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 김윤상 2차관이 4월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중앙동에서 열린 '2025년 추가경정예산안 상세브리핑'에서 주요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정부가 총 12조 2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내놓고, 국회의 빠른 처리를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가 '벚꽂추경'의 발목을 잡으며 1분기 뒤로 추경 시점을 늦추는 바람에 자칫 조기 대선 국면에 밀려 실제 추경 예산이 하반기에야 집행될까 우려된다.
더욱이 정부가 추경 편성을 미룬 동안 경기 상황이 더욱 악화된 점을 감안하면 보다 적극적인 재정·산업정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정부는 2025년도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을 지난 18일 발표했다. 이번 추경안은 △재해·재난대응(3조 2천억 원) △통상 리스크 대응 및 AI 경쟁력 제고(4조 4천억 원) △민생 지원(4조 3천억 원) △기타(2천억 원)으로 구성됐다.
그간 정부는 '경기 진작'이 아닌 '산불 복구'를 추경의 간판으로 내세우며 10조 원 규모의 추경을 예고했다. 하지만 최근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몰고 온 관세 충격이 본격화되면서 추경 규모도 소폭 늘었고, 예산 비중도 통상·민생 분야가 더 많이 차지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결코 '경기 대응' 추경안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했다. 기재부 김윤상 2차관은 "간접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지만, 경기대응 목적이라면 소비와 투자로 사업 내용이 싹 바뀌어야 한다"며 "논의하기 위한 시간이 더 많이 걸리기 때문에 시급한 필수적인 항목 위주로 추경을 편성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번 추경은 그 어느 때보다도 타이밍이 중요하다"며 "우리 경제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도록 국회에서 추경안을 최대한 신속히 통과시켜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을 드린다"고 촉구했다.
앞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이번 '필수추경' 계획을 지난달 처음 소개하면서 "'필수 추경'은 무엇보다 빠른 속도"라며 국회 협조를 당부했다. 추경안이 국회에서 서둘러 통과되지 않으면 조기 대선 국면에 발이 묶여 집행이 늦어질 뿐 아니라, 자칫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될까 경계한 것으로 읽힌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월 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2025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제공하지만 '속도'를 강조하는 정부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애초 이번 추경은 태생부터 '뒷북 추경'이다.
12.3 내란 사태로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올해 예산안이 감액만 됐을 뿐, 증액 절차가 생략된 바람에 일찌감치 추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예산편성권을 쥔 기재부는 '기존 예산안의 신속 집행이 우선'이라며 추경에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최 부총리는 지난 1월 초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경제여건 전반을 1분기 중 재점검하고, 필요시 추가 경기 보강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추경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그 시점을 1분기 이후로 못박았다.
이후 추경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1월 21일 "추가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며 한발 물러섰지만, 열흘 뒤에는 "추가 재정투입에 대해서도 국정협의회를 열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수 있기를 요청드린다"며 사실상 책임을 국회로 돌렸다.
정부가 시간을 끌며 꽃을 피우지도 못한 '벚꽃 추경'이 지는 동안, 한국 경제는 빠르게 악화됐다. 한국은행은 지난 17일 "1분기 성장률(직전분기 대비)은 2월 전망치 0.2%를 밑돈 것으로 추정되며, 소폭의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해 1분기 '역성장' 가능성을 경고했다.
이미 국내외 주요 기관마다 올해 한국경제가 1% 내외의 저성장 터널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한은은 "주요 40여개 IB(해외 투자은행) 등 시장 참가자들의 한국 경제 성장률 전망치 중윗값은 1.4%, 하위 25%는 1.1%"라고 분석했다. 심지어 JP모건(0.7%), 캐피털 이코노믹스(0.9%)를 비롯한 일부 기관은 0%대 저성장까지 경고했다. 연초 정부는 1.8%, KDI(한국개발연구원) 1.6%, 한국은행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1.5%를 예상했지만, 관세 충격이 현실화되면서 날이 갈수록 전망을 하향조정하는 추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연합뉴스그럼에도 1분기가 훌쩍 지난 지금, 정부는 이번 추경안은 최 부총리가 말했던 '경기 보강 방안'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김 차관은 "1분기 이후 경기 대응 목적과 관련된 추가적인 경기 보강 방안을 할 건지 말 건지에 대해서는 경제 상황이나 여건 등을 감안해 필요하면 여러 가지 방안을 계속 시행할 계획"이라며 향후 정책 대응을 따로 내놓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야권은 극심한 내수 침체가 장기화된데다 통상 환경 변화로 수출 여건이 악화된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추경 규모를 확대해 더 적극적으로 경기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허영 의원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최소한 15조 원까지 증액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고, 같은 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한국은행 총재도 15조 원에서 20조 원가량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왜 이렇게 조심하는지 모르겠다"고 맞장구쳤다.
김 차관도 "국회에서 증액 요구가 있을 때 저희가 죽어도 안 된다고 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이라며 "규모가 문제가 아니고, (국회가) 요구하는 내용의 성질이 시급하게 처리하려는 추경의 목적과 부합하다면 아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하려고 한다"고 말해 추경 규모를 확대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윤창원 기자관건은 조기 대선과 추경 간의 역학 관계가 어떻게 조율되느냐에 달렸다. 정부가 다음 주 초 국회에 추경안을 제출해도 각 정당의 경선, 대선 국면에 맞물려 추경 논의에 속도가 붙기는 쉽지 않다. 특히 의석 과반을 점한 민주당이 증액 편성을 요구하고 있어 논의가 길어질 가능성도 높다.
다만 산불 피해 복구 등 추경안에 포함된 대다수 사업이 시급히 집행돼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대선 전에는 국회 논의가 마무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의 정책 코드에 맞춘 2차 추경이 사실상 불가피한 점을 고려하면, 이번 추경안 규모도 일정 수준에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우석진 교수는 "이번 1단계 추경은 권한대행 체제에서 진행하므로 당장 필요한 사업부터 하고, 새로운 정부가 2단계 추경을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각각 얼마씩 하느냐는 판단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만약 지난 1월에 추경 준비를 서둘렀다면 지금 규모도 괜찮았겠지만, 이제는 국회가 바로 추경안을 처리해도 5월 말이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뒤인 6월 중후반에야 실제 집행될 것"이라며 "그때는 더 경기가 악화됐을테니 12조 원 규모는 너무 적고, 처음 추경 얘기가 나왔던 시점 이후 통상·산불 문제 등이 발생한 점을 감안해 15조 원 이상 투입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남대학교 경제학과 정세은 교수도 "내수 부진 뿐 아니라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정책으로 전세계 경기가 나빠질 것이 확실시된 상황"이라며 "정부가 너무 추경 규모를 적게 잡아서 민주당도 15조 원만 말하지만, 이것도 충분치는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면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통합재정수지 상태를 보면 더 추경을 편성할 여력은 남아있고, 올 한 해 동안 20~25조 원 가량 추경 여유가 있다고 본다"면서도 "최근에는 온라인 등을 통해 해외에서 소비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추경으로 돈을 풀어도 소비가 늘어난다고 보기 어렵다. 추 경을 통해 경기를 살린다기보다 질적 성장을 준비하는 측면에서 투자를 촉진하고 고용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