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티벳에서의 7년''''의 실제 주인공인 오스트리아의 등반가 하인리히 하러가 향년 93세로 숨졌다.
8일 오스트리아 APA통신에 따르면 하러는 지난 5일 갑자기 중태에 빠져 고향 캐른텐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뒤 지난 7일 오전 6시 45분 숨졌다.
하러는 지난 1938년 스위스에 있는 아이거북벽을 등정하면서 등반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다.
그 뒤 티켓으로 가 히말라야등정을 하던 중 영국과 독일이 전쟁에 돌입하자 영국군의 포로가 됐다 다시 탈출해 티벳에서 떠돌며 달라이 라마와의 인연을 맺는다. 1953년에는 당시의 경험담을 ''''티벳에서의 7년''''이라는 책으로 펴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하러는 티벳에서 1944년부터 1951년까지 머물었는데 당시 어린 달라이 라마의 외교고문이자 스승으로 과학과 외국어를 가르쳤다. 1950년 중공군이 티벳을 침공하자 하러는 티벳의 수도 라사를 떠나 결국 고국 오스트리아로 돌아왔지만 평생 달라이 라마와의 우정을 유지했다.
그 동안 하러가 나치당원이자 철저한 인종주의자였다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1912년 7월 6일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하러는 21살이던 1933년 이미 나치당의 지하조직이던 SA에 가입해 오스트리아가 병합되기 전부터 히틀러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실에 대해 하러도 ''''젊은 시절의 치기였고 히틀러라는 인물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 하러는 이데올로기적 공황상태에 빠져 남들처럼 히틀러를 영웅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러가 친나치부역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 때 하러를 변호한 사람은 다름아닌 아돌프 아이히만등 나치전범을 추적하던 유태인 지몬 비젠탈이었다. 비젠탈은 ''''하러는 나치의 전쟁범죄에 참여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비젠탈의 발언으로 하러에 대한 나치부역 의혹은 사라졌고 프랑스의 영화감독 장 자크 아노는 하러의 인생을 영화로 만들었다. 하러는 전쟁 후 국제인권문제에 투신해 인권운동가로 활약했다.
오스트리아 총리인 볼프강 쉬셀은 ''''비록 숨졌지만 후세들은 계속 하러의 멋진 인생에 매료될 것''''이라며 등반가이자 모험가, 작가, 그리고 인권운동가라는 다양한 경력을 가진 이 탐험가의 마지막 원정을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