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김동연(왼쪽 두 번째) 경기도지사가 성남의 한 기업을 방문해 '근무시간 단축' 제도 등에 관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경기도 제공"과거 노동집약적으로 근로시간을 길게 해 생산성을 높이던 시대는 끝났어요. 시대변화를 잘 읽어야 합니다."
7일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의 한 벤처기업을 찾았다. 5년 전 인공지능(AI) 분야 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브레인벤처스다.
이 회사는 설립 초기부터 노동시간을 주 30시간(하루 6시간)으로 단축하고 이틀은 재택근무로 운영함으로써,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와 효율성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지식 기반의 첨단산업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전국적인 기준인 주 52시간 근무제의 절반 수준으로 일하면서, 오히려 직원 연봉은 업계 평균보다 높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매출도 창립 이후 꾸준히 늘고(지난해 매출 25%↑) 있다. 이른바 '꿈의 직장'이다.
김동연호가 민선 8기 후반기 역점사업으로 추진해 온 '주 4.5일제'의 롤모델인 셈이다. 김 지사가 4.5일제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이유다.
김동연이 '노동시간 단축' 띄운 까닭…"시대변화 읽어야"
김동연 지사가 온라인 화상회의를 통해 재택근무 하는 직원들과 직접 대화하고 있는 모습. 경기도 제공 김 지사가 내세운 주 4.5일제는 '격주 주 4일제'와 '주 35시간제', '매주 금요일 반일근무' 가운데 하나를 노사합의로 선택해 노동시간을 대폭 줄이는 제도다. 근무 단축에 드는 비용은 공공이 지원한다.
먼저 도는 노동환경 개선을 통한 기업들의 우수 인재 확보를 도모하기 위해 주 4.5일제 시범사업 도입을 준비해 왔다. 다음달 도내 50여개 기업을 공모해 별도 임금 축소 없이 근무시간을 단축할 수 있도록 지원금 등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산업별 노동생산성 유지에 차질이 없도록 업무프로세스나 생산공정 등에 관한 전문 컨설팅 지원도 병행하겠다는 게 도의 전략이다.
이런 계획과 관련해 이날 김 지사는 브레인벤처스 김원회 대표를 비롯한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어 '노동시간 단축'이 경영 성과와 노동자 삶의 질 향상, 창의적 능률 등에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집중 논의했다.
간담회에서 김원회 대표는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게 (회사에 대한) 신뢰의 지표가 아니다. 오전 10시~오후 2시의 '코어타임'에 같이 모여 집중해서 일하면 된다"고 했고, 직원들 역시 "출퇴근과 업무 피로도가 줄어들어 결과적으로 퇴직율은 낮다"고 만족감에 대해 입을 모았다.
일부 직원은 "다른 회사에선 상상할 수 없던 제도다"라며 "여기 와서 결혼도 하게 됐다.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에 김동연 지사는 "생산요소라고 하면 노동, 자본, 땅을 말하는데 이제는 노동에서 양보다는 질이 중요해졌다"며 "노동의 질은, 애사심, 충성심, 통제가 아닌 동기부여 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경기도는 주 4.5일제와 유연근무제, 경력단절 없는 '0.5&0.75잡'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일과 삶의 양립(워라밸)이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기업 생산성 증대와 함께 저출산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법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대권 잠룡 金, '진보정책 진화+경제 전문성'으로 차별화
이재명 대표와 김동연 지사 모습. 연합뉴스이 같은 김 지사의 행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반도체 분야 주 52시간제 예외 관련 발언에 따른 이른바 '우클릭' 논란과도 대비된다.
최근 김 지사는 페이스북 글과 방송 인터뷰 등을 통해 잇따라 이 대표의 실용주의 노선을 직격했다.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진보의 가치와 철학이 바뀔 수는 없다"고 말하는가 하면, SNS 글에서는 "AI 기술 진보 시대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본질인가"라며 이 대표의 노동시간 규제 탄력화 언급에 대해 따져 물었다.
대한민국 반도체 주권 수호를 위한 핵심으로 △재정을 포함한 과감한 지원 △전력과 용수 문제 해결 △반도체 인프라 확충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을 회고하며 "이 두 분의 생각과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 실용주의적이고 현실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의 길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를 종합하면 김 지사가 중도보수층을 겨냥한 이 대표의 노동정책 관련 선회에 반기를 들면서, 자신이 추진 중인 노동시간 단축 기조가 민주당의 기본 이념에 부합한다는 점을 앞세우려는 의도로 읽힌다.
정치권 일각에는 진보진영의 노동정책 가치를 수호하는 이미지를 부각해 이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동시에, 민주당 내 '적통' 대권 주자이자 '경제 전문가'로서 김 지사 본인의 존재감을 피력하는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대통령실 비서관과 국무조정실장, 문재인 정권에서는 초대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김 지사는 보수와 진보 정권을 초월해 고위 경제 관료로서 국정을 이끌었다. 2008년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뛰었고, 문 정부에서는 경제성장률 3.2%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달성을 이뤘다.
강민석 경기도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김동연 지사가 어느날 갑자기 꺼내든 것이 아니다"라며 "기회경제·돌봄경제·기후경제·평화경제 등 '기회 시리즈' 중 기회경제의 일환으로 정책적 철학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