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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제궁의 요리사' 눈이 즐겁고 행복한 맛의 향연

[노컷 리뷰] 요리예술 과시…프랑스 문화에 바치는 찬사

프랑스 대통령의 입맛을 사로잡은 유일한 여성 셰프의 실화에 바탕을 둔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 프랑스 문화와 대통령의 품격을 자랑하는 이 영화는 다양한 홈쿠킹과 전통요리를 선보이는 데 힘을 쏟는다. 요리로 기억될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를 미리 본 이명희 평론가의 관람평을 전한다. [편집자주]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프랑스 페리고르에서 송로버섯 농장을 경영하고 요리사로 명망 높던 오로땅스 라보리가, 대통령 관저인 엘리제궁 최초의 여성 셰프로 발탁돼 프랑스 요리의 진면목을 보여 주는 영화다.

프랑스 남서부 시골인 페리고르 지방은 비옥한 농업지대로 오리요리, 푸아그라(거위간), 송로버섯, 산새버섯 등 프랑스 전통요리의 맛으로 유명하다. 특히 송로버섯은 '검은 다이아몬드'로 불릴 만큼 가격이 천정부지인 식재료다.

이 영화는 입맛이 까다롭기로 유명했다던 미테랑 대통령의 전담 요리사였던 다니엘 마제 델뾔슈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영화의 볼거리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다양한 요리의 레시피, 시각적으로 표현된 맛의 향연이다. 화려한 엘리제궁의 내부를 개방해 관객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는 한편, 값진 그릇과 주방식기, 식재료, 주방 시스템이 주는 눈요기도 상당하다.

엘리제궁의 요리사에는 두 개의 시공간이 교차한다. 주인공 오르땅스 라보리가 2년 동안 최초의 여성 셰프로 일했던 대통령관저인 엘리제궁, 그 후 2년을 보내는 문명사회에서 격리된 적막하고 고독한 남극기지가 그것이다.

엘리제궁은 현대 민주주의 공화국의 대통령 관저인지, 17세기 왕의 궁궐인지 구분이 안 될 만큼 화려하고 귀족적이다. 여주인공이 엄격한 규율과 명령에 짓눌리고, 기존 요리사 동료들의 야유와 질투에 대적해야 했던 긴장된 공간이기도 하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에 등장하는 요리 들. (사진=판씨네마㈜ 제공)

 

셰프이지만 위계질서에 묶인 하인과 같고,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대통령의 스케줄 때문에 항시 긴장하던 오르땅스는 명령에 따라 엘리제궁에서의 임무를 하루아침에 조용히 끝내고 짐을 싼다.

반면 드넓은 자연, 자유로운 공기, 인간적인 활기와 평등함, 웃음으로 가득한 남극기지에서 오르땅스는 자기 음식을 먹은 모두의 환호와 찬사 속에 '사랑받는 가장 높은 사람'(보스, 우두머리를 뜻하는 셰프의 원래 의미처럼)으로 인정받으며 임무를 마친다.

대통령은 무엇을 먹을까. 어떤 그릇으로 얼마나 좋은 음식을 먹을까.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이러한 호기심을 영화화한다.

행정관료들의 계산과 기능적이며 몰개성적인 가치, 엘리제궁의 사치스러운 배경이 평온과 숭고함으로 상쇄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국제정치의 복잡함을 살아가는 대통령이 긴박한 일정을 뒤로하고 요리사와 평등하고 진솔하게 담소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음식의 맛으로 대통령의 친밀감을 획득하는 요리사, 이보다 더한 평가와 인정이 있겠는가. 부엌으로 내려온 대통령은 벗에게 이야기하듯 추억을 말하고, 옛집과 어머니와 할머니의 요리에 관해 이야기하고, 삶의 역경을 위로한다.

"당신이 무엇을 먹는지 말해다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려주겠다." 이는 18세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유명한 말이다. 영화의 대통령은 누구일까. 외교와 법과 정치 전문가로서의 당연한 이력을 이 영화는 말하지 않는다. 단지 '깊은 프랑스'라고 표현되는, 지극히 프랑스적인 음식의 맛을 깊이 사랑하고 향유하는 미식가이다.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의 한 장면. (사진=판씨네마㈜ 제공)

 

게다가 이 대통령은 요리책을 즐겨 읽는다. 연출가, 영화감독으로 이름난 사샤 기트리가 서문을 쓴 에두아르 니뇽의 요리책 '프랑스 요리에 바치는 찬사'(1933)를 오르땅스에게 선사하면서, 대통령은 '아름다운 오로르의 베개' 같은 음식 이름과 레시피 묘사의 문학적 가치에 감탄한다.

사를라의 감자, 페리고르의 송로버섯, '피에르 꼬르네이유(17세기 프랑스 극작가)의 땅'에서 온 오리 등, 원산지가 분명한 프랑스 식재료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장면은 프랑스의 문화적, 역사적 토양에 대한 자랑이다. 결국 이 영화는 문화를 사랑하는 대통령을 통해 프랑스 문화를 심하게 홍보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통령은 대단히 품격 있다. 옛 문헌을 인용하고 감탄하는 대통령이 학자의 면모를 보여주는 이유는 실제 아카데미 프랑세스의 수장으로서 작가이자 학자인 장 도르메송이 대통령 역을 연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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