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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이룬 것 없는 재단…낫지 않은 부상자 상처[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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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수년간 이룬 것 없는 재단…낫지 않은 부상자 상처[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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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왜 다 지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서 괜히 마음 아프게 하냐"
    대구 지하철 참사 20주기 기획 기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우려했던 말입니다. 맞습니다. 벌써 20년이란 긴 시간이 지났습니다. 누군가는 잊었고, 누군가는 가슴에 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가 많습니다. 아직까지 이행되지 않은 약속과 못다 한 책임이 남아 있습니다. 뒤늦게나마 난제가 해결되길 바라며 잊힌 역사와 약속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③]

    2.18안전문화재단 사무실. 류연정 기자2.18안전문화재단 사무실. 류연정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잔인한 범죄, 희생 키운 대처, 주먹구구식 수습 과정
    ②2.18공원 이름 병기 하세월…일부 희생자 묻힌 묘역 이름 없이 방치
    ③수 년간 이룬 것 없는 재단…낫지 않은 부상자 상처

    유가족 여러분과 약속했던 추모묘역, 추모벽, 안전교육관 건립 등 추모사업을 위하여도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일부사업에 대하여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우리시가 추진 중인 추모사업의 일부는 현재 미진한 점도 있습니다만, 앞으로 계획된 추모사업이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2005년 2월 18일 사고 2주기 당시 조해녕 대구시장의 추도사

    사고가 나고 몇 년간 대구시의 약속을 믿고 기다렸던 유가족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구시의 힘만으로 추모사업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 이후 2016년 추모, 안전 교육, 복지 사업 추진을 두루 담당할 2.18안전문화재단이 설립됐다. 유가족들은 재단에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시작 단계에서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사고가 난 지 약 13년이 지나고 재단이 출범한 것부터 문제였다. 이사회 구성, 재단의 역할과 권한 등에 관해 유가족들 간, 유가족과 부상자 간, 대구시와 유가족 간 이견이 충돌했다.

    재단은 당초 기대했던 역할을 해낼 수 없었다. 안전 관련 포럼을 몇 번 개최하고 소수 유가족에게 회복을 위한 친목모임을 제공하는 게 다였다. 재단 설립 전후를 비교해보면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특히 추모 사업과 관련해 재단의 역할이 전무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를 2.18공원으로 병기하자는 제안, 조형물 이름을 '추모탑'으로 바꿔달라는 요청 모두 유가족들이 계속 외쳐야 했다. 이 때문에 희생자대책위원회는 20년째 해체되지 못하고 있다.

    대책위 황명애 국장은 "동화지구 상인들을 설득할 일이 있으면 재단이 나서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데 재단에서는 유족들에게 해결해 보라고 했다"고 지적했다. 황 국장은 "재단 설립 과정에서부터 갈등이 있었지만 저희는 재단이 추모 사업만 잘하면 인정하려 했다. 추모사업만 마무리 되면 우리가 재단 일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지난해 8월 약 7년간 재단을 이끌던 이사장이 사퇴하면서 최근 재단은 돛이 고장 난 배처럼 표류하고 있다. 권영진 전 대구시장의 측근이었던 김태일 전 이사장은 권 시장이 3선에 실패하자 자리를 내놨다. 이 때문에 현재는 몇 개 없던 재단 사업마저 대부분의 운영이 중단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태일 전 이사장 시절 마련된 트라우마센터가 운영을 중단한 것이다.

    많은 유족들이 재단의 무능을 탓했다. 한 유가족은 "참사 초기 유가족들끼리 단합을 못 한 것 같아 속상하다. 그때 해결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지하철은 서민들이 타지 않냐. 힘없는 서민들끼리 (추모 사업 문제 등을) 해결하려니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2.18안전문화재단은 유사 사고 재발 방지를 염원하는 마음이 모인 '국민성금 100억원' 바탕으로 탄생했다. 하지만 출범 8년째에도 그 기능과 역할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백종우 교수는 "사회적 재난의 경우 개인적인 접근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사회적 장례'로서 함께 기억하고 애도하는 노력이 유가족 치유나 지역사회의 회복에 중요하다"며 제대로 된 추모 사업을 안착시키려면 재단을 포함한 전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추모관 건립을 위해 지방정부와 연방정부, 관련 단체, 유가족들이 많은 숙고와 토론을 했고 약 10여 년이 걸렸다. 유가족과 희생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사람들이 사고를 기억해 주는구나, 슬픔에 공감해 준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이런 사회적 지지가 회복에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대구 지하철 참사가 발생했던 때인) 고도성장기에는 사회가 빨리 성장하는 데 초점을 두다 보니 재난, 사고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지기 어려웠다. 세월호 참사 이후 트라우마 치료 등에 관심이 높아지는 등 '사회적 애도 시스템'이 나아지고 잇지만 아직까지 성장통을 겪는 단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022년 대구 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 류연정 기자2022년 대구 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 류연정 기자
    시간이 흐르면서 일반 시민들에게 참사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생생한 '오늘'의 이야기다. 유가족뿐 아니라 부상자들의 아픔 역시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낫지 못했다.

