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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도 '탈북자' 인정했는데…엄마는 '불체자'로 세상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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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미국도 '탈북자' 인정했는데…엄마는 '불체자'로 세상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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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중국인 혈통으로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재북 화교'. 북한을 탈출해 자유와 번영을 찾아 남한으로 왔지만, 곧 '유령'이 되었다. '무국적자'로 판정돼 극심한 빈곤 속에 삶 전체를 부인 받고 있다. 잔반통을 뒤져 끼니를 때운 노숙인,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채 신분도 없이 세상을 떠난 엄마의 장례를 치른 무국적의 아들. 수십 년째 방치된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들의 이야기다.

    [유령이 된 탈북자들②]
    美 '그린카드' 받고 '탈북민' 인정받은 엄마
    韓서 '무국적자' 아들 위해 입국해 나섰지만
    국적 인정 못 받고 美난민 자격도 상실해
    2월 쓸쓸한 죽음…아들은 장례 위해 DNA검사
    "증명 가져오라"는 법무부 등 관계 기관들
    "소극적·행정편의주의적 행태" 지적

    재북 화교 2세 '무국적자' 전경수씨가 지난 3월 서울 중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고(故) 김옥만씨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이원석 기자재북 화교 2세 '무국적자' 전경수씨가 지난 3월 서울 중구의 한 장례식장에서 어머니 고(故) 김옥만씨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이원석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단독]20년 전 '처치곤란 유명인'은 잔반통 뒤지는 노숙인이 됐다
    ②미국도 '탈북자' 인정했는데…엄마는 '불체자'로 세상 등졌다

    (계속)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엄마는 영정사진 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있었다. 그 앞에 상주 완장을 차고 선 아들은 이제 홀로 남겨졌다. 한국 땅에 가족이라곤 오직 둘 뿐이었다.

    아들은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적어도 이젠 엄마가 이 땅에서 안 힘들어도 되니까, 천국에 국적 같은 건 없을 테니까요."

    탈북자인 엄마는 한국에서 '불법체류자'로 살다 세상을 등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신분이 없었다. 12년 전 엄마가 아들을 따라 한국에 들어올 땐 이런 결말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엄마가 오기 전 아들은 한국에서 '무국적자' 외톨이였다. 미국에서 '탈북자'로 인정받은 엄마가 오면 지긋지긋한 무국적자 신세도 끝일 것이라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변한 것은 없었다. 엄마가 이렇게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여전히 국적도 없이 혼자 남겨질 거라곤 아들은 정말 생각하지 못했다.

    지난 2월 어머니 고(故) 김옥만(향년 88세)씨를 떠나보낸 아들 전경수(51)씨의 이야기다. 경수씨는 국내에 들어와 '무국적자' 판정을 받은 재북 화교 2세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고 탈북 후 지난 2010년 한국에 들어왔지만 아버지가 중국인 혈통이란 이유로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탈북자 지원 단체 탈북난민인권연합에서 추산하는 국내 재북 화교 2·3세 무국적자는 30명 안팎이다.

    아들 전경수씨와 어머니 김옥만씨가 한국에서 함께 찍은 사진. 전경수씨 제공아들 전경수씨와 어머니 김옥만씨가 한국에서 함께 찍은 사진. 전경수씨 제공

    美발급 '그린카드'에 국적 '북한'

    경수씨 어머니 김옥만씨는 평양에서 태어난 북한 사람이다. 6·25 전쟁이 끝난 직후 복구 건설 참여로 중국에서 건너온 경수씨 아버지를 만나 결혼했다. 경수씨는 어머니에 대해 "평생을 가정과 자식을 위해 산 사람"이라고 회상했다.

    경수씨보다 뒤늦게 탈북한 어머니는 아들 경수씨를 따라 한국으로 오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러나 재외공관에선 남편이 화교라는 점에서 난색을 표하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결국 옥만씨는 미국행을 택했다. 미국에선 난민 자격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얘기 때문이었다. 

