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엠재활병원 우봉식 병원장. 임성민 기자"우리나라는 과거 해외의 도움으로 의료 체계를 세운 국가입니다. 이제는 그 은혜를 우크라이나에 흘려보내고 싶었습니다."
충북 청주 아이엠재활병원 우봉식 병원장이 전쟁으로 무너진 우크라이나 의료 현장을 돕기 위해 현지 의료진 연수를 결정한 이유다.
지난해 8월 우 병원장은 UN 산하 NGO 단체인 굿프렌즈인터내셔널(Good Friends International)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2022년부터 이어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현지 재활 의료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놓여 있어 의료진 연수가 필요하다는 요청이었다.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었지만 우 병원장은 우리나라가 과거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의료 체계를 세워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우리가 6·25 전쟁 이후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 지금은 우리가 인류애와 연대로 응답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의료진들. 아이엠재활병원 제공그렇게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오데사주 재향군인병원 소속 의사와 작업치료사들이 한국에 도착했다.
연수 과정에서 의료진들이 전한 현지 상황은 전쟁이 의료 현장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일부 의료진은 연수 중에도 자택 인근이 폭격당한 영상을 전하며 현지의 긴박한 상황을 설명했다.
우 병원장은 "이들은 매일 폭격을 경험하는 지역에서 살고 있다"며 "몸은 한국에 와 있지만 마음은 전혀 편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회상했다.
우 병원장은 연수 교육을 통해 우크라이나 재활 의료의 구조적 한계를 분명히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는 재활의학과 전문의 수련 과정이 없다"며 "대학을 졸업한 뒤 재활 분야에서 2년 정도 종사하면 전문의가 되는 구조로, 우리나라처럼 체계적인 수련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특정 치료 기법 전수보다 재활의학 전반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것이 시급해 보였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 의료진들이 강의를 마친 뒤 서로 토론하고 있다. 임성민 기자연수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의료진들은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한국의 재활 프로그램을 익히는 데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를 보였다.
우 병원장은 의료진들이 전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재활 치료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가능성을 봤다.
우 병원장은 "의료진들은 재활 치료 전반에 대한 궁금증이 굉장히 많았다"며 "배우고자 하는 열의는 매우 컸지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을 기회가 그만큼 부족했다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 병원장은 재활 치료의 중요성도 거듭 강조했다.
우크라이나에는 10만 명에 가까운 절단·척수 손상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우 병원장의 설명이다.
우크라이나 의료진들이 아이엠재활병원 관계자로부터 의료 기기 설명을 듣고 있다. 임성민 기자
우 병원장은 "재활 치료를 통해 이들을 하루라도 빨리 사회로 복귀시키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매우 시급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재활의학은 전쟁과 함께 발전해 온 의학"이라며 "1·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도 재활 치료를 받지 못한 이들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전쟁이 끝난 뒤 같은 상황을 겪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우 병원장은 연수 종료 이후에도 줌 회의나 콘퍼런스를 통해 지속적인 협력을 이어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가능하다면 현지를 직접 찾아 환자들을 돕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는 "재활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치료"라며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의료"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는 이제 남의 도움을 받는 나라가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나라가 됐다"며 "그동안 축적해 온 지식과 임상 경험, 기술을 국제사회에 환원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