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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걸고 온 탈북자에 "중국으로 돌아가라"



사건/사고

    목숨걸고 온 탈북자에 "중국으로 돌아가라"

    '무국적 탈북자' 법적인 보완책 마련 시급

     

    목숨을 걸고 중국에서 넘어온 탈북자들이 외국인보호소에 수감돼 중국으로 강제추방될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버지가 중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탈북자' 인정을 받지 못한 무국적 탈북자들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이 시급한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외국인보호소의 3번 면회실.

    불혹을 앞둔 남성은 허리가 구부정한 자세로 면회실로 들어섰다. 검게 그을린 피부와 새치로 뒤덮인 머리카락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올해 나이 만 38세의 탈북자 김기남(가명) 씨. 기자가 김 씨를 찾아간 날은 그가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된 지 꼭 70일이 되는 날이었다.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김 씨는 지난 1996년 탈북했다. 대기근으로 북한 주민 200만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던 때였다.

    그는 북한 사람인 어머니(당시 63세), 조카(당시 9세)와 함께 중국으로 도망쳤다. 화교 출신인 아버지는 2년 전 이미 세상을 뜬 뒤였다.

    가까스로 중국 연변에 도착했지만 '탈북자라는 사실을 폭로하겠다'며 협박하는 인신매매상에게 끌려가 목장에서 강제 노역을 했다.

    1999년 가을 밤 12시였다. 중국 공안이 내륙 지역에 숨어 지내던 김 씨의 가족을 덮쳤다. 누군가가 이들의 은신처를 밀고한 것이었다.

    김 씨는 공안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수갑을 찬 채 밖으로 도망쳐 나왔지만, 그의 어머니와 조카는 곧바로 북한에 압송됐다. 그의 어머니는 북한 교화소에서 4년 간 수감 생활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김 씨는 10년 동안 중국에서 식당 잡역부 등으로 일하며 간신히 생계를 이어나갔다. 공안이 끈질기게 그의 뒤를 쫓는 바람에 힘겨운 도피 생활은 계속됐다.

    지난해 김 씨는 결국 한국행을 택했다. 중국 국경을 넘어 라오스에 도착했지만, 현지 경비대에 붙잡혀 두 달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는 곧 한국대사관에 인계됐고, 목숨을 건 모험 끝에 올해 2월 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그토록 희망했던 한국 땅은 그에게 절망의 땅이 됐다. 김 씨는 곧바로 국가정보원으로 옮겨져 4개월간 조사를 받다 지난 6월 화성 외국인보호소에 또 다시 구금됐다.

    정부가 김 씨를 '탈북자로 인정할 수 없다'며 강제퇴거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 인권 사각지대 놓인 '무국적 탈북자'

    6일 난민인권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초 중국을 거쳐 국내에 입국했다가 구금된 무국적 탈북자는 최소 4명에 이른다.

    '무국적 탈북자'란 말 그대로 국적이 없는 탈북자를 뜻한다. 부모 중 한 명이 화교 또는 중국인이거나 중국에서 태어난 탈북자 2세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김 씨의 경우 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북한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신 '화교증(외국인 등록증)'을 받았다. 해당 등록증은 북한 정부가 발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국에선 무용지물이다.

    김 씨는 "중국 호구제도에도 등록이 안 돼 있어 강제출국되면 결국 중국 정부가 (나를) 북한으로 넘길 것이 뻔하다"며 "잡히면 곧바로 죽게 될 것"이라고 난색을 표했다.

    현행법상 외국인 등록증을 갖고 있는 이들은 '탈북자' 개념에 포함되지 않는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은 "북한이탈주민이란 북한에 주소와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자로서, 북한을 벗어난 후 외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자"로 규정하고 있다.

    이때문에 무국적 탈북자 가운데 김용화 씨는 국내에 재입국한 지 2년 만인 2003년에서야 탈북자 인정을 받았고, 2004년 입국한 김천일씨는 화성 외국인보호소를 거쳐 중국으로 강제송환됐다가 한국으로 다시 송환되는 서러움을 겪은 바 있다.

    이처럼 무국적 탈북자들은 제대로 된 보호와 정착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관련 단체들은 개선책 마련을 꾸준히 정부에 요청했지만 변화는 미미한 실정이다.

    북한인권시민연합의 이영환 조사연구팀장은 "북한에서 외국인 취급을 받는 무국적자 가운데 잠재적인 탈북자의 수는 수십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향후 대량탈북 사태를 대비해서라도 무국적 탈북자를 상대로 국적판정신청제도 같은 기준을 마련하는 등 법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BestNocut_R]

    이 팀장은 또 "법무부는 국정원 조사 결과에만 의존하지 말고 탈북자에 대한 2차 판단에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면서 "중국 국적이라고 판단되더라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강제출국 조치보다는 신변 안전이 확실하게 보장된 상태에서 중국 송환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올해 초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진 탈북자들과 관련, 법무부 관계자는 "국정원 등 관계당국에서 협의한 결과 '위장 탈북자'인 것으로 판명났다"면서 "출국 요건을 갖추는 동안 임시로 보호소에서 보호하는 중"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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