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민욱
레코드판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뮤직 박스. 사연 담은 작은 쪽지에 적힌 신청 곡. 낮은 톤으로 마치 속삭이듯, 곡을 소개하는 DJ. 뽀얀 담배 연기, 그리고 낭만적인 커피 향…….
7,80년대 얘기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바로 지금! 2007년의 풍경이다.
1974년부터 지금까지, 34년 동안 DJ로 살아 온 장민욱 씨가 만들어 낸 풍경이다.
음악이 좋아서 음악에 푹 빠져서, 한평생을 오로지 음악만을 위해 살아 온 장민욱 씨. 그는 노량진 학원가에서 오랫동안 명성을 날린 인기 DJ였다.
이제, 음악다방은 사양 길로 접어들었고, 그 많던 DJ들도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장민욱 씨는 여전히 뮤직 박스 안에서 레코드판을 돌리며 낮은 음성으로 곡 소개를 하고 살아가는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여전히 아날로그를 고집하며추억을 전하는 음악다방 DJ, 장민욱 씨를 4월 27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다.
◇ 7080세대, 추억을 되살리는 음악다방
▶ 요즘 젊은이들은 잘 모르겠지만 70~80년대 음악다방하면 많은 사람들이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요. 장발에 머플러를 두른 모습 등을 말이죠. 지금 장민욱 씨를 보니까 청자켓, 청모자를 쓰고 파마머리 장발이신데 멋지시네요.
저도 그렇고 음악다방을 찾는 많은 분들이 그 시절의 패션을 고수해 달라고 주문을 하시니까요.
▶ 현재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올해 52살입니다.
▶ 음악과 함께여서 그런지 젊어보이시는데요. 지금은 어디서 DJ를 하고 계신가요?
낮에는 안양유원지에 있는 음악카페에서 DJ를 하고 있고 밤에는 인천 계산동에서 DJ를 진행하고 있어요. 하루, 두 곳에서 8시간 진행을 하고 있죠.[BestNocut_R]
▶ 손님들은 많이 오시나요?
7080 세대, 40~50대 분들이 오셔서 아주 좋아하세요. 신청메모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신청곡과 사연을 쓰시는데 마음은 그 시절 그대로에요. 20대 전후로 들었던 음악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것 같아요. 이분들이 오셔서 신청하는 연도는 70년대~80년대거든요.가끔 젊은 사람들이 오기는 하는데, 와도 일단 음악이 안 맞고 앉아 계신 분들이 삼촌 같고, 누나 같고 아버지 같으니까 자리를 피해요. 옛날음악에 관심이 있다거나 대학의 학보사에서 취재하러 오는 경우 이외에는 왔다가 여긴 아니다 싶으니까 그냥 발길을 돌려요. 뮤직 박스에 앉아 있는 제 모습도 이질감을 느끼는지 잠깐 앉아서 둘러보고 나가더라고요.
▶ 오시는 손님들은 주로 어떤 음악들을 많이 신청하나요?
가요로 이야기하자면 70년대 중반의 ''''어니언스'''', ''''김정호 씨'''', 그리고 팝은 ''''이글스의 호텔캘리포니아'''', ''''폴 앵카의 파파'''' 등 다 그 시절 노래에요.
▶ 제일 연세가 많으신 손님은 어떤 분이세요?
인천 계산동의 78살이신 분, 백발이 성성하신 남자분인데 저한테 차 한 잔 건네주시면서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미국에 이민 갔다가 돌아오신 분이신데 옛날 종로, 명동 음악다방 많이 다니셨는데 큰마음 먹고 찾아오셨더라고요.
▶ 현재는 장민욱 씨 말고 음악다방 DJ가 또 있나요?
다운타운가에 선배들은 없고 후배들이 4~5명 정도 있어요. 서울 장안에 LP음악으로 진행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고 음악다방 역시 그렇고요. 그래서 외로워요. 옛날에는 동료들이 많아서 바로 하나 건너가면 음악다방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망망대해에 홀로 항해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 재산목록 1호, 보관된 LP만 10만 장
▶ LP판은 많이 소장하고 계신가요?
개인적으로는 10여 만 장이 있고 음악다방인 안양유원지에 2만장, 인천 계산동에 3만 5천장이 있어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서재를 따로 꾸미듯이 LP음반만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어요. 다행히 음악다방이 많이 없어질 때 그때 수거를 좀 했죠.(웃음)
▶ 10만 장이 어떤 건지 다 아세요?
