야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사회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뭔가 다른 사람은 이방인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사회의 주류 속으로 편입되기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오죽했으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직장인의 대열에 편입시키기 위해 장애인고용특별법까지 만들었으니 말이다.
     
    문답이 몇차례 오간 뒤 지수-기자 사이의 튜닝이 끝났고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접근방식을 달리하니 그의 말이 좀 더 귀에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인터뷰를 진행중인 모습. 대구대 제공인터뷰를 진행중인 모습. 대구대 제공
    장애를 가진 지수는 초중고를 어렵사리 마치고 대구대학교 K-PACE(Korea-professional assistant center for education) 3년 과정에 입학했다. "1,2학년 때 말하는 법(의사소통)을 배웠고, 2학년땐 난생 처음 미국도 다녀왔어요. (그곳과는) 낮밤이 달라서 도착하기 전 계속 잠든 상태여서 미국땅에 첫발을 디딘 느낌은 잘 모르겠어요" 이 센터는 자립형 발달장애인 교육기관이다.
     
    센터에서 지수를 지도했던 지중협 선생님은 14일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선택해 미국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고 주로 시카고 등 미국사회 체험과 현지 대학 방문, 청강 등으로 일정이 짜여졌다"고 설명했다. K-PACE는 3년간의 비학위 과정으로 생활과 직무체험,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커뮤니케이션과 문제해결 역량을 집중 배양해준다.
     

    발달장애 가진 지수의 '굿윌스토어·신보' 인턴 체험



    지수 역시 굿윌스토어, 신용보증기금 등 서너군데에서 3개월씩 인턴근무를 체험했다. 재학 중 김성수(가명)군과는 소울메이트라고 할 정도로 친분관계가 두터워져 스스로도 "성수랑 가장 친했어요"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날 인터뷰는, 지수는 어떻게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을까, 그의 꿈은 뭘까에 초점이 맞춰진채 진행했다. 비록 장애를 갖긴 했지만 지수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핵심적 이유는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 다닐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는 점이다. 그가 작장인으로 첫 발을 디딜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굿윌스토어 밀알반야월점(대구 동구) 입사 면점시험이 이뤄진 건 2023년 10월 어느 날.
     
    지수군 면접 당시 질문이 기억나요?, "예 젤 먼저 본인이 자신있게 할 수 있는게 뭐냐라고 해서 뭐든지 포기 안하고 추진하는 건데요라고 말했죠, 다음으로 대중교통 이용이 가능하니?라고 해서 예라고 대답했어요" "이런 질문도 기억나요 '약 먹는 거 있니', 저는 아침마다 먹는 약이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이 없고 신체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굿윌스토어 측은 센터를 통해 지수 학생에게 합격사실을 통보했다. 정규직의 꿈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지수가 조금은 다른 아이란 걸 누구보다 먼저 캐치했던 부모님은 하늘을 날아갈 듯이 기뻤다고 한다. "저는 제일 사랑해주시는 부모님에게 '엄마아빠, 저 드디어 정규직 됐어요'라고 말씀드렸고, '지수야 정말 잘됐어 장하다. 너무너무 축하해~'라고 좋아하셨어요" 다름을 딛고 힘겨운 노력을 이어가던 지수네에선 이보다 더 큰 경사가 있을 수 없었다.
     굿윗스토어 외부. 이재기 기자  굿윗스토어 외부. 이재기 기자 
    새내기 직장인 지수의 말을 들어보면 직장 분위기는 좋고 업무만족도도 '굿'이다. "제가 하는 일이 많이 재밌어요 저한테 제일 잘 맞다고 생각해요. (물건을 실은)화물차가 오면 남자 직원들이 많이 움직여야 하고요 짐을 옮기는 일을 하죠. 기증물품이 들어오면 남녀 직원들이 함께 일하고요 퇴근 직전 청소는 그날 상황에 따라 랜덤으로 맡아서 해요" 업무방식에 대한 그의 답변은 제법 직장인다운 테가 난다.
     
    업무 만큼 직장분위기에도 만족하는 눈치였다. "말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여기가 너무 좋아요", 월급 수준을 물었더니, "돈이 다가 아니에요 열심히 한다고 말해야 더 믿음을 갖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어 즐겁고 때로는 청소도 서로 힘 모아서 하고 무거운 것도 함께 도와서 나르고, 옆에 누군가 있어서 좋아요"
     

    "돈이 다가 아니에요 믿음을 갖게 해야죠"



    지수에게 장래에 꿈이 뭐니 인터뷰 말미에 다시 물어봤다.

    "나이가 들어서 뭘 할 지는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나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여기서 오래 (일)하고 싶어요" "이런 가게를 차리고 사장님이 되고 싶은게 꿈이에요. 손님이 들어 왔을 때 무시하거나 하면 안되니 여기서 그 때에 대비해서 열심히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라고 그제서야 조심스럽게 꿈을 털어놨다. 그에게도 원대한 꿈이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갖고 산다. 희망이 있어서 살 수 있다는게 좀 더 정확하겠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초중고 졸업하고 대학엘 진학하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일자리를 구하는 과정은 이 시대를 살아내는 청년들 누구에게나 버거운 일이다.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겪게 되는 도전과 좌절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들이 꿈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주는 건 가족들의 헌신적인 보살핌과 노력이다. 하지만, 초보 부모들은 아이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할지 막막하고 아는 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게된다. 장애인을 위한 단체가 많지만 모든 곳이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하진 않는다.

    '장애인교육 건학이념와 특수교육 노하우가 이룬 작은 성과'



    대구대학교가 K-PACE센터의 문을 열게된 건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에 수십년간 노력을 기울이며 쌓인 노하우가 있고 창업자 이영식 목사의 '심신장애인 교육 헌신' 유지가 있어 가능했다고 대구대 관계자는 전했다.

    대구대 설립자인 이영식 목사의 묘비. 심신장애인을 비롯 불우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업에 헌신했다고 적혀 있다. 대구대 제공대구대 설립자인 이영식 목사의 묘비. 심신장애인을 비롯 불우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사업에 헌신했다고 적혀 있다. 대구대 제공
    이 학교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교육시스템을 도입한 이는 설립자의 손자인 이근용 대구사이버대 총장이다. 올해로 13년째를 맞은 대구대 K-PACE센터는 14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그 숫자가 많지도 않고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선망하는 일자리로 취업을 성사시킨 것도 아니다. 다만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감당할 역량을 길러주는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해야겠다는 것이 이 대학이 장애인 교육에 천착하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재 국내에는 비슷한 개념의 발달 장애인 교육기관이 단 3곳 뿐이다. 이 과정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비용이 들긴 하지만 우리 사회에 이런 통로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