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본부
미국의 요청에 의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3시(현지 시각)에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한 침략 중지결의안을 의결한 데 이어 27일에는 한국이 북한의 군사 행동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 국제 평화와 전쟁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한국에 제공하도록 UN 회원국가에 권고하는 안을 가결시켰다. 이에 미국은 전면적인 한국전쟁 참전을 결정하였으며, 자유 진영의 32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6월 27일 결의를 지지하여 7월 중순에는 52개국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16개국이 한국에 대해 전투부대의 파병과 5개국의 의료 또는 시설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유엔에 통보해 왔다.
또, 유엔 안보리는 7월 7일 UN회원국이 한국에 파견하게 되는 부대의 지휘체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UN군사령부 설치에 관한 결의안을 의결하고 미 극동군 사령관인 맥아더 원수를 UN군사령관에 임명하였다. 이렇게 하여 UN은 한국전쟁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UN 결의에 따라 16개국 참전국이 한반도에 투입되었고 그 전쟁은 결국 3년 1개월 만에 휴전상태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 휴전상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금년은 그 한국 전쟁 발발 58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UN(United Nation). 한국의 반기문 사무총장 시대가 열리면서 더욱 한국인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유엔, 우리말로는 국제연합이라고 부른다. ''국제연맹''의 뒤를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설립된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보편적 평화기구, 이것이 사전에 묘사된 유엔의 설명문이다.그 유엔 본부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은 뉴욕 맨하탄 동쪽. 42번가와 1번가가 만나는 맨하탄 동쪽, 바로 옆에는 이스트 리버(East River)가 유유히 흐르고 본부건물과 강변사이에는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루즈벨트 하이웨이가 달린다. 서울의 강변도로와 같은 길이다.
1943년 10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영·소 3국 외상회의에서 제2차 세계대전 후의 평화유지기구 설립문제가 정식으로 거론되었다. 그 결과, 이 3개국에 중국을 더한 4개국이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를 위해 모든 평화애호국의 주권평등 원칙에 따른 세계적 국제기구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모스크바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새로운 기구 설립에 대한 연합국 입장을 밝혔다. 1944년, 미국의 덤버튼 오크스 제안이 나왔다. 이것이 ''국제기구 설립에 관한 제안''이었으며, 오늘날 유엔헌장의 원안이 된 것이다.
1945년 2월, 미·영·소 3개국 수뇌가 모인 얄타회담에서, 안전보장이사회의 표결방법과 신탁통치제도 등의 미결사항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고 같은 해 4월, 50개국의 대표를 모은 연합국 전체회의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2개월에 걸친 심의를 거쳐, 덤버튼 오크스제안을 수정·추가하여 헌장초안이 완성된 것이다. 이 초안은 동년 6월 26일 50개 참가국에 의해 서명되었으며, 10월 24일 국제연합이 정식으로 발족하게 되었다. 발족시 가맹한 나라를 원 가맹국이라고 하는데, 전부 51개국. 그래서 10월 24일은 UN Day, 세계 여러 나라가 공휴일로 지키는 날이 되었다. 현재 192개국이 회원국으로 있는 유엔은 6개의 주요 기구로 조직되어 있다. 총회(General Assembly), 안전보장·경제사회·신탁통치의 3개 이사회, 국제사법재판소 그리고 사무국이 그것이다. 유엔은 이들 주요기관 외에 보조기구를 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UN 총회는 전 유엔가맹국으로 구성되는데 중요문제는 2/3 다수로 결정한다. 대개 10월 24일에 총회가 열리는 것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매년 1회 열리는 UN 총회는 9월 셋째 화요일부터 열리게 된다. 복잡한 유엔의 조직과 행정절차가운데 안전보장 이사회(United Nations Security Council, 약칭 안보리)는 툭하면 뉴스에 오르내리는 유엔의 대표적인 기구중 하나.