거의 제 손을 거쳐서 꽂혀 있기 때문에 다 알아요.
▶ 보관하기가 쉽지 않으시겠어요.
쉽지 않죠. 이사를 간다든지, 특히 여름철에 비가 오면 난로 틀어줘야지, 겨울에 날씨 추워지면 선풍기 틀어줘야지 애로가 많아요.
▶ 요즘에도 신청곡을 쪽지로 한다고 했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혼자 소문 듣고 왔다가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옛날 추억이 생각나거든요. 그러면 바로 부인한테 휴대폰으로 전화해서 이리로 오라고, 우리 연애시절 생각나서 안 되겠다고. 당신이 좋아하는 곡이 나온다고 불러내서 20~30년 전의 정취와 분위기를 다시 느끼는 거죠. 또 친구들도 부르고요. 아무래도 남자는 직장생활로 바쁘니까 상대적으로 여성분이 많으세요. 제가 실제로 멘트할 때는 여자 분들이 모임 겸 옛날 음악도 들을 겸 삼삼오오 많이들 오세요. 20~30년 전의 잃어버렸던 그 소중한 추억을 다시 되돌려줘서 너무 고맙다, 늘 건강하고 이 자리를 지켜달라는 그런 사연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힘이 되죠.
▶ 제가 손님인데 앨비스 프레슬리의 곡을 신청한다고 가정하고 멘트를 해 주시겠어요?
''''바깥날씨와 어울리는 화창한 봄날의 오후에 너무 잘 어울리는 핑크색 원피스를 입은 고객님께서 근사한 사연 주셨네요. ''''장민욱 씨, 저 어릴 때 듣던 앨비스 프레슬리의 「러브미 텐더」를 부탁드립니다.'''' 아직도 마음은 소녀시네요. 제가 오늘 근사한 핑크빛에 어울리는 앨비스 프레슬리의 「러브미 텐더」 준비해 드릴게요.''''
◇ 스토커부터 순애보 팬까지, 화려한 전성시대
▶ 옛날에 다니시던 음악 홀은 어딘지 생각이 나세요?
영등포 출신이니까 영등포의 꽃샘다방, 제일 흔한 약속다방, 종점다방, 신촌의 빌보드, 파리다방, 명동 꽃다방, 종로의 양지다방, 앨파소 등 다 기억이 나요. 청취자들도 들으시면 아실 거예요. 신촌의 복지다방, 독수리다방 저의 역사죠. 그때는 음악을 막 시작할 때니까 어느 다방에 어떤 DJ가 어떻게 하는지 손님으로 가장해서 오프닝 멘트 등을 잘 봤다가 활용하기도 했어요.
▶ DJ가 앉아있으면 눈치 챌 것 같은데요.
아는 경우가 많아요. 신청하는 것만 봐도 알고 또 외모도 그렇고 느낌이 벌써 다르죠. 음악다방에 들어오면 일반 사람들보다는 여유 있게 앉아서 언더그라운드 음악 즉,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을 신청하는 걸 보면 음악 좀 듣는 사람이거나 DJ를 하는 사람이라는 게 감이 오거든요.
▶ 지금은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한때는 대단한 인기를 누렸는데, 그때의 열성 팬들을 잠시 소개해 주시겠어요?
제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이 76년 4월이니까 19살 정도 되겠네요. 그때는 아무 것도 모르고 했다가 80년대 들어서 실력이 붙고 틀이 잡히니까 소위 팬들이 생기더라고요. 그중에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실습 나왔던 학생이 있었는데, 대학노트 5권에다 절절하게 사연을 적었어요. 시나 에세이, 좋아하는 음악리스트를 적어서 녹음을 해 달라고 부탁을 한다든지 낭송을 해 달라며 음악다방에 와서 열심히 넣어주곤 했어요. 당시에는 스토커라는 개념이 없었는데 제가 다니는 음악다방마다 안 나타나는 곳이 없었어요. 좋은 쪽으로 애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거예요.
