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민 기자노동자 과로사 은폐 의혹을 비롯해 각종 논란에 휩싸인 쿠팡이 자회사에서 발생한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 편에 섰던 것으로 확인됐다.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렸던 쿠팡 측이 이후 가해자가 제기한 불복소송 과정에서 가해자에게 유리한 진술을 내놓은 것. 결국 대법원에서 징계 취소가 확정됐고, 소송에 참가했던 피해자에게 남은 건 천만원 가량의 소송비용과 상처 뿐이었다.
정부의 '직내괴 인정'에 뒤늦은 징계 나선 쿠팡
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 8월 대법원 1부(주심 마용주 대법관)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노동자로 일하던 A씨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징계 취소 소송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A씨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징계를 취소한다'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21년 2월 자신과 함께 일하던 하위 직급 노동자 백정엽씨의 노조 활동에 대해 부적절한 발언을 해 징계를 받았다.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네이버 밴드(이하 '노조 밴드') 조끼는 언제 입을 거냐", "노조 밴드 활동을 하려면 모범을 보여야지", "너 총대 잘 멘다며", "노조를 하면 뭐라도 된 것 같냐".쿠팡 물류센터의 노동조합을 설립하기 위한 네이버 밴드에 게시글을 올리며 활동을 하던 백씨가 A씨로부터 들었다는 발언들이다.
백씨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보장받아 마땅한 권리인 '노조 할 권리'(단결권)를 침해 당했다는 생각에 회사(쿠팡)에 A씨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쿠팡은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백씨는 이후에도 A씨와 분리되지 못한 채 함께 일을 해야만 했다.
결국 백씨는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고, 반년 만에 나온 노동청의 판단은 쿠팡의 판단과 달랐다. 2021년 11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천북부지청은 "
A씨가 백씨에게 노조활동과 관련해 업무지적을 한 질책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쿠팡 측에 개선지도 이행(징계 및 경고 등)을 명령했다. 정부가 쿠팡 내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한 첫 사례였다.
쿠팡은 A씨에게 구두 경고를 하고 백씨와 분리 조치하는 등 개선지도에 따랐다. 경징계에 그쳤지만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라는 자체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쿠팡, '징계 불복소송' 제기한 가해자 편에 섰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A씨에 대한 징계에 나섰던 쿠팡의 태도는 A씨가 법원에 중노위를 상대로 징계 취소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뭇 달라졌다. 소송 과정에서 쿠팡 측이 증인으로 나서며, 피해자인 백씨가 아닌 가해자인 A씨에게 유리한 진술을 내놓은 것이다.
A씨 측이 신청한 증인인 쿠팡풀필먼트 노무 담당 직원은 소송 과정에서 "오히려 백씨의 근무해태나 그 근무해태로 인해서 다른 사원들에게 피해를 준 부분이 오히려 근로환경을 악화시켰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해당 직원은 "이미 노동청은 조사 전에 직장 내 괴롭힘으로 예단을 해 놓은 상황이었다"고 노동청의 판단을 부정하고, "(직장 내 괴롭힘) 허위 신고가 굉장히 많다. 현장 사원들이 (신고제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피해자인 백씨를 비난하는 취지로 진술했다.
가해자를 징계한 쿠팡 측이 징계 유지를 위해 소송에 보조참가(소송결과에 법률상 이해관계가 있는 제3자가 한쪽 당사자를 돕기 위해 소송에 참가하는 것) 하기는 커녕, 오히려 법정에서 가해자의 편에 선 것이다.
결국 1심 재판부는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징계 취소 판결을 내렸다. 이에 쿠팡 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법원의 판결을 존중한다"며 "노조의 일방적인 허위주장으로 가려졌던 중요한 진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뒤늦게 1심 결과를 알게된 백씨는 항소를 하지 않은 중노위 대신 항소를 제기하고, 징계 사유인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로서 2심에 보조참가인으로 직접 나섰다. 그러나 2심 재판부 또한 "A씨의 발언들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보기 어려워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고 해당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결국 백씨에게 남은 것은 약 천만 원의 소송 비용 청구서 뿐이었다. 백씨는 소송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원고(A씨)의 소송비용 약 1300만 원 중 약 880만 원을 부담하게 됐다.
징계의 주체인 쿠팡도, 항소를 포기한 중노위도 피해자를 보호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개인이 패소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금전 부담까지 고스란히 떠안게 된 셈이다.
백씨를 대리한 정병민 변호사는 "상식적인 사측이라면 자신이 내린 징계 처분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소송에 피고 보조참가를 하거나, 적어도 1심 판결에 대해 피해자에 유감을 표하는 게 맞았을 것"이라며 "쿠팡이 피해자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가해자 편에 선 사례"라고 밝혔다.
현재 쿠팡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비롯해 과로사 및 산업재해 은폐 의혹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인 상태다. 상설특검(안권섭 특별검사)이 쿠팡의 퇴직금 미지급 사건 불기소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가운데, 경찰 또한 쿠팡 수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쿠팡과 관련된 모든 의혹들을 수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