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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우리 관할 아냐"…'채팅 사기' 사건 떠미는 경찰



사건/사고

    서로 "우리 관할 아냐"…'채팅 사기' 사건 떠미는 경찰

    편집자 주

    유명 걸그룹 AOA 출신 권민아씨도 당했다는 채팅 알바 사기. '고수익 알바'라고 속여 '몸캠'을 찍게 만든 뒤 이를 빌미로 협박하는 신종 범죄가 일상을 파고들고 있다. CBS노컷뉴스는 3부작 연속기획에서 피해사례와 범행수법을 분석하고 경찰 수사의 과제도 함께 짚어본다.

    [성착취 덫이 된 채팅 알바③]

    황진환 기자황진환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 "신고하면 유출해드릴게"…몸캠 돌변한 '채팅 알바'
    ② '채팅 알바' 해보니…결국엔 "벗어라" "입금해라"
    ③ 서로 "우리 관할 아냐"…'채팅 사기' 사건 떠미는 경찰
    (끝)
     '채팅 알바'를 가장한 신종 범죄가 기승이다. 디지털 성범죄와 금융사기가 결합할 만큼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지만, 경찰의 대응은 여전히 더딘 모습이다. 개별 경찰관서나 수사관 차원에서 '일망타진'하기 어렵다 보니 검거 의지 자체가 떨어지는 게 현실이다. 전담팀을 구성해 수사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앞에서 사건 떠넘기기?


    대구에 사는 대학생 지원(가명·20대 초반)씨는 최근 채팅 알바 중 현금 200만원을 뜯긴 뒤 곧바로 인근 경찰서를 찾았다. "신고하면 당신이 보낸 나체 사진을 유포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잠시 망설였지만 혼자서는 더 이상 대응하기 어렵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경찰서에서 처음 안내받은 곳은 1층 '사이버범죄 수사팀'. 그중에서도 '몸캠' 담당 수사관을 만나 피해 과정을 진술했다. 이때 얘기를 듣던 수사관은 "우리 관할이 아닌 것 같다"며 지원씨를 위층 '여성·청소년 수사팀'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잠시 뒤. 이곳에서 부서간 언쟁이 있었다고 지원씨는 기억했다. '몸캠 사건이니 사이버팀 관할 아니냐'는 쪽과 '해킹이 없었으니 몸캠은 아니다'라는 쪽이 맞붙었다고 한다.
     

    지원씨는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몸캠 쪽(사이버팀)에서 더 나이가 있으신 분을 데려와서 '일단 수사해보고 영 아닌 것 같으면 배당위원회라도 열라'고 말한 뒤 여청팀 쪽에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수사에 필요한 부분을 직원들 간에 의논했을 뿐인데 오해를 하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원씨는 "다툼이 없었다면 '배당위원회'라는 말을 제가 어떻게 알겠나"라고 다시 반박했다.
     
    업무 분장이 모호한 건 기본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건이 신종 범죄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성착취, 금융사기 등 여러 성격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일선에서는 일의 경계를 '무 자르듯'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사건을 접수한 경찰관서들은 각각 저마다 다른 부서에 배당해 수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걸그룹 AOA 출신 권민아씨 신고를 받은 서울 용산경찰서의 경우 이 사건과 수법이 비슷하고, 심지어 같은 채팅 사이트에서 이뤄진 사건을 둘로 찢었다. 하나의 사건을 혐의별로 쪼개서 사이버수사팀과 여청수사팀에 각각 배당했다.

    연합뉴스연합뉴스
    경찰청 규칙에 따르면 사이버팀은 온라인 사기나 불법촬영물 유포 사건을, 여청팀은 성폭력 사건을 담당한다. 아울러 같은 유형의 사건을 경기 부천오정경찰서는 사이버수사팀에서, 인천 연수경찰서에서는 수사과 내 수사팀에서 조사 중인 것으로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확인됐다.
     
    경계가 모호한 건 일선에서 이렇게 '사건 떠넘기기'가 발생하는 배경이 된다. 배당이 자의적으로 이뤄지거나 심지어 '목소리 큰 쪽' 의견이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경찰 내부에서는 "이런 식으로 사건을 받게 되면 수사관 입장에서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할 수 있겠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경찰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관) 출신 배상훈 교수는 "경찰이 이런 형태의 범죄에 익숙지 않아 수사 견적이 안 나오고 혼자 감당하기에 시간이 많이 들 것 같으니 서로 떠밀게 되고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IP 핑계로 수사종결…악순환 반복"


    이런 형태의 범죄 수사가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해외 IP 사용'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범행에 가담한 일당이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우회 접속'했다면 실제 사용자를 특정하기 힘들다는 것.

    국제 공조를 요청하더라도 요즘엔 해당 IP 사용자에게 협조 사실을 곧바로 고지하는 경우가 많아 수사에 진척을 내기 어렵다고 한다.
     
    어쩌다 대포통장의 소유자를 찾더라도 대부분 범행에 이용됐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던 '대출 빙자 사기'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윗선 수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지원씨는 담당 수사관으로부터 "몸캠 협박 사건을 6개월 동안 추적했지만 본진이 필리핀에 있어서 잡을 수 없었다. 잡을 수 있을지 확답을 주기 어렵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때문에 일선에서는 이런 점이 외려 '수사 종결'의 근거가 되는 게 현실이다. 경찰서에서 사이버수사 중간 책임자를 맡고 있는 한 관계자는 "3개월, 6개월씩 한 수사를 끌다 보면 '빨리 끝내라'는 압박이 들어오고 시스템에도 '빨간불'이 들어온다"며 "그러다 보면 해외 IP라서 추적 단서가 사라졌다는 점에서 사건을 종결할 핑곗거리를 찾게 되고 이렇게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n번방처럼 전담팀 구성해야


    결국 일망타진을 위해서는 전담팀 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건을 1인당 수십 건씩 쌓아놓고 '처리하기 바쁜' 일선서 차원에서 나날이 진화하는 신종 범죄에 대응하기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경찰청 본청이나 지방청 차원에서 '청장 책임하에' 수사 역량을 집중해야 그나마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안팎의 조언이다.
     
    지난 202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n번방'이 윗선 검거에 성공했던 것도 전담 수사팀의 수훈이 컸다. 경찰은 당시 사이버안전국장을 본부장으로 본청 내에 디지털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꾸렸고 서울청·강원청·경북청 등 전국에서 4천여명의 인력을 투입했다.

    텔레그램에서 장기간 지속된 방대한 양의 대화 자료를 분석하고 용의자들의 동선과 온라인 정보를 실시간으로 추적하는 데에는 그만큼 '발품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수사를 '못'하는 게 아니다. 문제는 전문적인 역량이 있는 본청 수준의 사이버수사팀이 개입하느냐 안 하느냐 하는 의지의 문제"라며 "돈의 이동을 따라가다 보면 잡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가담자들이 국내에 있었고 내부 고발자의 도움을 받았던 n번방 사건과는 양상이 다르겠지만,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로 국가수사본부 차원의 역량을 결집해 자금의 이동 경로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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