그때는 음악다방 DJ들이 외부에서 온 손님 전화를 바로 받았거든요. ''''감사합니다. 약속다방입니다.'''' ''''거기 홍길동씨 좀 바꿔주세요.'''' 그러면 바로 음악이 흘러나오는 중에 멘트를 넣어서 ''''좌석 중에 홍길동씨 계시면 카운터에 전화 와 있습니다.'''' 했거든요.그렇게 직접 전화가 되니까 가는 곳마다 전화해서 진행에 방해가 될 뿐더러 외부 손님들이 약속다방은 왜 매일 통화중이냐고 항의를 해서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그런데 다행히 구세주가 나타났어요. 저를 힘들게 했던 그 여자 분이 다른 DJ를 좋아하게 된 거예요. 제 반응이 아무래도 차갑고 소극적이니까 다른 친구한테 눈을 돌리더라고요. 반면에 순애보적인 소녀 팬들도 있죠.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주스나 비엔나커피 한잔을 넣어주는 팬들은 저희가 오히려 궁금해 하죠.
장민욱
◇ 대중가수 홍보대상 ''''0순위''''는 음악다방 DJ
▶ 음악다방이 대중가수의 성공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불과 20년 전만해도 가수들의 음반이 나오잖아요. 음악다방 뮤직 박스로 일하는 매니저나 관계자들이 와서 자기들이 밀어줬으면 하는 곡에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PR음반이라는 것을 주고 가요. 가끔 전화로 DJ들을 불러내서 식사대접하고 잘 부탁한다고 하기도 하고요.저 같은 경우는 노량진 학원가에 공부하는 젊은 학생들이 많잖아요. 그때는 장민욱 사단이라고 해서 우리 후배들이 아니면 근무하기 어려울 만큼 지역세가 있어서 음반을 갖고 오면 10장~20장을 갖고 와요. 그러면 후배들에게 나눠주면서 우리가 몇 월 며칠에 동시에 한번 틀어보자고 밀어준 적도 있어요. 이재민 씨의 골목길이라는 노래가 히트할 때 같은 DJ출신 가수인''''김종환 씨의 ''''전화해요''''라는 곡을 밀어본 적도 있고 호랑나비를 부른 김흥국 씨의 노래 ''''정아''''를 밀어준 적도 있었어요. 음악다방의 대표적인 히트곡이 윤시내 씨의 ''''열애'''' 인데 그 곡을 쓰신 분이 부산의 유명한 DJ셨고, 패티김 씨의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그리고 조용필씨의 처녀 히트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부산 음악다방부터 뜨기 시작한 거죠. 그때는 DJ연합회 이런 단체도 있었으니까 위세가 대단했어요. 음악다방에서 신청한 곡을 틀어주고 그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방송국으로 엽서신청을 보내겠죠. 방송국에서는 자꾸 엽서가 오니까 무슨 노래인지 선곡하다 보면 히트곡이 되는 거죠.
▶ 음악다방에 가수들도 많이 왔겠어요.
많이 왔어요. 잊어버릴 만하면 와서 차 한 잔 대접하고 음반 좀 밀어달라고 농담도 하면서 자꾸 얼굴 비추면 그 음반에 손이 한 번 더 가죠. 멘트도 아주 매끄럽게 가요. 근래에 들어서 아주 가창력 있는 가수 한 분을 소개한다고 한껏 치켜세워줘요. 우리는 방송이 다이렉트이기 때문에 뮤직 박스 바깥의 반응이 바로 와요. DJ가 선곡한 음악이 괜찮은지 아닌지 반응이 바로 옵니다. 이 곡이 될지 안 될지 대강 짐작을 해요.
▶ 가수가 왔을 때 멘트를 시켜볼 수도 있나요?
그게 바로 디스크 콘서트에요. 가수가 직접 노래하고 인사하는 거죠. 배따라기 은지 씨가 음악 홍보하러 음악다방에 많이 왔었어요. 요즘 음악방송 PD가 하는 일을 그 당시 DJ들이 다 한 거죠. 그때는 영등포만 해도 음악다방이 50군데 되니까 포스터 100장 붙여놓고 어느 날짜에 가수 누가 와서 콘서트를 한다고 하면 손님들이 많이 오니까 자기 신곡발표를 하는 거예요.
▶ 신청곡을 받을 때 스펠링이 틀리거나 어떤 음악인지 구분이 어려워서 음반 찾기 어려웠던 적은 없었나요?