    옥만씨는 태국을 거쳐 미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조사를 받고 옥만씨는 난민 자격으로 미국 영주권을 취득했다. 당시 발급받은 옥만씨의 '그린카드'(영주권 카드)에는 그의 국적이 '북한'(NORTH KOREA)이라고 선명히 적혔다.

    옥만씨는 2014년 미국 정부로부터 일종의 여권 역할을 하는 난민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아 한국에 들어오게 됐다. 경수씨는 "평생 조선 사람이었고, 미국에서 탈북자로 인정받은 어머니가 한국에 들어오면 내 문제도 다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수씨는 어머니보다 4년 앞서 국내로 들어왔지만 탈북민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아버지가 재북 화교였다는 이유에서다. 어머니가 북한 사람이라는 점을 수차례 피력했지만 당시 조사 당국은 근거를 가져와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상황은 경수씨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옥만씨는 입국 직후 서울 동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고, 경찰은 옥만씨를 탈북자 관련 조사 기관에 넘기기로 했다. 그런데 경찰공무원들과 조사 기관으로 향했던 옥만씨는 곧바로 되돌아왔다. '기관에서 조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옥만씨에게 '국적판정' 신청을 하라고 안내했다고 한다. 국적판정은 대한민국 국적 보유 여부가 불분명할 때 법무부에 공식 판단을 구하는 절차다. 다른 탈북자들처럼 왜 국정원에서 조사하지 않는지 의아했지만, 미국에서 탈북자로 인정된 옥만씨는 국적판정에서 당연히 인정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모친 김옥만씨의 미국 영주권을 증명하는 '그린카드'엔 국적이 '북한'으로 표기돼 있다. 이원석 기자모친 김옥만씨의 미국 영주권을 증명하는 '그린카드'엔 국적이 '북한'으로 표기돼 있다. 이원석 기자
    간단한 절차라고 여겼던 결과는 금방 나오지 않았다. 무려 2년이란 시간이 흘러서야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다. 결과는 '불인정'.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두 모자의 삶은 헤어 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빠졌다.

    경수씨는 "미국에서 어머니를 탈북자로 인정한 것만큼이나 더 확실한 근거가 어딨겠나"라며 "2년을 기다렸는데 허무했다. 이 나라는 애초부터 엄마와 나를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더 큰 문제는 결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미국 영주권이 만료돼 만료됐고 어머니는 그사이 '불법체류자'가 된 것이었다. 국적판정 신청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모친의 체류증 발급 필요성 등과 관련해 출입국관리소에 문의했지만, '해외에 나갈 게 아니라면 그냥 기다리면 된다'고 설명했었다고 했다. "순진하게 그 말을 믿고 기다렸는데…". 한국 정부가 거부한 어머니는 미국에서의 난민 자격까지 모두 잃게 됐다.

    죽을 때까지 신분을 얻지 못한 어머니는 지난 2월 '무연고자'로 세상을 떠날 뻔했다. 국내에 옥만씨에 대해선 어떠한 기록도 없었기에 아들인 경수씨가 시신을 인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수씨는 DNA 검사를 받아서야 겨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일주일 만에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전경수씨는 모친의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전경수씨 제공전경수씨는 모친의 시신을 인수하기 위해 DNA 검사를 받아야 했다. 전경수씨 제공

    "입증책임 일방 전가 지나쳐"

    전문가들은 경수씨 모자가 겪은 일들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 문제의 핵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국적 관련 주무부처인 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소극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경수씨의 경우처럼 부모 중 한 명이라도 북한 국적자인 경우 자녀가 한국에 들어오면 논리적으론 해당 자녀는 한국 국적을 받을 수 있게 돼 있다. 헌법상 북한을 포함한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 영토로 보고, 북한 주민 역시 원칙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또 국적법상 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자면 그 자녀도 자동으로 한국 국적을 얻게 된다.

