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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지워!"…난 슬프기보다는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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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복지

    "아이 지워!"…난 슬프기보다는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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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미혼모의 수기 "난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어"
    "내 인생은 끝이란 생각은 버리자"

     

    "힘들지 않으세요?" 루이를 혼자 낳고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어야 했던 말이다.

    루이를 낳고 3년여를 같이 지낸 지금, 돌아보면 힘든 기억보다는 행복한 기억이 더 많은데 사람들은 내가 ''미혼모''라는 이유로 조금 다른 질문을 한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이 규정한 ''정상''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 예전과 똑같은데 미혼모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편견을 마주할 때면 ''자유''를 빼앗긴 듯 답답한 느낌마저 든다.

    ◇ "슬프기보다는 화가 났다"

    3년 전 여름, 처음 아이가 생겼을 때 산부인과에 몇번 따라와 ''아버지'' 시늉을 하던 남자친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지우라고 요구했다.

    놀랍게도 슬프지 않았다. 다만 화가 났다.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화가 났고, 생명에 대한 책임을 쉽게 회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에 화가 났다.

    그래서 혼자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아뿔싸 그랬더니 ''편견''이라는 벽이 이곳저곳에서 쉴새없이 솟아올랐다.

    "수술 시 자리를 지킬 보호자가 없다"고 말하자 산부인과 담당 의사는 "없으면 안된다"며 차디찬 시선을 보냈다. 의료진의 눈빛에서 ''왜 이 사람이 우리 병원에 왔지?''라는 당혹스러움마저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산모들과 똑같은 진료비를 내고 있었지만 "아이 아빠가 없다"고 말하는 순간 순식간에 없던 ''꼬리표''가 달렸다. 엄마 집에 방문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이 "넌 불효를 했다"며 수군거리는 통에 아예 발길을 끊게 됐다.

    힘든 마음에 ''생명의 전화''에 전화를 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살은 꿈도 안 꿨다. 단지 누군가 내 얘기를 좀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 ''선천성 거대 결장'' 질병 갖고 태어난 루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가족이 되어 줄 루이가 태어나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막막했다. 루이에게서 ''선천적 거대결장''이라는 질병이 발견된 것이다.

    루이는 대장 전체와 소장 일부에 신경세포가 없어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이 병을 앓는 사람들 중에서도 상위 10%에 들 정도로 심한 편이라고 한다.

    태어난지 4개월쯤 지났을 때 루이는 대장을 모두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까맣게 변색된 채 부풀어오른 배와 테이프로 눈을 가린 루이의 얼굴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루이는 지금도 변을 조금씩 지리고 장염을 자주 앓는다.

    나를 비롯한 미혼모들은 아이를 키우면서 누구에게나 닥치는 일들을 오롯이 홀로 힘들게 해결해야 한다.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는 가족과도 단절되고 남편도 없어 스스로 고립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를 낳고 하루 지나 온몸을 꽁꽁 싸매고 동사무소에 가서 필요한 서류 절차를 밟았고, 산후조리는커녕 루이를 낳고 한달도 안돼 직장에 나갔다.

    아이를 낳고 난뒤 초반에는 일주일에 하루만 일을 나갈 수 밖에 없었다. 내 수중에는 한달에 고작 30만원이 떨어졌다. 병원비에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했다. 어쩔 수 없이 친구와 엄마 집에서 ''남의 집 살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보육시설에서 잘 맡아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자주 아픈 아이다 보니 일에도 전념하기 힘들었다.

    학원 파트타임 강사인 나는 얼마 전에도 루이가 장염이 심하게 걸려 4일동안 학원에 나가지 못했다. 아이를 봐주시는 분이 예고없이 나오지 않아 꼼짝없이 결근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2~3년 새 다니던 직장을 4번이나 옮겨야 했다.

    ◇ "루이를 만나기 전의 삶은 이후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준비"


    나는 나와 같은 미혼모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자신들이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자신을 너무 낮추거나 "내 인생은 이제 끝이야"라고 단정짓지 않았으면 좋겠다.

    [BestNocut_R]나는 엄마가 되고 나서 많이 성장했다. 루이는 나의 가족이자 절대 실패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고, 건강하게 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지는 기특한 존재다.

    아이를 낳고 나서 여느 기혼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부모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 같다. 어쩌면 루이를 만나기 전의 삶은 지금부터의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이제 세상을 향한 조그만 소망이 있다면 편견의 시선을 좀 거둬줬으면 좋겠다는 것 뿐이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라도 행복을 찾을 권리는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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