그런 경우가 아주 허다하죠. 문장이 긴 팝송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노래제목이 알쏭달쏭한 경우도 있고 또 동명의 곡들이 있잖아요. ''''스콜피온스의 헐리데이''''인지 ''''마돈나의 헐리데이''''인지 잘 모르는 경우에는 물어봐요. 물어보지 않는 경우는 80년대 중반이니까 ''''스콜피온스의 헐리데이''''를 원하시겠구나 하고 DJ가 센스 있게 선곡을 해서 올려놓죠. 제목은 아는데 노래를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스모키의 대표곡, 폴 앵카의 대표곡 등으로 선곡해 놓아요.
▶ 스펠링이 틀려도, 누구의 대표곡인지 이야기만 해도 알 수 있으려면 정말 음악을 많이 알아야겠네요.
다운타운 DJ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유는 원 맨 프로그램이라서 서브 맨이 없어요. PD, 작가, 엔지니어 도움 하나 없이 진행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어떤 곡을 신청할지도 모르고요.
▶ 긴 음악을 틀어놓고 뭘 하세요?
나가서 식사를 하거나 아는 분이 왔을 때 이야기를 합니다.
▶ 뮤직 박스에 앉아계신 시간이 많은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DJ는 앉아서 일을 하기 때문에 체력조절이 필수에요. 저의 경우는 아침마다 운동을 나가요. 담배는 피우지 않고 뮤직 박스 안에서 커피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생과일주스를 먹어요. 그럼 저는 건강 챙겨서 좋고 음악다방은 매상 올려서 서로 좋은 거죠.(웃음)
◇ 뜨거운 안녕...34년 음악다방 DJ의 탄생
▶ 어릴 때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봄 소풍을 가서 ''''뜨거운 안녕''''이란 노래를 했어요. 다음 날 학교에 가서 선생님께 유행가를 부른다고 혼나기는 했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애들이 저보고 가수할 거라고 했어요. 소풍을 가거나 오락시간에 매번 제가 노래를 했거든요.
▶ 어릴 때 유행가 부르면 어른들한테 야단맞던 시절이잖아요.
내가 생각해도 참 노래를 잘 했는데 그때 선생님이 야단만 안치시고 열심히 해 봐라 했으면 힘을 얻어서 아마도 가수가 됐을 거예요. 그런데 어릴 때 싹이 밟히니까 그 이후로는 하는 것보다는 듣는 쪽으로 바뀌어서 팝송을 많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생이 되었는데 음악다방이 있는 거예요.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원하면 들을 수 있는 음악이잖아요. 음악다방을 출입하다 보니까 뮤직 박스에 앉아있는 남자가 같은 남자인 내가 봐도 너무 멋있는 거예요. 선망이 대상이 되었죠.
▶ 고등학생이니까 음악다방은 출입 못하게 하잖아요.
종업원들이 학생이니까 나가라고 하면 선배님 뵈러 왔다고 하면서 봐달라고 했어요. 졸업반이 되면 머리가 좀 길어지잖아요. 관심은 뮤직 박스에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서 집에 와서 연습해요. 야외전축이라고 해서 스피커가 두 개 달린 게 있는데 거기다가 백판(해적판 LP) 올려놓고 연습을 나름대로 많이 했죠.
▶ 고향은 어디세요?
서울 구로동에서 태어났어요. 어머니는 종로분이시고 아버지는 수원분이세요. (웃음)
▶ 음악다방에 가고 음악만 들으면 부모님께 야단맞았을 것 같은데요.
아버님이 4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직장을 다니시니까 제 일과를 잘 모르시죠.
▶ 형제는 어떻게 되세요?
2남 3녀에요. 누님 두 분, 형님 한 분, 저, 여동생. 이렇게 5남매를 어머니가 혼자 키우신 거죠. 그래도 우리 학교 다닐 때 이복형님이 국가유공자라서 육성회비가 면제였어요. 공부도 착실히 하고 장학금도 받아가면서 음악을 들었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는 없었어요.
◇ 다운타운 DJ는 개그계의 선두마차
▶ 고등학교 졸업하고 DJ를 하신 건가요?
졸업반 때 뮤직 박스에 들어갔어요. 그때는 돈에 대한 개념이나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이 길로 열심히 하다 보면 출세할 거고 그러다 보면 돈이라는 건 자연히 따라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중파 방송 DJ를 업타운 DJ라고 하잖아요. 학벌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크고 작은 방송에 진출할 기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 처음 뮤직 박스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되신 거예요?
