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세를 내지 않기 위해 벽돌로 창문을 막은 건물들은 아직 영국 곳곳에 남아 있다. 'SEE Southampton' 페이스북 캡처1688년 영국의 윌리엄 3세는 명예혁명을 통해 장인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곧바로 프랑스와 9년 전쟁(1688-1697)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오랜 전쟁으로 경제는 악화되고 국가 재정은 바닥이 났다. 전쟁 비용 충당을 위해 새로운 세원 확보가 절실했던 그는 셈에 밝은 네덜란드 출신답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낸다. 바로 '창문세(Window Tax)'였다.
창문세는 창문 개수대로 세금을 내는 것이다. 창문이 많을수록 집이 크고 방이 많은 부자일 것이니 세금도 그만큼 더 걷겠다는 합리적인(?) 설계였다. 지금처럼 소득이나 재산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창문'을 과세 표준으로 삼아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한 것이다.
영국에는 사실 이전에도 '벽난로세(Hearth Tax)'라는 비슷한 개념의 세금이 있었다. 그런데 벽난로 수를 세려고 세금 징수원이 집안에 들어가면서 사생활을 침해라는 엄청난 반발에 부딪혔고 결국 폐지됐다. 외부에서 재산을 평가할 수 있는 창문을 과세 대상으로 삼은 이유이다.
하지만 창문세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영국인들은 벽난로세 부과 당시 세금을 피하려고 벽난로를 벽돌로 막았는데 이번에는 창문을 막아 버렸다. 햇빛이 들지 않고 환기가 안 되는 어두컴컴한 집에 살게 되자 시력이 나빠지고 결핵 환자가 급증하는 등 국민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다. 영국인들은 햇빛과 공기에 세금을 매기는 꼴이라며 정부를 "대낮의 강도(Daylight Robbery)"라고 비난했다. 이 표현은 아직도 '날강도짓'을 뜻하는 관용구로 쓰인다. 창문세는 50여 년 뒤 폐지됐다.
윌리엄 3세의 전쟁 상대였던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가벨(Gabelle)'을 전쟁 수행의 주요 재원으로 택했다. '담보'라는 뜻의 아랍어에서 온 가벨은 생존 필수품인 소금에 부과한 세금이다. 루이 14세는 가벨의 세율을 더 높이고 무조건 사야 하는 소금 의무 구매량을 늘렸다. 조세 저항을 피하려는 고뇌의 산물인 영국의 창문세‧벽난로세와는 다른 보법을 보인 '태양왕'에 걸맞는 절대군주의 위용(?)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고혈을 짜내던 가벨은 프랑스대혁명을 불러왔고 바로 폐지됐다.
이밖에도 17세기 러시아의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대제는 구시대의 유물인 긴 수염을 깎게 하기 위해 수염세(Beard Tax)를 내게 했다. 18세기 영국은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식민지 미국에 수출하는 홍차에 대한 조례(Tea Act)를 제정해 차세를 부과했다. 가장 최근인 2011년에는 덴마크가 버터, 우유, 치즈, 육류 등 포화지방 함유 식품에 비만세(지방세, Fat Tax)를 세계 최초로 부과했다.
수염세는 러시아의 근대화에 도움이 됐지만 다른 세금들은 모두 좋지 않은 결말을 맞았다. 영국 정부의 차세는 '보스턴 차 사건'을 촉발시켜 미국 독립 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덴마크의 비만세는 제품 가격 인상에 따른 물가 상승, 해당 산업 위축, 일자리 감소, 인접국 원정 쇼핑 등의 부작용을 초래해 시행 1년여 만에 폐지됐다. 이 과정에서 1930년대부터 설탕세의 일종으로 탄산음료 등에 부과해온 '소다세(Soft Drink Tax)'까지 폐지되면서 설탕세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8일 엑스(X)에 게시한 설탕 부담금 도입 관련 글. X 캡처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에 국민 80.1%가 설탕세 도입에 찬성했다는 여론조사 기사를 공유하며 "담배처럼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사용을 억제"하고 "지역·공공 의료 강화에 재투자"하는 방안에 대한 국민의 의견을 물었다. 즉각 "국민 건강 보호, 만성 질환 예방, 의료비 지출 축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찬성론과 "물가 상승으로 소비자, 업체, 자영업자 모두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반대론이 맞서며 갑론을박이 일었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일반 재정에 사용되는 세금과 특정 용도를 위해 그 필요를 유발한 원인에 부과하는 부담금은 다르고, 시행 방침과 의견 조회는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또 "'설탕세 시행 비난'은 여론조작 가짜 뉴스"라고 정치적 쟁점화에 선을 그었다.
앞서 살펴본 사례에서 보듯 국가는 국가 경영을 위해 세금을 더 걷으려 하고 국민들은 한 푼이라도 덜 내고 싶어한다. 루이 14세 시절 조세 개혁을 주도했던 재무장관 장 바티스트 콜베르는 "징세는 거위가 비명을 덜 지르게 하면서 최대한 많은 깃털을 뽑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명을 줄이려고 간접세를 거뒀지만 지나친 소금세 강화는 결국 국민의 분노를 샀다.
영국 정부는 어찌 됐든 조세 저항을 피하려고 창문까지 동원했다. 우리 정부에게도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신중한 검토와 깊은 논의, 합리적이고 정교한 정책 설계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