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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공원' 이름 병기 하세월…묘역 방치[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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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2.18 공원' 이름 병기 하세월…묘역 방치[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편집자 주

    "왜 다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괜히 마음 아프게 하냐"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말입니다. 맞습니다. 벌써 2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누군가는 잊었고, 누군가는 가슴에 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은 약속과 못다 한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난제가 해결되길 바라며 잊힌 역사와 약속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②]

    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 사무실. 류연정 기자대구 지하철 참사 희생자 대책위 사무실. 류연정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잔인한 범죄, 희생 키운 대처, 주먹구구식 수습 과정
    ②2.18공원 이름 병기 하세월…일부 희생자 묻힌 묘역 이름 없이 방치
    ③수 년간 이룬 것 없는 재단…아물지 않은 부상자 상처

    20여 년 전, 강모(77)씨는 군에서 제대한 아들에게 안경광학과가 유망하다며 진학을 추천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말을 곧잘 따랐고 안경사가 됐다. 2003년 당시 26세였던 아들은 중앙로역 인근 안경점에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충격으로 한동안 실어증을 앓았다. 강씨는 자신을 탓했다. 아들에게 안경사란 직업을 추천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내가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거다. 아직도 죄책감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사고로 자녀 둘을 모두 잃은 김모(69)씨는 "얘기하면 속에 천불이 난다. 꼬라지가 보기 싫어 대구 근처로는 가지도 않는다"며 20년 동안 상처가 조금도 아물지 않았다고 했다. 사이가 좋았던 두 남매는 누나의 대학교 졸업식에 가는 길에 사고로 함께 세상을 떠났다. 김씨는 "사람들이 '그만하면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 잊어야지' 하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냐"고 말했다. 자녀를 모두 잃은 김씨는 사고 이후 입양을 했다고 전했다.

    아내가 출근하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는 A씨는 지난 20년간 홀로 살아왔다. A씨는 "낫지 않은 상처 위에 겹겹이 딱지가 앉았다. 생각하면 미치겠어서 안 하려고 노력 중이다"며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다. A씨는 "나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조카들을 잃은 김정강(80)씨는 사고 이후 지하철을 못타게 됐다고 했다. 김씨는 숨진 조카 2명의 이모다. 김씨의 동생이자 조카들의 어머니는 사고 이후 자매의 명복을 빌러 암자에서 기도를 하다가 태풍 피해로 사망했다. 김씨는 "20대 중반의 예쁜 연년생 조카 두 명이 출근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지하철 참사만 아니었으면 애들 엄마도 사고를 당할 일이 없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김상렬(61)씨는 9살 터울인 막냇동생의 마지막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형님, 뜨겁고 숨이 막혀 죽겠습니다" 당시 32살이었던 동생에게는 3세 딸과 100일이 채 안 된 아들이 있었다. 역사에 진입한 열차를 점검하는 일을 맡았던 동생은 근무 중 화를 입었다. 김씨는 "보상금으로 얼마를 준다 한들 생명과 바꿀 수 없지 않냐. 조카들이 자기 아빠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17주기 추모식. 연합뉴스대구 지하철 참사 17주기 추모식. 연합뉴스
    유가족들은 어떤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사고의 아픔과 가족의 상실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을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써 나아지려 노력하기보다는 흘러가는 시간에 맞춰 잊고 묻으려는 듯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딱 하나'만은 눈 감기 전에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20년간 지켜지지 않은 약속, 제대로 된 '추모 사업' 말이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대구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더 이상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안전사고와 재난 대비 교육을 맡기로 했다. 실제로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 와 지하철, 화재, 지진 등에 대한 안전 교육을 받고 있다. 언뜻 보면 추모 사업은 잘 이뤄지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유가족들이 말하는 '문제'는 뭘까?

    대부분의 방문객은 이 테마파크 앞마당, 황량한 공간을 그저 공원 정도로 생각한다. 여기에 유골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곳이 어떤 표식도 없이 휑하게 있기 때문. 바로 옆 대형 탑에 전체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혀있긴 하지만 이 조형물의 이름은 "명상의 공간". 추모의 흔적은 철저하게 지워졌다. 대구시가 당초 약속한 '위령탑'은 테마파크 내 조형물로 전락했다.

    조형물 옆에 묻힌 유해는 총 32위. 일부 유가족들이 대구시의 동의를 받고 가족을 여기에 매장했다.