DJ들도 가끔 펑크를 낼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주인이 음악 좀 아는 것 같으니 올라가 봐라 하면 서툴지만 눈에 익은 판을 빼다가 음악을 트는 거예요. 그때는 대리로 들어가서 데뷔를 하는 게 일반적이었죠.
▶ 떨려서 신청쪽지는 눈에도 안 들어왔을 것 같아요.
그건 엄두도 못 내요. 멘트할 겨를도 없고 신청 곡 같은 게 어디 있어요. 내가 아는 것만 하기도 바쁜데요. 또한 뮤직 박스 DJ가 1년 정도 멘트를 안 시킬 뿐더러 하지도 못해요. 왜냐하면 신청곡이 들어와서 멘트를 하려면 판이 다 끝나잖아요. 멘트 하느라고 판을 못 바꾸면 바깥에서 문 두드리고 난리가 아니에요. 손님, 직원 할 것 없이 음악 끝났는데 뭐 하는 거냐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식은땀이 나요.
▶ 실수한 적은 없으세요?
실수 많이 해요. 제일 흔한 경우는 초보자 때 진행 중인데 전화가 와요. 받아야 하는데 바쁘니까 전화 벨소리만 마이크 채널로 계속 나가는 거예요. 그나마 이런 건 괜찮아요. 정말 결정적인 실수는 이제 조금 여유가 생기니까 마이크 채널 볼륨을 열어놓고 안 닫은 거예요. 그러고 나서 뮤직 박스 안에서 혼자 떠드는데 그게 생중계로 다 나가는 거죠. 그러면 카운터에서 정신 차리라고 혼나고 얼굴 빨개진 적도 있었어요.
▶ 옛날에는 DJ들이 영어로 이야기할 때 혀를 굴리잖아요.
개그, 시사, 정석 등 다운타운 DJ에는 몇 개의 부류가 있는데, 머리 기르고 머플러하고 도끼빗 꽂은 DJ는 대부분 개그 DJ에요. 그 사람 시간은 무조건 재미있는 시간이죠. 고 김형곤 씨도 영등포에서 유명한 개그 DJ였어요. 현역 개그맨 중에서 과거 음악다방에서 개그 DJ를 하셨던 분들 많이 계세요. 그리고 신문 보고 체크해서 그걸 중심으로 하는 시사 DJ, 시종일관 음악만 하는 정석 DJ, 모든 걸 합쳐서 하는 걸 상황 DJ라고 해요. 저는 처음에는 정석 DJ를 했는데 차츰 상황 DJ가 됐어요.
▶ 늘 공부를 하셔야 할 것 같은데 음악 공부는 따로 하셨나요?
FM방송을 듣거나 당시에는 월간팝송 같은 유명한 음악잡지가 있어서 매월 정기 구독했고 스포츠신문 2~3종류, 일간신문 등을 섭렵해서 노트에 죽 적습니다. 한때는 음악을 안 하려고 다 버린 적도 있었는데 다시 정리해서 지금 갖고 있는 노트는 대 여섯 권정도 됩니다.
◇ 질긴 가난을 견뎌 준 아내에게 한 없이 고마워
▶ 왜 음악을 안 하려고 하셨어요?
결혼하고 나서 아이 하나를 낳았을 무렵에 너무 힘들었거든요. 제가 ''''DJ 아카데미''''라고 해서 DJ 학원도 했었어요. 92년도에 DJ백과 1권과 2권을 학원 교재로 쓰려고 냈는데 이미 사양길이라서 음악다방이 없어질 때라, 책을 냈다가 망해서 내 한계는 여기까지인가 보다 하고 모든 자료를 다 고물상에 줘 버렸어요. 이후에 병원 사무직으로 8개월 근무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거죠.
▶ 부인은 어떻게 만나셨어요?
제가 나나무스쿠리의 긴 생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처녀 때 긴 생머리였어요. 뒷모습에 반해서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시큰둥하더라고요. DJ가 저녁때부터 시작하니까 저는 출근길이고 아내는 퇴근길이잖아요. 그래서 자주 부딪쳤는데 음악다방의 DJ를 하고 있으니 시간 날 때 한 번 오시라고 세 번인가 네 번을 이야기했더니 왔더라고요.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5년 정도 만났는데 만난 회수는 15번 정도밖에 안돼요. 왜냐하면 당시에 저는 결혼해야겠다는 생각도 별로 없었고 팬들도 많으니까 여자가 주변에 많으니까 아쉽지가 않았던 거죠. 그런데 어머니가 제가 혼자 지내는 게 마음에 걸리셨는지 장가가는 걸 보면 원이 없겠다고 하시고 주변 친구들도 결혼하는 걸 보니까 영향을 받더라고요. 그래서 불러다가 우리 결혼하자고 했죠.
