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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 장준환 감독 "우리 안의 괴물, 외면 말고 직시해야"



영화

    '화이' 장준환 감독 "우리 안의 괴물, 외면 말고 직시해야"

    [노컷 인터뷰] 김윤석 여진구 주연 '화이' 장준환 감독

    장준환 감독(노컷뉴스 이명진 기자)

     

    2003년 신하균과 백윤식이 주연한 영화 '지구를 지켜라'는 비록 7만 명도 안 되는 관객을 모으며 장렬하게 망했지만 이 영화를 연출한 장준환 감독(43)은 같은 해 개봉한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과 함께 충무로의 기대주로 손꼽혔다.

    대종상, 청룡상, 영평상, 대한민국영화대상 등 연말 시상식에서 신인감독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이 영화로 세계 일주를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해외영화제에 초청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차기작 두 세 편이 연거푸 엎어지면서 강산이 변할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김윤석 여진구가 주연한 영화 '화이'는 업계나 영화팬들 사이에서는 그런 장 감독이 10년 만에 복귀하는 영화로 큰 관심을 받았다. 게다가 그는 2006년 배우 문소리와 결혼, 대표적인 영화인 부부로 자리잡았다.

    9일 개봉한 화이는 개봉 첫날 36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청신호를 켰다. 요즘 잘 나가는 김윤석과 여진구 주연에 다섯 범죄자의 아버지를 둔 10대 소년 화이의 복수극이라는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감독 특유의 독특한 색깔과 묵직한 주제가 주는 영화적 쾌감 때문이리라. 

    특히 이 영화에서 화이는 가혹한 운명의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왕 등 그리스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화이는 다섯 범죄자의 리더이자 엄한 아버지인 석태(김윤석)의 강요로 살인을 하게 되고 가혹한 진실과 직면하면서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스릴 넘치는 복수극이자 성장담이다.

    장 감독은 최근 노컷뉴스와 만나 "그리스비극을 떠올리면서 작업했다"며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의 영원한 주제고 화두로서 화이가 선도 악도 아닌 신비한 존재, 신화적 존재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특히 이 영화는 시골풍경의 경기도 파주화훼단지에서 벌어지는 신화적인 이야기라는 점에서 감독으로서 재미있었다. 기타케이스에 총을 숨기고 다니는, 괴물도 천사도 아닌 이상한 아이의 탄생이랄까. 굉장히 지역적이면서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 10년만의 컴백작에 핫 스타, 김윤석과 여진구를 캐스팅했다.

    "운이 좋았다. 7만 명, 그것도 반올림해서 7만 밖에 안든 영화지만 제 데뷔작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여전히 업계나 관객들에게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비록 제가 더디고 엉뚱하나 허투로 만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으로 믿고 싶다."
     
    - 여진구가 괴물이라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다섯 아버지를 연기한 30-40대 배우들보다 더 묵직한 목소리를 지녔는데 큰 매력이 아닌가.  

    "여성들이 여진구의 목소리 얘기를 많이 한다. 목소리에서 정통적인 남성성을 느끼는 거 같아. 남자다운 친구다. 동시에 아직 애다. 사실 우리 영화는 인간의 깊은 곳, 예민한 곳을 건드려야 해서 진정성을 갖고 캐릭터와 부딪혀야 했는데 여진구는 아역 출신이고 주목을 받았는데도 연기에 임하는 태도가 굉장히 순수했다."
     
    - 김윤석은 너무 징글맞은 캐릭터라 처음에 거절했다는데 어떻게 설득했나?

    "처음에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만들었냐? 난 못할 거 같다, 다른 사람 없느냐'고 하셨는데, 할 줄 알았다. 감히 말씀드리면, 석태는 고난의 길을, 역경을 넘고 바닥에서 긁어내야 완성되는 캐릭터나 이런 캐릭터를 만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욕심을 낼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 김윤석 나이대의 다른 배우들도 있는데 김윤석이었던 이유는?

    "왠지 김윤석이 아빠, 리더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타짜'의 아귀나 '황해'의 면가 등 나쁜 놈의 정점을 찍는 강한 캐릭터를 기존에 했으나, 석태는 좀 더 복합적인 나쁜 놈이니까. 자기 자신의 화두를 갖고 스스로 파국점을 찍고, 그걸 지켜보는, 소용돌이치는 캐릭터라 이전 캐릭터와는 다르다고 봤다."
     
    - 아내 문소리와 인연 깊은 이창동 감독이 공동제작자다.

    "그 점이 영향을 끼친 것은 없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조명부를 했던 친구가 쓴 시나리오다. 그가 이 감독께 보여줬고, 이걸 누가 잘할까, 고민하다 제게 온 것이다."
     
     - 데뷔작과 달리 직접 쓴 시나리오가 아닌데 장준환 영화답게 완성됐다.

