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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한 설 보낸 전세사기 피해자들…"빌라왕 활개, 정부는 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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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막막한 설 보낸 전세사기 피해자들…"빌라왕 활개, 정부는 뭐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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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가장 안전하고 포근해야 할 집이 끔찍한 악몽의 장소로 전락한다. 피땀 흘려 모은 전세금은 자취를 감추고 전세대출은 빚더미가 되어 삶까지 위협한다. 치밀한 전세사기 전면에는 소위 '빌라왕'으로 불리는 바지사장들이, 그 뒤에는 '배후세력'들이 판을 주도한다. 경찰이 집중 단속을 나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사기꾼들은 '덫'을 놓고 서민들을 유혹하는 중이다.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준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가운데, CBS노컷뉴스는 전세사기가 드리운 어두운 그늘을 밀착 취재했다. 파멸로 이끄는 '검은 미로'를 만드는 조직과 체계는 예상보다 더욱 악랄했다.

    [검은 미로, 전세사기⑤]
    "어떻게 구한 신혼집인데"…피해자들의 호소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막막한 설 연휴
    "높은 대출 이자 감당 못해, 신용불량자 되기도"
    "바지 집주인 세금 문제로 경매도 어려워"
    나쁜 임대인 신원 공개…'배드랜드로스' 등장까지
    "빌라왕 활개칠 동안 정부는 뭐했나"…대책 필요

    연합뉴스연합뉴스
    ▶ 글 싣는 순서
    ①[단독]빌라왕 섭외 '토스실장'의 비밀…직접 취업해보니
    ②무소불위 컨설팅 조직범죄…바지사장·중개사·세입자 '장기판의 말'
    ③[단독]경찰 집중단속 비웃는 '깔세'…막판까지 털어먹는 '전세사기'
    ④사망해도 계속 생겨나는 전국 '빌라왕'…배후, 뿌리를 뽑아야
    ⑤막막한 설 보낸 전세사기 피해자들…"빌라왕 활개, 정부는 뭐했나"
    (끝)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설 연휴는 춥고 막막하기만 했다. 전 재산을 털다시피 마련한 전세금은 회복이 요원하고 높아진 대출 이자는 숨통을 조여오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빌라왕' 등 전세사기 일당들의 범죄 후폭풍을 고스란히 맞으며 경매 처분을 기다리거나 회생 방법을 알아보는 등 백방으로 뛰는 상황이다.

    24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사실상 방관했다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공시가격 150%에 이르는 전세보증보험은 전세사기 일당이 '깡통전세'를 설계하는 구조를 가능하게 했고, 수많은 주택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를 동안 아무런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나쁜 임대인'을 관리하고 범죄를 사전 예방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막막한 설 연휴…'감옥'이 된 신혼집

    설날을 하루 앞둔 지난 21일, 피해자 A(33)씨는 통화에서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가 서울 강서구 방화동의 한 빌라에 전세 계약을 맺은 시점은 2021년 6월. 그로부터 집주인이 새로 바뀐 시점은 한달 후인 7월쯤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집주인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해당 집주인은 서울 등지에서 빌라 240여채를 소유해 '강서구 빌라왕'으로 불리는 '바지 집주인' 정모씨였다. 정씨는 2021년 7월 제주에서 돌연 사망했다.

    A씨는 "정씨를 보긴 봤는데 생김새도 멀쩡했고 노숙자도 아니었고 전혀 수상한 점도 없었다"며 "죽는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라고 밝혔다. 집주인이 사망하면서 신청을 해놓았던 전세보증보험도 쓸모가 없어졌다.

    큰 희망을 갖고 신혼집으로 마련한 2억9천만 원의 전셋집은 그렇게 벗어날 수 없는 '감옥'이 됐다. 9.5평의 크기에 그 사이 태어난 아이 두 명과 함께 네 식구가 그대로 눌러 앉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A씨는 "경매로 나가도 아무도 안 살거 같아서 그대로 떠 안아야 될 것 같다"며 "대출 이자가 계약 때는 2%였는데, 이제는 6%가 넘었다. 2년 살고 딱 나가려 했는데 돈이 묶여 있어서 다른 집도 못 구하고 낑겨서 계속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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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안상미(44)씨 역시 설 연휴에 가족들을 집에 오지 못하게 했다. '구제 방안 촉구' 등 집 앞에 내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고 걱정을 할까봐서다.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안씨는 "피해 회복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 경매로 나가더라도 1순위 근저당이 잡혀 있는 상태라 우리는 2순위"라며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만기가 됐거나 연장을 해야 하는데 은행마다 안해주는데도 있어서 신용대출로 막은 사람도 있고,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있다"라고 말했다.