▶ 음악다방이 사양길이었을 텐데 처가에서 반대는 안 했나요?
처갓집이 가톨릭 집안이고 굉장히 말씀이 없는 집안이에요. 그러니까 저 같은 딴따라는 완전히 이해를 못하시는 거죠. 하지만 아내 역시 아버님이 어릴 때 돌아가시고 26살의 막내딸이 결혼하겠다고 하니까 반대를 안 하신 것 같아요. 그 뒤로 가난 때문에 아내를 고생시켰지만 묵묵히 견디어 준 아내에게 고맙고 또 그런 아내가 존경스러워요. DJ 학원 교재용으로 낸 책이 망하고 그 후에 무명가수를 키우려고 제작에도 손을 댔지만 돈만 들어가고 다 실패한 아픈 기억이 있어요.
▶ 자녀는 어떻게 되세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재수하고 있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 직접 가수를 하거나 공중파 방송의 진행을 하는 건 생각 안 해보셨나요?
이런 말씀드리기는 좀 그렇지만 선배들의 후배사랑이 그다지 따뜻하지는 않더라고요. 전문 DJ가 주변에 서성거리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요. 왜냐하면 다른 연예인들이 기용될수록 빛을 많이 보니까요. 저도 한편으로 이해는 합니다.
▶ 나이트클럽 DJ는 관심이 없으셨어요?
그런 쪽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주변의 동료들이 나이트클럽 DJ를 해서 돈을 많이 벌었지만 결국 유명무실해졌고 무엇보다 나 스스로가 나이트클럽 DJ는 안 하겠다는 고집이 있었어요.
▶ 요즘 어떤 사람들을 주로 만나세요? 뮤직 박스 안에 계시면 친구가 찾아오지 않는 한 만나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지금은 경조사가 있을 때 방송국의 선배님들을 뵙기도 하고 제가 있는 곳에 찾아오는 친구들이나 후배들도 거의 이쪽 업계에서 떠났기 때문에 하루하루가 외롭기도 합니다.
◇ 영원한 젊은 오빠, 2대에 걸친 DJ를 꿈꾸며
▶ 취미활동은 주로 어떤 걸 하세요?
일요일에 벼룩시장에 나가서 음반 수집을 합니다.
▶ 갖고 있는 음반 중에서 가장 아끼는 음반 혹은 희귀음반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그런 건 한 두 장이 아니에요. 신중현 씨나 한대수 씨의 초창기 앨범이라든지, 70년대 포크, 파퓰러 음악 같은 경우는 콜롬비아나 오래 된 레코드사에서 발행한 초반 등은 명반이고 아주 고가품이죠.
▶ 인생 가운데 혹시 후회스러운 순간이 있으신가요?
극과극인 것 같아요. 내가 음악을 좋아한 게 후회스럽죠. 왜냐하면 내가 만약 음악을 안했다면 공부를 굉장히 잘 했을 것 같애요. 아마 학자로 성공했을 것 같아요. 우리 주변 친구들도 참 공부 잘한다고 그랬어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을 좋아한 게 후회스럽지만 지금은 후회스럽지는 않아요. 아주 극대 극이죠.
▶ 어릴 때부터 DJ가 꿈은 아니셨는데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어릴 때는 몸도 약해서 공부를 진득하니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또 집안에서도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계셨고 공부 잘 한다는 소리도 주위에서 많이 들었거든요.
▶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미국에는 주크박스가 있고 일본에는 가라오케가 있잖아요. 대한민국에는 음악다방이 있어야죠. 이게 고유의 문화인데 제가 멘트하는 게 손님들이 거북하게 듣지 않을 정도까지는 해야죠. 내가 물려줄 게 LP밖에 없으니까 딸아이를 다운타운 DJ로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요즘은 딸도 음악다방에 와서 DJ 하는 거나 방송에 나와서 하는 걸 보고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다운타운 DJ가 누가 됐든 명맥을 유지할 필요가 있고 선배들, 후배들 다 떠났지만 제가 음반을 모으는 이유도 다운타운의 명맥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2대에 걸친 다운타운 DJ도 괜찮은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