    실제 탈북자 여성이 해외에서 낳은 '제3국 출생 탈북자 자녀'들의 경우 한때 재북 화교 출신 탈북자들처럼 무국적자로 분류됐지만, 최근에는 이들에 대해선 부모가 탈북자란 사실이 증명될 경우 한국 국적을 부여하고 있다.

    문제는 '증명'이다. 법무부에선 무국적 탈북자들에게 서류 등의 명확한 '증명'을 요구하는데, 북한에서 탈출한 이들이 증명할 자료를 갖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수씨는 "한 공무원은 '문서가 없으면 산 사람도 죽은 사람'이라고 얘길하더라. 북한에서 나온 사람이 대체 문서가 어딨겠나"라고 했다. 급기야 경수씨 모친의 경우 미국에서 탈북자로 인정받은 상황에서도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국적이 인정되지 않았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장이 지난 2012년 통일정책연구에 낸 '무국적 탈북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대응 방안 모색' 연구. 이원석 기자이규창 통일연구원 인권연구실장이 지난 2012년 통일정책연구에 낸 '무국적 탈북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대응 방안 모색' 연구. 이원석 기자
    국무조정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이규창 현 인권연구실장은 지난 2012년 통일정책연구 제21권 1호에 '무국적 탈북자 보호를 위한 법제도적 대응 방안 모색'이란 주제의 연구를 통해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재북 화교 출신 등 무국적 탈북자 문제를 조명하며 여러 제도의 미비점을 지적했다.

    특히 그는 국적판정 제도의 개선 필요성을 주장하며 해외에 체류 중이던 무국적 탈북 아동에게 대사관에서 "엄마가 탈북자라는 것을 증명해라"고 요구했던 사례를 언급했다. 해당 아동의 모친은 강제 북송돼 처형된 상태였다.

    이 연구실장은 북한 호적 확인 등 직접적인 조사를 실시할 수 없는 현실 등을 들어 "입증책임을 탈북자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탈북자들에 대한 국적판정 제도와 일반적인 무국적자 대상 국적판정 제도를 이원화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취재진과 직접 만난 이 연구실장은 "법무부나 국정원 등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무국적 탈북자들에게 '당신들이 증명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며 "인권이라는 건 그 사람의 입장에서 더 헤아리는 것이기에 재북 화교 출신 무국적자 등에 대해 관계 기관들이 좀 더 전향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고 했다.

    법무부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 중"

    특히 재북 화교 2·3세 탈북자들의 경우 증명의 기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수씨에 따르면 그가 한국에 입국해 국정원 합동신문센터(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에서 조사를 받다가 자신의 아버지가 화교라는 점을 말하자 곧바로 분위기가 바뀌었고, 그는 곧 법무부 산하 출입국관리소로 옮겨졌다고 했다.

    CBS노컷뉴스가 접촉한 다른 재북 화교 2·3세 무국적자들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고 했다. 부모 중 한 명이 북한 사람이며 자신이 북한에서 태어난 자란 근거들을 대도 국정원이나 출입국관리소에선 '듣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옥만씨의 미국 난민 입국 승인 관련 문서. 전경수씨 제공김옥만씨의 미국 난민 입국 승인 관련 문서. 전경수씨 제공
    우광호 북한인권시민연합 국장은 "전경수씨와 그 모친 사례는 충분히 국적판정의 여지가 있었음에도 외면당하고 말았던 안타까운 사례"라며 "관계 기관들이 지금이라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나서야 하며 앞으로 유사 사례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재북 화교 출신 등 무국적자의 국적 판정에 대해 국적법 등 관련 법과 규칙에 의거해 판단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증명 요구'의 비현실성 등에 대한 지적엔 "귀화허가, 국적판정 등 국적심사시 필요한 서류를 규정하고 있으나, 서류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진술, 관계 기관의 사실조사·의견, 진술과 제출서류의 정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경수씨와 옥만씨에 대한 국적 판정 사유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선 "개인의 심사, 결정에 대한 사항은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상 개인정보에 해당해 답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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