    안씨가 해당 아파트 단지에 이사 온 시점은 2020년 2월. 전세 보증금 7천여만 원에 아무 문제 없이 살면서 지난해 2월 재계약을 했는데, 불과 5개월이 지나 아파트가 통째로 법원 경매에 넘어갔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어야 했다. 해당 아파트는 인천 등 지역에 2709채 주택을 거느린 '건축왕' 남모씨 일당 소유였다. 남씨는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새로 지은 뒤 전세보증금과 주택담보 대출금을 모아 또 주택을 신축하는 식으로 부동산을 늘려갔다. 지난해부터 자금 사정이 악화됐지만 무리하게 전세 계약을 추진해 결국 대형 전세사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안씨는 "피해자들이 하나 같이 터지고 나서 남씨 소유란 것을 알았다"며 "경매 소문이 돌자 그 전에 다른 집으로 이사간 사람도 있었는데 그 집 역시 남씨 소유였다. 한 마디로 이 지역을 독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남씨 일당이 인근 빌라나 오피스텔을 엄청 많이 갖고 있으니 시세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경찰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현재까지도 피해 건물 1층에 분양상담실이 차려져서 매매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고 경매로 한가닥 희망을 걸었지만 집주인의 세금 때문에 활로가 막힌 피해자도 있다.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손정환(37)씨는 "집주인이 세금이 너무 많다보니까 경매 자체가 열리지 않고 있다"며 "발로 뛰면서 이것저것 해결책을 알아봤는데 웃프게도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집주인은 '빌라의신' 권모씨다. 권씨 일당은 수도권 등지에 3493채의 빌라 등을 소유하며 사기를 벌였다. 이들은 번호 뒷자리가 '2400'으로 끝나는 통일된 대포폰을 사용하기도 해 '2400 조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손씨는 "지방에 있다가 '영끌'을 해서 겨우 경기도에 와서 첫 신혼집을 마련한 게 이렇게 피해를 보게 됐다"며 "전 세입자가 1년만 채우고 집을 내놔서 그 배경이 궁금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폭탄 돌리기'를 한 것 같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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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0월 사망한 '빌라왕' 김모씨 피해자 B(35)씨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피해 집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면 되는 상황인데, 문제가 이런 집이 여러 채가 한꺼번에 터지는 바람에 그것도 문제"라며 "집이 팔릴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김씨가 당시 사망한 사실을 듣고 피해자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B씨는 "장례식장도 찾아가고 김씨 부모까지도 찾아갔다"며 "그 전에 집주인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부동산에서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다. 부동산도 그런 점에 있어선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직장인인 B씨는 직접 해결책을 알아보느라 연차까지 모두 소진해가며 백방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분노에 찬 피해자들이 직접 '나쁜 집주인' 사이트를 만드는 경우도 생겼다. '배드랜드로스' 인터넷 사이트에는 나쁜 집주인 명단, 피해자 모임, 언론 기사, 제보 등의 항목이 있다. 해당 사이트에는 일부 '빌라왕'들의 사진과 실명, 집 주소 등이 적혀 있기도 했다. 이 사이트를 이용한 한 피해자는 "전세금을 못 돌려받아서 길바닥에 나앉을 판이었다"며 "공익적 목적으로 나쁜 집주인들의 신상을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빌라왕 활개칠 동안 정부는 뭐했나"…'방관'이 전세사기 원인

    피해자들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A씨는 "LH나 정부에서 전세사기 주택을 매입해주는 것을 제일 필요로 하지만 만약에 안된다면 이자 지원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라며 "한 달에 나가는 지출이 너무 크니까, 1~2%대만 지원해줘도 그래도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손정환씨는 "어찌됐건 피해자들은 한 푼이라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바지 집주인이 세금이 많다고 그 피해를 고스란히 피해자들이 떠맡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며 "세금 문제를 좀 해결해주거나 경매에 나올 수 있게 문턱을 낮춰주는 방안이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방관'이 사기 피해를 눈덩이처럼 불게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상미씨는 "허그에서 150%의 전세 보증을 인정해줘서 전세사기단들이 깡통전세나 시세를 조작할 수 있게끔 한 게 컸다"며 "거기에 감정평가서까지 이용하면 더 높은 전세금을 책정할 수 있는 구조"라고 밝혔다.

         
    B씨 역시 "전세사기 일당들이 임대 사업자로 등록해 세제 혜택도 가지고 가고 주택을 불릴 동안 정부는 방관을 한 것"이라며 "허그에서 이미 블랙리스트로 올라 와 있어도 거래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점이 피해자들이 가장 화가 난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그에서 좀 블랙리스트 관리를 좀 더 면밀하게 하던지, 국세청과 합동으로 임대인들의 체납 사실 등 문제점을 명확히 파악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모니터링' 강화 등 다양한 정책과 전세사기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김인만 소장은 "에스크로(제3자가 중개하는 매매 보호 서비스) 제도를 도입해 가령 세입자가 보증보험을 가입해 허그로 계약금을 입금하면 허그가 안전성을 확인하고 임대인에게 돈을 입금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문제가 있는 임대인에게 돈이 가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사회 초년생들이 세금이나 계약이나 권리 관계 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느냐"며 "부동산에 물어도 부동산 역시 같은 편일 수 있으니까, 정부 차원에서 임대인이 세금 완납을 했는지, 과거에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은 이력이 있는지 등을 검사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진형 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비대칭을 많이들 얘기하는데, 임대인 체납 정보 등은 국가에서 촉탁등기를 통해 등기 부동산에 표시하는 방법이 있다"며 "허그의 공시지가 150% 전세 보증은 오히려 위험하다. 시가의 70% 이하 정도가 안전하다"라고 밝혔다.

    형사정책연구원 승재현 연구위원은 "이자 대납 등 전세세입자를 구하는 브로커들의 수법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며 "한 사람이 과도하게 빌라를 소유했거나 문제가 있는 거래는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모니터링이 있어야 한다. 전세사기로 얻은 불법 수익은 철두철미하게 환수할 수 있다는 제도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인천 113호 등 수도권에 200호의 공공임대 주택을 확보했다. 또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한 '저리 긴급 자금 대출'(연 1.2~2.1% 금리)도 마련했다. 하지만 공공임대 주택 물량은 턱없이 부족하고, 대출의 경우 보증보험 미가입자 피해자 중 보증금 2억 원 이하의 새로운 집을 구할 때만 실행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또 설 연휴 이후인 이달 말, 악성임대인 등 위험 거래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안심전세앱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정확한 시세 정보와 악성임대인 정보, 건축물 정보 등을 앱에 담지만 '악성임대인 명단'은 들어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명단 공개를 위해선 주택도시기금법 또는 민간임대특별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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