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이미지 제공'띵동'
초인종 소리에 박한결씨(가명)는 일단 기척을 숨겼다.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이 경매로 넘어가 생긴 습관이다. 그는 화면 너머 보이는 중년 부부를 확인한 뒤에야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선 남성은 자신을 부산의 한 대학교의 이경수(가명) 교수라고 밝혔다. 그의 집주인이자 지도교수인 김모씨의 동료였다.
이교수는 김교수가 2억원이 넘는 빚을 지고 잠적했다고, 그가 소유한 여러 채의 부동산도 이미 몸값보다 높은 대출로 깡통이 된 상태라고 했다.
'다른 아파트를 처리해 전세금을 돌려주겠다더니….' 김교수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던 한결씨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딱 일주일만 옮겨줘"…교수 부부, 제자 상대로 전세사기 의혹
박한결씨 제공한결씨는 김교수와 지난 2018년 1억 7천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이사를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회사 대표인 김교수의 아내가 먼저 해운대구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할 것을 권했다. 이후 한결씨는 김교수의 아래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부부와 인연을 이어갔다.
2021년 11월 김교수 부부는 돌연 그에게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청했다. 딱 일주일만 주소를 옮겨 달라는 것이었다. 한결씨에 따르면 당시 부부는 전세 계약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설명했고, 위험성에 대해선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았다.
"지도교수님인 데다 회사의 대표님이라 믿었고,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면도 있었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은행에서 연락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야 확인한 등기는 어지러웠다. 그가 주소를 옮긴 사이 아파트에는 시세를 훌쩍 뛰어넘는 채권최고액 4억 3천만원 상당의 근저당권이 설정됐다. 2억원 상당의 근저당권이 설정됐다가 해지됐던 흔적, 건강보험료와 국세를 체납해 압류됐던 기록도 있었다.
이교수 제공"부부가 대출금을 갚지 않아 결국 집이 경매로 넘어갔습니다. 제가 전출신고를 했을 때 생긴 대출이라 대항력이 없더라고요. 설상가상으로 전세자금 대출 연장이 안 돼 빨리 해결을 좀 해달라고 부탁해도 '아파트도 사무실도 내놓았다', '내놓았는데 거래가 안 된다'란 말뿐이었습니다."
문제를 인지한 2022년부터 지금까지 한결씨는 겨우 1천만원을 돌려받았다. 전세자금 대출을 갚지 못한 탓에 아내는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됐다.
"믿었던 만큼 배신감이 크고, 경매가 끝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전세금을 얼른 돌려받고 전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2억 빚 지고도 "법대로 해" 뻔뻔…수상한 요양병원

"똑똑하신 교수님이 이딴 식으로 해요? (중략) 뭐가 아쉬워서 이러세요, 교수님이! 법대로 하면 되잖아요. 공증도 해놨으니까 법대로!"
이교수는 지난해 8월 김교수 부부가 이사로 이름을 올렸던 부산 소재의 D요양병원을 찾았다가 김교수의 아내 최모씨에게 모욕적인 말을 들었다. 최씨는 "김XX를 만나러 왔다"는 이교수의 말에 "김교수가 네 동생이느냐"며 되레 화를 내고, 여러 차례 삿대질을 했다.
이교수에 따르면, 김교수는 2021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2억 1천만원을 빌린 후 잠적했다. "자신이 요양병원에 지분이 있다더군요. '직원 퇴직금을 해결해야 한다', '건보공단에 자금을 상환해야 한다'며 돈을 빌려갔습니다."
D병원 이사장은 법인의 수익금을 개인 돈인 양 사용하고 다수의 근로자들의 임금과 퇴직금을 체불한 혐의로 지난해 구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법인 카드로 27회에 걸쳐 골프장을 이용하고, 여러 차례 해외여행 비용에도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24년 김교수가 잠적해 아파트 주차장에서 기다리는데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병원 이사장과 골프를 치러 가더군요. 금전소비대차 공정증서를 가지고 신용조사를 해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 이후에 법인을 만들고 국세를 체납하고…. 법인으로 재산을 이전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이교수는 김교수가 애초부터 변제 의사 없이 돈을 빌려 갔다며 '사기'라고 주장했다. "아내인 최씨가 경영컨설팅회사를 운영했는데 개인회생 전문가라고 합니다. 법대로 하자는데, 아파트 근저당권도 제가 4순위입니다. 이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입니다."
김교수는 제자를 상대로 전세자금을 미반환하고, 동료 교수에게 금전적 피해를 입혔지만 여전히 대학에 명예교수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학교 측은 사법기관의 수사 상황에 따라 해촉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논란과 관련해 최씨는 CBS노컷뉴스에 "전세 계약 문제는 나와 직원 사이 벌어진 일"이라며 "대출 이자의 일부를 지급했고 경매를 받을 수 있게 도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교수에게 빌려간 돈에 대해서는 "아파트와 땅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고 짧게 설명했다.
한편, 김교수는 이교수에게 금전을 빌린 뒤 잠적한 사건과 관련해 사기 혐의로 검찰에 넘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