    "시나리오를 보고 욕심이 났다. 장르적으로 짜릿하고 강렬하고,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 많은데도 다 묶어놓으니까 독특한 느낌이 났다. 제가 한 것은 작가가 분위기나 설정으로 차용한 '괴물'을 전면에 배치한 것이다. 이걸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석태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 화이도 묻고, (화이의 생모인) 김선자도 묻는데, 그렇게 왜라는 질문에 집중했다. 영화의 주제나 메시지를 구체화했다."
     
    화이 포스터

     

    - 화이는 신을 믿는 생부 임형택(이경영)과 자신을 길러준, 그 반대편에 있는 석태란 두 아버지를 뒀다."

    "임형택은 괴물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다. 자신을 불구로 만든 사람을 원망하기보다 기도하는데, 그런 순수한 결정체라는 게 과연 인간다운 것인가. 석태는 그런 문제적 인간과 부딪히다 스스로 문제적 인간, 즉 괴물이 된 캐릭터다. 화이는 두 아버지를 넘어 선도 악도 아닌 신화적 존재가 되길 바랐다."
     
    -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될 수도 있는데, 화이가 그런 딜레마에 빠진다.

    "저는 우리 안에 다 괴물이 있다고 본다. 그 괴물이 저 심연 어딘가에서 고개를 내밀고 으르렁거린다고 본다. 그 괴물이 언제든지 에일리언처럼 우리를 뚫고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때문에 임형택처럼 괴물을 외면하고 없다고 할 게 아니라 한번쯤 괴물을 들여다봐야 우리가 더 멋지게 살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더 나은 삶의 토대가 아닌가."
     
    - 석태는 화이에게 괴물이 되길 강요하면서도 내면의 괴물을 물리치는 자기만의 방법을 알려준다. 화이에 대한 복잡한 부성애가 있다.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길 바란다는 점에서, 석태의 내면에는 굉장히 한국적인 아버지가 들어있다. 1970-80년대, 제 어릴 적 아버지들은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인 시절이라 남을 짓밟고 올라가야 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살았다. 화이를 기른 다섯 아버지를 보면 기분파 아빠도 있고, 살가운 아빠도 있는데, 기본적으로 한국사회에는 석태처럼 엄하고 권위적인 아버지가 많지 않나."
     
    - 화이가 유괴된 해가 1998년인데, 외환위기가 닥친 이 시기로 설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우연의 일치인데 당시 큰 혼란을 겪었던 불안한 시기여서 그런 시대적 느낌이 영화와 잘 어울렸다. 다섯 아빠가 막가파나 지존파처럼 실제로 우리가 봤던 괴물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런 정치사회적 요소는 좀 더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부수적인 요소로 활용된 것이다. 영화에서는 다 설명되지 않으나 다섯 아빠의 과거사 등 다 이야기로 만들었다. 그렇게 토대를 만들고 땅을 다져야 그 위에 좀 더 탄탄한 이야기, 멋진 집을 지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크고, 좀 더 근본적인 답을 찾고 싶은 열망이 느껴진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근본적으로 가면 존재에 대한 아이러니라고 할까. 화이가 석태에게 ‘아버지 왜 저를 길렀냐’고 묻는 등 "왜"라는 물음이 많다보니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는데, 중간에 영화를 포기해야하나 생각할 정도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그러다가 석태가 김선자에게 "나도 몰라, 위에 가서 물어봐"라는 대사를 쓰면서 마음의 부담을 덜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살지, 왜 이 세상에 나왔지 등 그런 질문에 대한 해답은 누구도 해줄 수 없는 동시에 누구나 얻을 수 있다.
     
    - 장준환의 작품 세계에 영향을 끼친 어릴 적 기억이나 사건들이 있다면

    "여러 가지 사건이 영향을 미쳤을 텐데, 우리 집이 기찻길 옆이었다. 다리가 있고, 개천이 흘렀는데, 어느 날 기찻길 옆에 어린아이가 치여서 쓰러져있던 끔찍한 광경. 처음으로 죽음을 느낀 충격적인 순간이었다. 동네 아저씨들이 개를 두들겨 잡던 소리와 그 개가 고통에 몸부림치던 기억도 있다. 무리 속에 주인이 있었는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주인에게 기어가던 모습이 생각난다. 두들겨 잡아야 더 맛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기르던 개를 그렇게 끔찍하게 죽이는 그런 순간 속에 괴물이 있는 게 아닌가."
     
    장 감독은 성의껏 질문에 답을 하다 "제 입으로 이야기를 다 해버리는 것은 우습고, 다 담을 수도 없는 느낌"이라며 관객들이 각자 영화를 다양한 층위로 받아들이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배우들의 연기를 즐기면서 시원하고 짜릿한 스릴러 액션영화로 보거나 만약 보물찾기를 좋아하는 분들은 숨겨놓은 다른 부분을 찾아보면 되는, 그런 다양한 층위의 영화로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지난 10년 동안 저 밑바닥까지 간 고통의 과정을 겪었고, 넘어섰다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런 시기를 겪으며 저 또한 변한 게 있다면 변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사람 때문에 상처받고 사람에게서 치유 받는다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은 지구를 지켜라 때와 비슷하지 않나. 기본적으로 화이는 지구를 지켜라와 크게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RELNEWS: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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