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의 보급으로 심리 상담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국민의 44%가 AI를 경험하고, 40%가 AI 상담 의향이 있다는 조사 결과는 정신건강 영역에서도 기술의 수용도가 이미 임계점을 넘었음을 시사한다.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경준 대표원장은 CBS 경제연구실 <의사결정>에 출연해 "AI는 더 이상 부정하거나 저항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병원 방문의 기준을 정하는 강력한 '동료'로서 AI를 적극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표준적 조언은 탁월, 그러나 '디테일'과 '동기부여'의 한계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경준 원장 편 '의사결정' 유튜브 캡처
실제로 번아웃과 무기력증으로 AI에게 상담을 받은 30대 여성의 사례에서, AI는 '하루 1시간 차단 시간'과 같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이에 대해 "AI의 답변이 정신과에서 제시하는 표준적이고 적절한 방향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에너지 수준이 극도로 낮아진 환자에게 실천 가능한 수준의 활동을 단계별로 세분화하여 제안하는 '커스터마이징' 능력은 여전히 인간 진료의 영역임을 짚었다.
글로 정보를 전달하는 AI와 달리, 대면 진료는 비언어적 지지와 정서적 교감을 통해 강력한 동기를 부여하는 축이 존재한다. 이 원장은 "똑같은 조언이라도 치료자의 표정과 제스처, 진료실의 분위기를 통해 얻는 상호작용은 비언어적이면서도 강력한 실행 동력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즉, AI는 무엇을 해야 할지(What to do) 알려주는 데 탁월하지만, 실제로 움직이게 만드는(How to move) 정서적 지지력에서는 아직 보완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육아 스트레스와 지지체계, AI가 제안하는 '언어 모델'의 효용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경준 원장 편 '의사결정' 유튜브 캡처다음으로 독박 육아에 지친 30대 여성 상담 사례에서는 AI가 "도와주면 좋겠다 수준이 아니라 같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임을 단호하게 말하라"며 구체적인 화법을 조언했다. 이 원장은 1차 지지 구조인 남편의 역할이 아내의 우울증 예방에 가장 결정적인 요인임을 강조하며, AI의 단호한 조언에 동의를 표했다. 특히 상담 현장에서 본인의 언어 습관 때문에 적절한 도움 요청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AI가 제공하는 '구체적인 워딩'은 훌륭한 교본이 될 수 있다.
이 원장은 "부부관계에서 요구는 즉각적이고 심플할수록 좋다"며, AI를 언어 모델로 활용해 자신이 바로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문장을 생성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의 추가적인 활용법을 추천했다. 이는 병원에 직접 오기 힘든 육아 환경의 특성상, 일시적인 우울감과 고립감을 해소하고 지지체계를 재정비하는 데 있어 AI가 수행할 수 있는 최적의 순기능 중 하나로 꼽혔다.
고위험군 사례의 경고, "AI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시점"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경준 원장 편 '의사결정' 유튜브 캡처절망감과 자살을 암시하는 50대 남성의 상담 사례에서는 AI가 위험 물건을 치우고 긴급 상담 전화를 안내하는 등 적절한 응급 수칙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더 이상 바뀔 게 없다고 느끼는 '호플리스니스(Hopelessness)' 상태는 매우 위험한 리스크 신호"라며, AI가 즉각적인 안전 확보를 우선순위로 둔 점은 상담의 정석에 부합한다고 평가했다. 특히 1년 전 처방받은 약을 임의로 복용해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AI가 "권장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 역시 약물의 기전과 안전성을 고려할 때 비교적 정확한 가이드라인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이 원장은 AI의 답변이 정확하더라도, 고위험군 환자가 이를 '치료'의 수단으로 삼는 것에 대해서는 강한 우려를 표했다. 항우울제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수주가 걸릴뿐더러, AI의 조언은 정보가 부족할 경우 포괄적이고 모호한 수준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증 상태라면 AI를 통한 상담이나 관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 원장은 "그 순간만 잘 지나면 다시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분들이 많다"며, AI는 현재 자신의 위험도를 인지하고 병원이나 응급실로 향하게 만드는 '판단 도구'로만 제한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사와 AI의 공존, 경쟁이 아닌 '협력적 진료'의 시대
서울청정신건강의학과의원 이경준 원장 편 '의사결정' 유튜브 캡처이경준 원장은 AI를 경쟁 상대가 아닌 진료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협력 관계'로 규정했다. 실제로 이 원장의 최근 진료실에는 지난 기간의 감정 기록을 AI와 미리 정리해 요약본 형태로 지참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 정리는 기초 정보 파악에 소요되는 불필요한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의료진이 환자의 핵심적인 갈등에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는 진료 환경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실질적인 효용이 크다는 것이 이 원장의 설명이.
이 원장은 마지막 한 줄 처방전으로 "AI에 대해 저항하기보다 어떻게 잘 활용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대"라며, 괴로운 시기에 도움을 얻는 툴로 AI를 적극 활용하되,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의 시점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단계인지 확인하는 '풍성한 질문'을 던져볼 것을 권유했다. 결국 AI 시대의 정신건강 관리는 기술을 맹신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자신을 돌보기 위해 이를 얼마나 입체적으로 활용하느냐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