이스트 리버
안보리는 상임이사 5개국과 2년 임기의 비 상임이사 10개국을 합하여 총15개국으로 구성된다. 상임이사국은 러시아, 미국, 영국, 중화민국, 프랑스 등 5개국이다. 2차 대전 승전국들이다. 1971년 10월 국제연합총회에서 중국이 중화민국을 대신해서 상임이사국이 되었고 1991년 소련이 해체된 이후에는 러시아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비상임이사국의 임기는 2년이며 UN 총회에서 지리적 균형을 감안해 선출된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시아에서 두 자리, 동유럽에서 한 자리, 서유럽과 그 외의 나라에서 두 자리를 차지한다. 남은 한 자리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교대로 차지한다.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는 15개 이사국들 중 9개국의 찬성표가 있을 경우 안건이 통과될 수 있다. 그러나 상임이사국이 거부권(Veto)을 행사할 경우 아무리 9개국의 찬성이 있더라도 이 안건의 통과를 막을 수 있다. 기권은 거부권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안전 보장 이사회가 생긴 이후 중국은 5번을, 프랑스는 18 번을, 러시아는 122번을, 영국은 32번을, 미국은 81번을 각각 행사했다고 한다. 러시아가 행사한 대부분의 거부권은 이사회가 생긴 후 초반 10년 사이에 이뤄졌으며, 1984년 이후의 거부권 행사는 중국 2번, 프랑스 3번, 러시아 4번, 영국 10번, 미국 43번이다. 이쯤 되면 안보리의 비토권이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막강한지를 엿보게 해준다.
유엔 사무국(Secretariat)의 최고책임자가 UN 사무총장(UN Secretary-General)이다.사무총장은 총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1만 6천여 명의 사무국 직원을 임명할 수 있고 산하기관까지 포함되면 총 4만 명에 대한 인사권을 손에 쥐고 있다. 사무총장은 세계 최고의 외교관으로 국제 사회에서 국가 원수 내지는 행정수반에 준하는 예우를 받게 된다. 이 같은 예우는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유엔을 하나의 국가 수준으로 보기 때문이다. 별도 보안 검색 없이 각국의 공항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외국을 방문할 수 있는 외교관 이상의 면책 특권이 부여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1945년 국제연합 출범 이후 지금까지 사무총장을 지낸 인물은 반기문 현 사무총장을 포함해 모두 8명. 그 가운데 단임에 그친 사람은 이집트 출신의 부트로스 갈리가 유일하고, 그밖에 역대 6명의 총장이 총장직을 한 차례씩 연임한 바 있다. 국제연합 헌장이 지정한 국제연합 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이지만 10년간 연임할 수도 있다. 우리가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사무총장하면 미얀마의 우탄트, 스웨덴의 함마슐드, 그리고 반기문 총장의 전임자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코피 아난 등이 떠오른다. UN 사무총장은 UN본부 내 사무총장 집무실에서 1년에 단 1달러의 임대료를 내고 근무하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조각품들
UN은 보조기구 총113개, 전문기구 16개 등이 있는데 국제노동기구(ILO),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 세계보건기구(WHO), 국제 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통칭 세계은행)등은 모두 유엔 전문기구들이다.유엔의 공식 언어는 영어로만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영어 외에 에스파냐어, 프랑스어, 중국어, 아랍어, 러시아어 등이 공용 언어다. 2차 대전 패전국인 독일어와 일본어는 얼씬도 못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나 할까?
유엔 총회 건물이 뉴욕에 건축되기는 했지만 영국, 프랑스, 네델란드와 같은 유럽 국가들이 본부를 유럽에 두어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한다. 또 미국에서도 필라델피아,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이 거론되었고 심지어 대통령 4명의 조각이 서있는 사우스 다코다 주 마운트 러시모어와 인접한 블랙 힐스가 물망에 오르기도 했다. 존 D 록펠러 2세가 850만 달러의 토지를 뉴욕시에 기증함으로써 이곳에 건축된 본부 건물은 건축가 월레스 해리슨이 설계했고 1953년 완공되었다. 이 건물은 총회 빌딩, Conference 빌딩, 사무국 빌딩, 함마슐드 도서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자가 본부를 방문하는 날, 본부 앞 터키 대사관 빌딩 앞에서는 대규모 ''터키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본부 주변의 ''튜터 시티''에는 각국의 유엔 대사관 빌딩이 크고 작은 모습으로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뉴욕 속의 세계''라고나 할까? 그래서 이 유엔 본부 빌딩은 뉴욕에 서 있지만 미국 영토가 아니다. 저 멀리 자유의 여신상을 바라보며 이 지구촌의 평화와 안전을 위해 의연하게 서 있는 유엔 본부, 현재의 사무총장은 바로 6.25 전쟁의 아픔과 절망을 딛고 세계 경제 선진국으로 비약하고 있는 대한민국 출신이라는데 한없는 긍지가 느껴지는 자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