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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반대한다'…무능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적 비판



책/학술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무능한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적 비판

    제이슨 브레넌 조지타운대학교 맥도너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조지타운대학교 홈페이지 캡처제이슨 브레넌 조지타운대학교 맥도너 경영대학원 석좌교수. 조지타운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민주주의에 반대한다


    광복 이후 수십 년 동안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왔던 한국 사회에게 있어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주장은 언뜻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사상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적 가치 개념은 주로 자본주의에 있고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민주정에 의한 '다수의 지배'에 출발해 근대를 거치며 다양한 성격 변화를 거쳐왔다. 지금은 다수의 횡포나 폭압의 문제를 최소화 하도록 하여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고 모든 국민은 평등할 권리를 부여하는 정치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게 이루어야 할 가치이자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가 훌륭한 정치체제이기는커녕 오히려 해롭다고 주장하는 정치학자가 있다. 저자는 민주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하나의 도구로 바라보고 우리에게 해롭다면 이를 과감히 버리고 우리를 이롭게 할 더 유용한 도구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 선거제도의 맹점을 지적하며 유권자를 호빗·훌리건·벌컨 등 세 유형으로 분류한다.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호빗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 지식도 많지 않은 비투표자를 말한다. 스포츠 광팬에서 따온 훌리건은 정치에 관해 확고한 신념을 지녔지만 정치 지식을 편향된 방식으로 소비한다. 대부분의 유권자와 정치적 성향이 강한 시민들과 대다수 정치인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벌컨은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뾰족한 귀의 벌컨족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주 이성적인 유권자를 뜻한다. 정치에 관심이 많지만 편향적이지 않으며 증거를 바탕으로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

    저자는 이상적인 민주주의 이론은 시민이 벌컨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은 호빗 아니면 훌리건으로, 스스로 벌컨이라 여기는 이들도 사실은 훌리건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정치 참여는 호빗을 훌리건으로 바꾸고 훌리건을 더 나쁜 훌리건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며 정치 참여가 늘어난다고 해서 이성적인 유권자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호빗과 훌리건이 주도하는 규칙이기 때문에 이론처럼 완벽하게 운영될 수 없다면서, 모두가 평등한 1인 1표를 통해 공직자를 선출하는 경우 다수의 유권자가 잘못된 정치 지식이나 편향된 생각을 바탕으로 투표해 모두에게 해로운 공직자를 선출하게 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이쯤 되면 저자의 주장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민주주의를 혐오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대부분 민주주의가 상대적으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리 생각처럼 완전무결한 체제가 아니라는 점을 집어낸다.

    아라크네 제공 아라크네 제공 그는 현실 민주주의의 대안으로 '에피스토크라시(epistocracy)', 즉 '지식인에 의한 통치'를 제안한다. 이중 '참정권 제한제'는 충분한 지식을 갖춘 이들에게만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복수 투표제'는 민주주의처럼 모든 시민이 투표할 수 있지만 더 유능한 시민에게는 투표권이 추가로 주어지는 것이다. '선거권 추첨제'는 어떤 시민도 투표권이 없으며 선거 직전에 추첨을 통해 예비 유권자를 선발한다. 저자는 이를 위해 충분한 숙의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전제하면서 특정한 사람에게 선거권을 주기 위해 '유권자 능력 시험' 등의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현대를 지나는 동안 독재에 저항하며 시민사회가 일궈낸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일 수 있다. 조금 다르지만 미국, 유럽 등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국가들이 선택하고 있는 내각제 등 대의정치 또는 간접민주제에 대해 한국인 대부분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것도 권력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두고 싶어 하는 경험칙에 가깝다. 이는 대선이나 총선을 통해 '정권심판'이라는 구호로 발현되기도 한다.  

    저자는 여기에 경도된 호빗이나 훌리건이 주도하는 선거판의 문제를 지적한다. 근대 서구에서 출발한 민주주의가 다양한 개념 정리와 변화를 지속해오며 오늘날의 민주주의 가치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보면, 다양한 논거를 바탕으로 현재의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맹점을 지적하고 보완하고자 하는 저자의 제언에 귀를 귀 기울여 볼 필요가 있다.

    정치학·철학·경제학을 전공한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맥도너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로 경제·윤리·공공정책 강의를 하고 있다.

    제이슨 브레넌 지음ㅣ홍권희 옮김ㅣ아라크네ㅣ4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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