    박숙자(67)씨는 사고로 목소리를 잃었다. 그녀는 연기를 많이 흡입한 탓에 몇 분간 대화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의 쉰 목소리가 됐다. 박씨는 처음에는 아예 입을 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20년 동안 총 11차례 수술을 받았다.

    박씨는 숨을 쉬고 말을 하는 데 불편한 것 외에 그녀를 힘들게 하는 것이 또 있다고 했다. 치료에 너무 많은 돈이 든다는 것. 대구시가 '지하철화재 사고 부상자 의료지원 등을 위한 조례'에 따라 부상자들에게 일부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지만 박씨처럼 평생 수술과 약치료를 해야 하는 이들에겐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박씨 같은 부상자들이 일반적인 경제 활동을 해나가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보상과 배상을 받았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박씨는 "이미 치료에 그 돈을 다 쓴 지 오래가 지났다"고 했다.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사고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난 세월에 갇혀 사는 사람들도 있다. A(65)씨의 딸은 사고 당시 고등학교 3학년생이었다. 리더십이 있고 똑똑해 학교 선생님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딸이었다. 학원에 가다가 사고를 당한 딸은 다행히 목숨은 지켰지만 남은 인생에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딸은 지난 세월 동안 열 번 이상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정신병동에 입원을 한 적도 있다. 현재는 약에 의존한 채 살아간다. A씨는 "119에서 새벽에 연락이 오면 뛰어가고 그런 일을 열 몇 번씩 겪었다. 딸도 문제지만 나까지 우울증이 와 힘들었다"고 말했다. A씨 딸 역시 정상적인 경제,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상태다. 딸을 돌봐야 하는 A씨와 가족들의 부담도 상당하다.

    부상자대책위원회 이동우 위원장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러고 있냐' 그렇게 얘기하는데 아픈 사람들을 더 아프게 하는 2차 가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부상자를 위한 지원이 부족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2.18재단이 부상자를 위한 사업은 거의 운영하고 있지 않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위원장은 "당시 부상자들이 화재 현장에서 유해물질을 다량 흡입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만성 후유증이 생겼고 또 언제 어떻게 다른 병이 발병될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대구시가 2년에 한 번씩 부상자들의 건강검진을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주장했다.

    2022년 대구 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 류연정 기자2022년 대구 지하철 참사 19주기 추모식. 류연정 기자
    가슴 시린 참사가 지나간 자리는 여전히 황량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한 송이 꽃은 폈다. 343명 사상자의 희생을 거름 삼아 사회는 급격히 바뀌었다.

    대구지하철공사는 전동차에 사용하던 기준 미달의 난연 성능 자재를 모두 불연성 제품으로 바꾸었다. 내장판, 단열재, 바닥재 등을 모두 불연성으로 교체한 것. 서울 등 타 지역에서도 화재 예방 차원에서 도시철도 자재 점검, 교체에 나섰다.

    대구지하철공사는 화재에 대비하기 위해 터널 내 송수관 설비를 설치했고 기관사, 역사 직원 등을 상대로 안전의식과 교육을 강화했다. 인터폰 사용법, 출입문 개폐 방법, 대피방법 등 비상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 방안도 상세하게 알리고 있다. 1년에 한 번씩 열차 화재와 테러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시행한다. 모두 2.18 참사 전에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들이다.

    대구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김중진 대표는 "수백 명의 희생으로 대구뿐 아니라 전국의 지하철이 많이 안전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노후 전동차 교체와 관리, 시민 안전의식 제고 등은 여전히 남은 과제"라며 "앞으로도 계속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신경 쓸 부분이 많다"고 강조했다.

    유가족과 부상자들 역시 서로 다른 의견과 입장을 뒤로하고, 앞으로 정부가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선제적 교육을 실시하고 사고 예방 대안을 다방면으로 모색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가족과 부상자들은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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