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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수술용 혈액 찾아다닌 3시간…아들은 피가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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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수술용 혈액 찾아다닌 3시간…아들은 피가 말랐다

    편집자 주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국내 혈액 공급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코로나19 사태 이전보다 전국 헌혈 건수는 18만건이 줄었다. 반면, 환자와 보호자가 직접 혈액을 구하는 '지정헌혈'은 최소 2.5배 늘었다. 혈액이 필요한 시민들은 오늘도 애타는 마음으로 연락을 돌리고 있다. 기사의 시작은 아버지의 수술용 혈액을 직접 구하러 다닌 40대 남성의 사례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코로나19 전보다 18만건 감소…단체헌혈 감소 영향
    환자 지정하는 '지정헌혈'은 2년새 2.5배 증가
    일부 의료기관, 재고 관계없이 '일단 지정헌혈' 요청…"불균형 초래"
    20년째 헌혈하는 30대 아빠 "어렵지 않은 일로 타인 도울 수 있어"

    낯선 번호로 걸려온 전화. 아버지가 입원 중인 병원이다.

    "아버지께서 수술을 하셔야 되는데 코로나로 혈액이 부족합니다. 직접 구해주셔야…"

    갑작스런 수술 소식도 당황스럽지만, 직접 혈액을 구해야 하는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수술 여부가 고스란히 가족에게 달린 상황. '우리도 알아보겠다'는 병원 관계자의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더욱 속이 탄다.

    무작정 휴대전화를 열고 연락을 돌렸다. 다들 한창 일할 시간이다 보니 연락이 닿지 않는다. 친척부터 직장 동료, 우연히 명함을 주고 받은 의사들한테까지 도움을 구해본다.

    그렇게 모은 네댓 명. 이번엔 피를 뽑는 과정이 문제다. 한명 한명 위치를 물어보고 인근에 있는 헌혈센터를 찾아줬다. 어렵게나마 필요한 만큼을 모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3시간. 뉴스에서나 보던 '지정헌혈'이 내 일이 될 줄은 몰랐다.


    거리두기 등 단체헌혈 줄며 18만건 감소

    7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헌혈의집. 헌혈을 하는 시민이 없어 한산하다. 정성욱 기자7일 오후 경기도 수원의 한 헌혈의집. 헌혈을 하는 시민이 없어 한산하다. 정성욱 기자
    코로나19 사태가 2년가량 지속되며 헌혈센터를 찾는 발길도 줄고 있다.

    7일 대한적십자사(적십자)에 따르면 올해 1~11월 전국 헌혈 건수는 236만7975건으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 같은 기간(255만4637건)보다 18만건가량 감소했다.

    당국은 헌혈이 줄어든 이유 중 하나로 단체헌혈 감소를 꼽는다. 적십자는 기업이나 학교, 경찰서 등을 찾아 단체헌혈을 해왔다. 하지만 확진자가 증가하고 거리두기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지다 보니 단체헌혈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때문에 전체 헌혈량 중 40%가량을 차지했던 단체헌혈 비율이 현재는 25%까지 떨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정부가 보유중인 혈액량은 약 5일. 혈액 공급이 끊겨도 5일간은 수혈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혈액 수급 위기단계상으로는 '적정' 단계에 해당된다.

    하지만 당국은 지표상 수치일뿐 실제로는 '위험' 수준이라고 우려한다.

    적십자 관계자는 "지난 6일 기준 보유혈액량이 5.3일이긴 하지만 현장은 여전히 혈액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코로나19로 수급량이 언제 줄어들지 모르고 5일도 안정권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유 혈액 줄자 지정헌혈은 2.5배 증가…속타는 보호자


    보유하고 있는 혈액이 부족하다 보니 자연스레 '지정헌혈'은 늘고 있다. 지정헌혈은 혈액이 필요한 환자를 지정해 헌혈하는 방식이다. 병원에 '남는 피'가 없다 보니 보호자 등이 직접 혈액을 구해 환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2019년 4만3794건이었던 지정헌혈 건수는 2020년 7만4596건, 올해는 10월까지 집계된 수치만 10만 8천건으로, 코로나19 발생 전보다 최소 2.5배가량 증가했다.

    하지만 수술에 필요한 혈액량을 온전히 개인이 구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 때문에 온라인상에서 도움을 구하는 일도 많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보니 꾸준히 헌혈을 해오던 사람들이 지정헌혈을 하게 되고, 전반적인 혈액 공급체계에 불균형이 생기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정헌혈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일부 의료기관의 '일단 지정헌혈'을 요청하는 분위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 한 관계자는 "언젠가부터 다수의 의료기관이 혈액 재고와 관계없이 일단 지정헌혈부터 요구하고 있다"며 "혈액을 쌓아두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혈액 공급에 불균형을 초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20년째 헌혈하는 '작은 영웅들'…"아들한테 모범 보이고 싶어"

    20년째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는 최무정(39)씨. 최씨는 헌혈을 할 때마다 아들 준우(7)군과 함께 찾으며 헌혈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정성욱 기자20년째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는 최무정(39)씨. 최씨는 헌혈을 할 때마다 아들 준우(7)군과 함께 찾으며 헌혈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정성욱 기자
    그럼에도 지금껏 혈액량이 유지되는 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보태는 이들 덕분이다.

    경기 오산에 사는 최무정(39)씨는 20년째 꾸준히 헌혈을 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초코파이'를 먹기 위해 헌혈을 시작했다는 최씨. 그는 어렵지 않은 일로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게 헌혈이라고 말한다.

    특히 최씨는 10년 전 우연히 백혈병 환자를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했던 날을 기억한다. 그는 병실에서 수혈을 받고 있는 환자의 모습을 보고 혈액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고 한다.

    최씨의 헌혈 횟수는 126회. 주 6일 근무를 하면서도 휴무일마다 헌혈의집을 찾았다. 재헌혈 주기가 2주 정도인 '혈소판 다종성분헌혈'을 주로 했기에 전혈보다 더욱 자주 헌혈을 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7살 아들과 함께 헌혈의집을 찾는다. 나이 제한 때문에 아들은 헌혈을 할 수 없지만 어린 시절부터 헌혈의 중요성을 알려주려고 함께 온다고 한다.

    최씨는 "코로나 사태 이후 헌혈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며 "어렵지 않은 일로도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일이니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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