    당시 대구에서는 참사를 추모하는 것과는 별개로, 희생자 묘역이 자기 동네에 들어서는 것을 강하게 반대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때문에 사고 직후 추모 묘역을 조성하겠다고 공언한 대구시는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희생자 유해는 뿔뿔이 흩어졌다. 유가족들은 추모 기념관 성격을 띠는 이곳에 가족을 묻고 싶다고 대구시에 요청했다. 시는 반대 주민들 때문에 공식적으로 추모 묘역을 만들어줄 순 없지만 가족들이 유해를 매장하면 나무를 심어 주겠다고 했다. 암묵적인 동의였다. 그리하여 2009년 10월 27일 새벽, 일부 유가족들이 직접 시민안전테마파크 앞마당에 소중한 가족의 유해를 묻었다.

    당시 매장을 추진했던 황명애 사무국장은 "이미 희생된 목숨을 그냥 아무 의미 없이 두는 것보다 교육의 장을 만들어 연년세세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바탕이 되게 하고 싶었다. 제 자식을 이름도 성도 없이 거기에 묻는다는 것은 교육을 위한 또다른 희생"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또 "당시 가족들이 받은 뼛조각 중에 누구의 것인지 불분명한 것들이 있었다. 온전치 못한 육신을 한 데 모아야 그나마 희생자들을 온전하게 보내주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후 이 사실을 안 인근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었고 대구시는 나무를 심어주지 않았다. 유가족의 매장 사실 역시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뗐다. 끝내 이곳엔 추모 묘역이란 이름이 붙여지지 못했다.

    사고로 잃은 20세 대학생 딸을 그곳에 묻은 박모씨는 "공무원들과 약속이 다 되어서 묘역이 조성될 줄 알고 아이를 묻었는데 사람(공무원과 시장)이 바뀔 때마다 말도 바뀌었다. 아직까지 싸움을 하기는 하지만 점점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먹어가니 지친다"고 말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앞마당 32위 희생자가 묻힌 장소. 류연정 기자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앞마당 32위 희생자가 묻힌 장소. 류연정 기자
    추모 묘역 조성에 진전이 없자 유가족들은 수년 전부터 시민안전테마파크를 '2.18공원'으로 불러주면 안 되겠냐고 호소해왔다. 묘역까진 못 만들더라도 이곳에 참사로 희생당한 귀한 목숨이 묻혔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던 까닭이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시민안전테마파크는 지역의 대표 관광지인 팔공산 케이블카 탑승지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옆은 동화시설지구로 식당과 카페들이 즐비하다. 상인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가까스로 상인들과 합의가 된 적도 있었다. 지난 2019년 희상자대책위와 상인회가 '화해와 미래를 위한 우리의 다짐'이란 이름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고 시민안전테마파크 명칭을 2.18공원으로 병기하자는 데 동의한 것. 상인회가 제시한 합의 조건은 동화지구 발전을 위한 '팔공산 구름다리 건립'이었다. 하지만 구름다리 건립은 시민단체와 종교계 반대로 무산됐고 상인회는 결국 병기를 허용할 수 없었다.

    동화지구 상인회 관계자 B씨는 "처음에 시민안전테마파크를 지을 때 순수 교육관이고 추모라는 단어는 배제하기로 해 주민(상인)들이 건립에 동의한 것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대구시와 유가족들이 양보를 요구해 갈등이 깊어졌다. 그러나 우리도 대구시민이라 어느 정도 유가족을 이해하고 있기에 구름다리 건립이 추진되면 (이름 병기 등 유가족의 요구대로) 다 해주려고 했다"고 말했다. B씨는 "구름다리 건립이 무산되고 지난해 초 조건을 바꿔 대구시가 동화지구 도시재생사업 추진, 단풍길 조성 등을 추진해 주면 2.18 추모 사업 활성화에 합의한다는 내용의 협약을 권영진 전 대구시장과 체결했다. 그런데 시장이 바뀌면서 사실상 약속이 백지화됐다"며 상인들로서도 답답하다는 심정을 전했다.

    상인회는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2.18 추모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대구시가 전 시장 시절 약속한 내용을 이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인회가 키를 잡고 있고 대구시가 상인회의 요구를 들어줘야만 문제가 해결되는 복잡한 상황. 이를 깨보려는 의회 차원의 노력도 있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에 불과했다. 2021년 김동식 전 대구시의원이 명칭 병기를 위한 조례 개정안을 청원했지만 발의조차 힘들었다. 소수 의석만 갖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른 당의 의원들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유족들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지은 공간이면 그에 맞는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 "애들 영혼을 제대로 모셔놓고 가야지 이래서 어떻게 부모가 눈을 감겠냐"

    윤석기 희생자대책위 위원장은 "우리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도, 좌절과 절망을 안겨줄 수 있는 사람도 대구시장이다. 과거 대구시가 양측과 이면 합의를 하고 갈등을 부추긴 것에 대해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위원장은 "유족과 주민(상인)들은 사실 대립, 갈등할 이유가 없다"며 사고 20주기를 맞아 대구시가 대승적인 결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참사 20주기 추모식은 오는 18일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화지구 상인회는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맞불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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