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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영화톡]상식 집어삼킨 잔인한 '국가폭력' 고발하는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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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영화톡]상식 집어삼킨 잔인한 '국가폭력' 고발하는 용기

    ④'리바이어던' 짙게 밴 허무·혼돈…"생각하게 하는 영화"

    러시아 영화 '리바이어던'(감독 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은 '허무' '염세' '혼돈'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의 지배를 받는다. 영화 속 개인들은 출구 없는 부조리한 현실에 좌절한 채 절규한다. 관객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영화에 대입해 적극적인 해석 의지를 불태울 것이다. 리바이어던을 본 뒤 이명희 영화 평론가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편집자 주]

     

    이명희 평론가: 국가 폭력을 말하는 용기. 제목과 내용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따라 영화는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

    이진욱 기자: 공교롭게도 최근 러시아에서 대통령 푸틴을 비판해 온 정적이 피살되면서 이 영화의 사실성을 배가시키고 있다. 극중 무지막지한 절대권력과 마주한 개인의 나약한 허우적거림이 몹시 가엽다.

    이명희: 리바이어던은 사실주의 영화다. 비리가 많고 민주주의 의식이 없는 어느 러시아 시장이 사리사욕을 위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주인공의 행복과 재산권을 박탈하고 권력을 악용하고, 심지어 폭력을 자행하면서 주인공에게 누명을 씌워 구금하는 내용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에서 가족과 집을 지키고자 했던 주인공이 얼마나 억울한지, 권력이 얼마나 악한지를 영화는 보여준다.

    이진욱: 이 영화는 소위 민주화된 현재 러시아뿐 아니라, 공산주의를 표방한 소비에트 연방(소련) 시절, 그에 앞선 차르 군주제 시대까지 근현대 러시아를 지배해 온 모든 권력층을 싸잡아 비판하는 모습이다. 극 중반 레닌부터 고르바초프까지 소련 지도자들의 초상이 나오는 장면과 여러 차례 등장하는 러시아정교 신부의 묘사도 이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이명희: 리바이어던은 성경에 의하면 무시무시하고 강력한 괴물이다. 욥처럼 억울하고 의로울지라도 리바이어던보다 막강한 힘인 신에 불만을 갖고 대항한다는 것이 허약한 인간의 오만이고 부질없다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사면초가에 몰린 주인공이 러시아정교 신부에게 조언을 구하는데, 신부는 "종교를 믿고 권력에 복종하며, 운명을 받아들이고 저항하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이진욱: 영화 제목이 사회 계약설로 유명한 토마스 홉스(1588~1679)의 저서와도 같다. 그 책에 나오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무질서하고 무자비한 자연 상태는 영화 속 러시아에서도 여지없이 재현된다.

    이명희: 감독이 거론하듯이 강력한 국가를 상징하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대입하면, 영화는 은유적이 된다. 홉스에게는 리바이어던이 시민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성립된 강력한 국가라는 중립적인 개념일 것이다. 허약한 인간이 이길 수 없는 힘을 상징하는 명칭인 리바이어던은 이제 막강한 국가권력을 의미한다.

    영화 '리바이어던'의 한 장면. (사진=오드 제공)

     

    이진욱: 홉스는 자연권이 보장하는 자유를 일부 포기하면서까지 시민들이 공생과 안전을 위해 국가 통제를 기꺼이 받아들일 거라 보지 않았나. 그런데 그 국가 권력이 부조리하고 비윤리적이라면? 이 물음에서 영화 리바이어던은 출발한다.

    이명희: 국가가 법과 도덕으로 성립돼야 하는데, 영화에서는 악한 권력일 뿐이다. 영화의 전후에 두 번 등장하는, 낭독문을 읽는 여판사의 얼굴이 상징하는 법은 기계적이며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거짓된 법, 권력과 결탁한 불공평한 법이다.

    이진욱: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공권력이 어느 순간 인간성을 지워 버리고 독자적인 시스템으로 작용한다. 더욱이 그 시스템은 소위 해당 사회의 권력을 쥔 소수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다수를 억압하는 모순을 낳는다. '최악'을 피해 '차악'의 필요성을 외친 홉스의 제안이 빛을 잃는 순간이다.

    이명희: 러시아정교 신부의 설교 장면은 진리를 말하는 듯하지만, 의미와 현실이 부합되지 않는 또 하나의 거짓 언어일 뿐임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종교는 권력과 협잡한다.

    이진욱: 영화에 신부가 두 명 나오는데, 두 신부의 처지 역시 극심한 빈부 격차를 보인다. 극 말미 기득권층이 다니는 교회의 풍경은 그 단적인 예다. 예배가 끝나고 시장과 기업가가 비즈니스를 논하는 모습이나 최고급 명차 들이 줄지어 교회를 빠져나가는 장면은 그래서 씁쓸하다.

    이명희: 빈민가의 신부가 나누는 빵을 받고 가난한 여인은 돼지를 돌본다. 힘없고 가진 게 없는 주민이 사육하는 탐욕스러운 돼지가 쩝쩝거리며 사료를 먹는 장면은 영화를 은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인상적이다.

    이진욱: 좁은 우리 안에서 관리자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려 몸을 부대끼는 돼지들의 모습은 인간 세상과 겹쳐지면서 충격을 준다. 비리를 저지르는 시장 역시 우리에 갇힌 탐욕스런 돼지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우리에 갇힌 돼지들은 야생성이라는 자유를 잃었지만, 사람들이 돌보는 덕에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다. 하지만 인간이 돼지를 키우는 목적은 하나다. 이 영화의 메시지를 압축해 보여 주는 장면이 아닐까.

    영화 '리바이어던'의 한 장면. (사진=오드 제공)

     

    이명희: 폭력배를 휘하에 두고 비리를 저지르고 주먹과 총을 쓰는 시장이 상징하는 권력은 비도덕적이며, 야만적이어서 약한 개인을 보호하는 선한 국가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무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권력층의 탐욕 때문에 결국 15년 동안 감옥에 갇히는 주인공이 보여주는 비극은 국가폭력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가 이 영화를 문제 삼은 것일까.

    이진욱: 이 영화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가 '국가의 결속성을 해치는 영화'에 대한 검열제를 도입하기로 결정해 커다란 논란을 낳고 있다. 극중 시장 집무실 벽에 걸린 푸틴의 사진은 마치 최고 권력자가 시장의 비리를 비호해 주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이는 비단 러시아 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명희: 주인공의 아들은 순수한 정신, 러시아의 미래를 표방하는 존재가 아닐까. 무력하고 술만 마시는 아버지인 주인공에게 분노해 울부짖는 사춘기 소년이 바닷가에 방치된 거대한 고래의 뼈를 보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아이들이 모이는 폐허, 차고 위협적인 찬 바다, 거센 파도, 폐선의 장면들도 대단히 아름답고 상징적이다.

    이진욱: 극중 국가폭력 앞에 노출된 개인들은 결국 패하고 짙은 허무와 비관에 사로잡힌다. 독한 보드카를 입 안에 털어넣고 만취한 어른들은 그렇게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친다. 하지만 아이는 허무와 비관에 사로잡힌 부모세대에 끝까지 저항한다.

    이명희: 영화의 유일한 위안은 어린 아들을 돌보겠다고 이웃이 제안하는 장면뿐이다. 보육원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으로 책임을 진다는 국가가 여기서도 미심쩍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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