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는 폭설로 제주공항이 마비돼 발이 묶였던 승객들이 3일만에 돌아온 지난 25일, 서울 김포공항은 밤새도록 북새통을 이뤘다.
항공사마다 여객기를 긴급 편성한 덕분에 짧으면 3분, 길어야 10분 간격으로 국내선 게이트가 쉴 새 없이 열렸고, 그 때마다 제주공항에서 '노숙'을 강요받았던 승객들이 몰려나왔다.
차디 찬 제주공항 바닥에서 추위를 견디며 노숙하느라 겹겹이 옷가지를 입었던 이들은 두 눈이 반쯤 감긴 채 연신 하품을 하며 서둘러 공항 밖으로 향했다.
게이트 앞에는 졸지에 3일간의 '이산가족' 신세를 겪어야 했던 가족들이 제주공항에서 돌아온 승객들을 반기며 안부를 물었다.
항암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모(61, 여) 씨는 "생일을 맞아 딸이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보내줬는데 그만 뉴스에서나 보던 일이 벌어졌다"며 "항암 치료에 필요한 약이 다 떨어져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데 발이 묶여 잔뜩 걱정했다"고 혀를 찼다.
갓난아이 셋을 안은 채 공항에 도착한 황모(35, 여) 씨는 "공항 주변 숙소가 꽉 차면서 아기들을 공항의 찬 바닥에 내버려 둬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면서 "어렵게 아이들과 함께 눈길을 뚫고 제주시 외곽까지 나가 숙소를 구해야 했다"고 하소연했다.
친구와 제주도 여행을 떠났던 이모(30, 여) 씨는 "도로가 통제된 줄도 모르고 버스를 타고 한라산에 올라갔다가 길이 막혀 도깨비도로에서 제주 시내까지 걸어 내려왔다"며 "간신히 공항까지 왔지만 승무원도 경찰도 제대로 안내해주지 않아 한참 헤맸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둘러 제주공항을 '탈출'하느라 목적지와 관계없이 일단 김포행 여객기에 몸을 실어야 했던 승객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이모(38) 씨는 "김해에 가야할 사람을 김포로 보내놨다"며 "별다른 안내도 받지 못한 채 김포로 왔는데 서울역 기차를 놓치면 다시 하룻밤을 공항에서 보내게 된다"며 발길을 서둘렀다.
이씨의 아내도 "별다른 안내도 없이 지방에 갈 사람이라도 제주를 떠나려면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라"며 "김포라도 가지 않으면 다음 비행기편은 우리도 모른다는 식으로 나오니 어이가 없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청주로 가야 하는 이모(59) 씨도 "회사 일로 청주에 가야 하는데 직항편이 없어 우선 김포로 왔다"며 "천재지변 때문에 직장에 못 갔다고 말은 해뒀지만, 더는 늦을 수 없다"고 말한 뒤 걸음을 서둘렀다.
이들은 밤새 수송 작전이 시작된 제주공항이 아직도 '아수라장'이라며 공항과 항공사의 주먹구구식 대응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임모(47) 싸는 "토요일 아침 딱 1시간만 업무를 봤는데 하필 내가 탄 여객기부터 발이 묶이기 시작했다"며 "특히 내가 이용한 저가 항공사는 숙소도 구해주지 않고, 안내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답답해했다.
임씨는 "견디다 못해 5km를 걸어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고 숙소를 구했다"며 "공항공사나 지자체에서 운송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서로 책임만 떠넘기며 시간을 보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